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두영 원장의 안타까운 죽음을 접하고…

'난 국가에 헌신했는데, 국가는 나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아니었을까

최 원장·단원고 교감 비극 재발 않도록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 인정해야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데일리한국=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강원도 산골의 한 소년이 국가에 봉사하겠다는 큰 꿈을 가졌다. 영양 부족으로 깡마른 몸이었지만 뚝심으로 그 어렵다는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지방행정의 일선에서, 그리고 중앙 부처에서 봉직한 것도 30년이 넘었다. 직위가 올라가면서 어려운 일이 더 많아졌다. 30년 간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지방행정의 전문가가 된 것이다.

지난 1월 지방행정연수원장으로 부임한 이후 지방공무원의 자질 향상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하였다. 연수원이 전주로 이전한 뒤에는 서울에서 강사를 모시기 어렵다는 고충도 털어놓았다. 아무리 ‘철밥통’ ‘복지부동’ ‘무능력’ 등의 표현으로 관료를 욕한다고 해도, 그만은 그렇지 않았다. 국가관과 봉사 정신이 철두철미했다. 국제적 감각도 갖춘 인물이었다.

그런 최두영 지방행정연수원장이 자살했다.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왜 그랬을까? 중국인 버스 운전사의 잘못으로 9명의 귀중한 연수공무원이 목숨을 잃었다. 왜 하필 후진국 중국으로 연수를 보냈느냐고 질문할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우리 공무원들의 국제화 수준은 아직 낮은 편이다. 중국이든 아프리카든 해외 연수를 많이 보내야 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기 때문이다.

사고 현장에서 유가족들 얼굴을 보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졸지에 가장을 잃은 유가족들의 슬픔을 그 누가 달래겠는가. 남달리 책임감이 강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하늘이 노랬을 것이다. 출국 전 직원들에게 ‘내 가족과 같이 챙겨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 더욱 심금을 울린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지 않고 미꾸라지같이 빠져나가는 현상을 보아왔다. 세월호 참사에도 과연 누가 책임을 졌는지 아직도 모른다. 거꾸로 국민안전처, 인사혁신처 등 상위 행정 조직만 늘려 왔다. 선장은 아직도 무죄를 주장하는데, 단원고 교감 선생님은 이미 사건 직후 목을 매었다. 유독 마음이 약하고, 책임감 강한 사람은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기 쉬운 사회 분위기가 되었다.

우리는 큰 사건이 생길 때마다 손가락질할 만한 사람을 찾는다. 냄비 근성으로 금방 뜨거워지는 비난을 감내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가 속한 집단 전체를 매도한다. 공무원들은 누구나 두들겨 패도 되는 동네북이 된 지 오래다. 모든 관료가 어처구니없는 규제덩어리의 양산자이고, 국민에게 군림하는 몹쓸 존재로 치부되고 있다. 온 국민이 행정전문가인양 비판한다. 어느 공무원은 모임에 나가 자기 소개를 할 때 공무원이라고 하기가 창피하다고 한다.

그러나 최두영 원장과 같이 묵묵히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도 의외로 많다. 공금 횡령은커녕 사적인 용도로 관용차도 안타는 기관장도 적지 않다. 언론 보도에는 행정이 바보같은 짓만 하는 것 같지만, 그 내부에는 그럴 만한 복잡한 사정과 절차가 있다. 행정이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전문성을 요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불신이 만연하게 된 것은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고도 성장을 겪는 과정에서 내실을 기하지 못한 한국 사회 전체가 안고 있는 모순에서 비롯된다. 제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사람보다는 이리저리 경계선을 넘어들며 말만 번지르하게 잘하는 사람이 출세하는 세상이 되었다. 관료 사회에는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것이 묵묵히 일하는 것보다 승진이 빠르다는 것이 상식으로 알려져 있다.

최 원장이 유서에 남겼다는 커다란 물음표(?)의 의미는 무엇일까. 내가 본 가장 모범적 공직자였던 그의 마지막 질문 말이다. 아마 ‘난 국가에 헌신했는데, 국가는 나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아니었을까. 무력감, 허탈감, 가족에 대한 미안한 마음 등이었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앞으로도 유사한 비극이 또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최 원장, 단원고 교감 선생님같은 분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나와야 할지 걱정이다. 큰 나무 하나를 기르는데 30년이 걸린다. 그 나무가 쓰러지면 손실은 더 크다. 아직 우리 사회는 큰 나무들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중도에 베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제 우리 모두 성숙해져야 한다. 제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큰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각자가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남을 비판하기 전에 나를 되돌아 보고, 각 분야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희생양을 찾기보다는 원인 규명이 될 때까지 우리 모두 자숙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임도빈 서울대 교수 프로필
서울대 사회교육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파리정치대학 사회학박사-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현)- 한국행정학회 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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