기업인 기(氣) 살려줘야 '기업(企業)' 본연의 뜻 살아나

박 대통령, '통 큰 사면'으로 국민대통합 실질적 계기 삼아야

[데일리한국 김동원 경제산업 에디터] 기업(企業)의 기(企)자는 발돋움하여 멀리 바라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어떤 일을 도모하거나 꾀할 때 쓰는 말로서 사람 인(人)과 그칠 지(止)로 이뤄져 있다. 즉 사람이 멈춰 머물러 있으면서 멀리 내다보는 모습이 바로 ‘기'(企)다.

사람들이 모여 먼 장래를 도모할 수 있는 기업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야말로 정부의 몫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2월 25일 18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국민 행복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요즘처럼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기업인들이 심적으로 크게 위축된 분위기에서 ‘국민 행복’ 운운하는 것은 마치 먼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기업인들의 기(氣)를 살려준다면 의외로 문제의 실마리가 쉽게 풀릴 수도 있다. 게다가 특별사면권은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제대로만 행사하면 상당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효한 수단이다. 물론 국익이 아닌 사리사욕 또는 당리당략을 염두에 두고 사면권을 행사하거나 이른바 ‘국민 정서’에 어긋날 경우, 양날의 칼인 동시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위험 소지는 있다.

스타벅스, 월마트,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의 17개 주요 대기업이 최근 경제 활성화와 청년들의 사회 진출 지원을 앞세워 '새 일자리 10만 개 창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에 귀가 번쩍 뜨인다. 학교 울타리를 갓 벗어난 10대들과 일자리 진입 장벽에 직면한 청·장년층 10만 명에게 2018년까지 새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이번 프로그램의 목표라고 한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역동적인 프로그램이 가동되지 못할까? 의문과 함께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8·15 광복절 특별사면을 3주일여 앞두고 옥살이를 하는 수감자들은 요즘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수감자 중에는 정치인, 대기업 총수, 중소기업 관계자, 그리고 각종 생활사범 등이 두루 포함돼 있을 터이다. 이들의 정성이 통했는지 박 대통령도 이번 광복절에는 ‘통근 특사’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기업인 사면을 건의함으로써 일부 대기업 총수에게 가석방 특사를 내릴 수 있는 ‘탈출구’를 열어 놓았다.

경제 위기 극복이 최대 화두인 만큼 경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대기업 오너 등 경제 ‘실권자’의 손발을 풀어주는 대신 그들에게 경제 회생의 부담을 짊어지도록 하는 양수겸장 전략인 셈이다.

이번 8·15 광복절은 광복 70주년이라는 무게감 때문인지 더욱 엄중하게 느껴진다. 이런 시기에 단행되는 특별사면은 아무래도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라도 빛과 그림자는 공존한다. 하지만 빛을 강화하고 키울수록 그림자는 작아지고 옅어지는 게 이치다. 정치적 판단이든 경제적 결단이든 현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경제를 살리고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보탬이 되는 조치라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경제 활성화 등 플러스 요인이 서민들의 위화감 등 소위 마이너스 요인보다 월등히 높고 크다면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는 어리석음은 비껴갈 수 있을 것 같다. 30대 그룹 사장단은 지난 9일 긴급 좌담회를 열고 광복 70주년을 맞아 ‘실질적으로 투자를 결정할 수 있는 기업인’들이 현장에서 다시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박 대통령은 나흘 뒤인 13일 광복절 특별사면을 공식 언급함으로써 기업인들의 요구에 화답했다.

그 후 나흘 뒤인 17일 참여연대는 논평을 내고 "부패 기업인을 특별사면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논평은 이렇게 이어진다. “부패한 기업인에 대한 사면권 남용은 도리어 힘 없고 배경이 없는 국민 사이에 위화감만 조장해...." 만약 박대통령이 서민들의 생계형 사범에 대한 사면을 외면한 채 기업인에게만 사면 특전을 베푼다면 논평의 지적은 옳다. 하지만 박대통령은 이번에 생계형 사범에 대한 특사를 대대적으로 단행할 것이 확실시된다. 박 대통령 스스로 특별 사면의 이유를 ‘국가 발전’과 ‘국민 대통합’이라고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대기업 총수 등 기업인 가석방도 일부 포함될 분위기여서 업계도 숨죽인 채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가석방은 징역 또는 금고의 형을 선고받고 형기의 3분의 1을 채운 모범 수형자가 대상이다. 하지만 ‘유전무죄,무전유죄'(有錢無罪,無錢有罪)라는 탄식이 새나오지 않도록 다른 몇 가지 잣대를 함께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과천선하지 않거나 수형 생활도 모범적이지 못하고, 게다가 사회에 내보내도 경제적으로 별로 기여할 것 같지 않은 기업 총수라면 당연히 더 오래 감옥에 가둬두고 반성과 회한의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만 모든 요건이 충족됐음에도 불구하고 기업 총수라는 꼬리표 때문에, 국민 정서 상 껄끄럽다는 이유만으로, 사면 대상에서 누락시킨다면 오히려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소지가 있다.

박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를 비롯한 경제인 사면을 결정할 때 ‘국민을 기만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이 가는 대상자에게만 사면을 내려주면 어떨까. 결과가 좋으면 비판과 비난은 얼마든지 칭찬과 칭송으로 변할 수 있다. 100% 좋은 결과만 기대하기는 물론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긍정적 결과가 절반만 넘는다면 반대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격려와 희망의 기운이 우리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원동력으로 바뀔 것이다.

특별 사면은 지난 1980년 이후 총 52회 시행됐다. 전두환정부 때 14차례로 가장 많았고 박근혜정부에서는 지난해 설 때 단 한차례에 그쳤다. 역사적인 8·15 광복 70주년이 불과 2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박 대통령이 두 번째로 꺼내들 특별사면 카드에 과연 '국민 행복 시대'에 걸맞은 철학과 구상이 담겨 있을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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