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 원인으로 '복지 포퓰리즘' 부각되면서 고소득층의 사회적 책임이 가려져
위기의 일차적 책임을 정부에서 찾는 것은 모순… 먼저 금융 왜곡 책임 물어야
긴축 정책 통해 금융 위기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잘못… 기득권층 부담 필요

고길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편집자 주= 그리스 사태의 원인을 놓고 여러 갈래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 언론들의 시각도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보수 성향 신문들은 "그리스 사태의 원인은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합니다. 반면 진보 성향 신문들은 그리스 정부가 지난 5년 간 펴온 긴축 정책의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데일리한국은 최근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장의 칼럼 '그리스 사태, 진단부터 잘못… 국제수지 개선과 공무원 축소가 해법', 본지 장성준 부국장의 칼럼 '신(神)들이 사라진 그리스를 보는 언론들의 엇갈린 시각'을 게재했습니다. 고길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이같은 언론 보도를 보고 '복지 포퓰리즘이 그리스 사태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반박하는 칼럼을 보내왔습니다. 본지는 그리스 사태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소개하고 토론을 활성화한다는 측면에서 고 교수의 기고문을 게재합니다.

[데일리한국=고길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기고문] 그리스의 채무 불이행(default) 사태는 유럽연합과 그리스 간 극적인 타협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리스는 국민투표를 통해 국제 채권단의 구제금융 제안을 거절하였으나 그 이후 유럽연합과의 협상을 통해 원래 구제금융 제안보다 더 강력한 긴축안을 받아들이게 됐다. 이 시점에서 필자는 과연 '우리는 그리스로부터 올바른 교훈을 배우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조심스럽게 던져보고자 한다.

한국 사회에서 그리스 사태에 대한 해석은 참으로 다양하고 모순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과다한 복지 지출에 대한 비난이다. 그리스 정부가 무분별한 복지 지출을 했기 때문에 경제 위기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복지 포퓰리즘은 그리스를 상징하는 키워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사람들은 “복지가 나라를 망치는구나”하는 교훈 아닌 교훈을 얻고 있다. 편협한 이념으로 채색된 이런 주장이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인가? 언론에서 다루는 그리스 사태의 책임과 원인, 그리고 해결책을 비판적으로 살펴보자.

'복지 포퓰리즘' 부각으로 고소득층의 사회적 책임 가려져

첫째, 그리스 사태의 책임을 '복지 포퓰리즘'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리스 국민을 질책하는 것이다. 실업률이 치솟고 임금은 삭감되고 경제가 침체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가장 필요한 정책이 무엇일까? 마치 군대가 전쟁을 대비해 존재하듯이 복지 정책은 바로 사회 위기 상황에 빛을 발하는 정책이다. 그래서 사회 안전망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그런데 국가 경제위기에 복지 지출 삭감을 주장하는 것은 뭔가 모순되지 않는가?

오히려 소비 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은 증가시키고, 경제 위기를 버틸 수 있는 고소득층이 세금을 더 부담하는 것이 적절한 대안일 것이다. 이것이 계층 간의 사회적 연대를 강화시키는 매우 상식적인 접근 방식이며 위기 속에서도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하는 대안이다. 하지만 그리스 사태에 대한 이야기들을 보면 고소득층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민은 부각되지 못하였다. 일부에서는 그리스의 기업인과, 변호사, 의사 등 고소득층이 엄청난 탈세를 하고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켰다는 사실을 지적하였지만, 이것마저도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단어에 가려져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를 이용하여 중산층과 저소득층에게 죄의식을 갖게 하고 고소득층과 지배층의 책임은 가려버리는 마술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금융 왜곡에 경제 위기 책임 물은 뒤 정부 책임 묻는 게 순서

둘째, 경제 위기의 일차적 책임을 정부에서 찾는 것은 시장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자들에게 모순적인 일이다. 그리스 사태의 핵심은 금융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자율이 높은 나라에서는 이자율만큼 수익성을 낼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기업은 도태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높은 금리를 찾아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돈은 그리스로 몰려들었고 생산성이 없는 기업은 퇴출되는 대신에 저금리의 투자자금으로 버틸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빵집 하나가 겨우 장사할 수 있는 조그마한 동네 골목에 싼 은행 대출을 받은 여러 개의 빵집들이 문을 열고 장사할 수 있게 된 상황을 만들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저금리 상황은 정상적인 시장 경쟁을 어렵게 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악화시킨다. 하지만 유럽연합 체제에서 그리스는 단일 이자율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문제의 원인은 일차적으로 국민도 아니고, 정부도 아닌 시장에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에게 일차적 책임을 묻는 것은 경제 위기를 설명하는 데 매우 부적절하다. 오히려 시장에서 자원 배분과 투자 결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금융의 왜곡에 책임을 묻고 정부의 책임을 물은 후 국민의 책임을 묻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런데 그 금융의 책임은 제대로 묻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긴축 정책이 '만병통치약' 아니다… 기득권층의 부담 노력 필요

셋째, 긴축을 만병통치약으로 주장하는 입장의 모순이다. 긴축 정책을 통해 금융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뿌리 깊은 잘못된 상식이며 채권국 입장에 지나치게 경도된 것이다.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미국이 추진한 것은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였지 긴축이 아니었다. 핵심은 긴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경제 시스템을 건강하게 만들어갈 것인가에 있다. 특히 그리스가 취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제한돼 있는 상황에서 긴축이 대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실제로 2011년 그리스가 국가 부도 위기에 처했을 때 실시되었던 긴축 정책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반면 2008년 국가 부도를 경험한 아이슬란드의 경우 긴축 정책 대신에, 자국 화폐에 대한 급속한 평가절하, 민간은행의 투자 실패에 대한 국가 책임 부인, 사회복지 투자 확대를 통해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하였다. 이것은 긴축이 성공할 보장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스는 어떻게 경제의 경쟁력을 강화할 것인가' 라는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지 긴축이라는 답이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리스 사태를 부도덕하고 타락하고 무능한 국민들이 정부의 복지 정책에 의존해서 발생한 사건으로 규정하는 것은 결코 문제를 제대로 정의한 것이 아니다. 또 복지 지출을 줄이고 국민이 고통을 부담해야 된다는 것 역시 바른 해결책이 아니다. 우리가 배워야 될 교훈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 기득권층이 적극 부담을 지려는 자세, 빈곤층과 중산층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는 정책을 도입하려는 노력, 왜곡된 시장 경쟁을 바로잡기 위한 개혁들이 아닐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그리스 사태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의미를 던져준다. 고소득층의 사회적 연대 의식은 약하고, 비정상적인 낮은 이자율로 인한 가계부채의 문제는 심각해지고, 기업의 경쟁력은 약화되어 있고, 정부는 이런 상황을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그리스를 보며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조소할 입장일까?

위기는 기회와 함께 온다. 그러나 그 기회는 교훈을 배우려는 자에게 오는 것이지 위기를 탓하는 사람에게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과연 그리스 사태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야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 역사적 경험을 자신들의 이념과 이해관계에 부합되도록 왜곡하는 주장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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