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신문 "그리스 사태의 원인은 복지 포퓰리즘" 지적

진보 신문 "지난 5년 간의 긴축정책에 대한 반대" 부각

"포퓰리즘 공약 반드시 대가 치러…집단지성으로 막아야"

장성준 부국장
[데일리한국 장성준 부국장 칼럼] 똑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우리 언론들의 시각은 정반대일 때가 많다. 그리스 사태도 마찬가지다. 그리스가 국민투표를 통해 채권단의 구제금융안을 거부함에 따라 세계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유로존을 넘어 세계를 휘감고 있다. 그리스 사태에 대해 우리의 언론들은 공통적으로 세계 경제와 우리 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했다. 그러나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이 보는 그리스 국가 부도 사태의 원인 진단과 해법은 크게 달랐다.

보수 성향 신문들은 '복지 포퓰리즘'과 비대한 공공 부문 등을 그리스 사태의 원인으로 규정하면서 국민투표에서 구제금융안을 거부한 그리스 국민들의 선택을 비판적 시각으로 접근했다. 반면 진보 성향 신문들은 그리스 국민들의 구제금융안(긴축) 거부 결정에 대해 "지난 5년 간의 긴축 정책에 대한 반대 의사 표시"라면서 긍정적 눈길로 보려고 했다. 부도 사태를 해결하는 방법을 놓고도 보수 신문들은 "그리스 국가와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노력해야 한다"는 쪽에 방점을 찍었으나, 진보 신문들은 채권단과 그리스의 협상을 통해 부채를 탕감할 필요성 등을 거론했다.

조선일보는 7일자 신문 사설 제목에서부터 '복지 포퓰리즘이 타락시킨 그리스의 자포자기'로 규정했다. 이 신문은 61.3%라는 압도적인 반대표에 대해 “국민투표에서 반대표가 많이 나와야 채권단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치프라스 총리의 선동이 먹혀든 결과"라고 분석했다. “결국 그리스 국민이 도박에 가까운 선택을 했다고 할 수 있다”며 “'될 대로 돼라'는 식의 자포자기 심리가 느껴질 정도”라고 비판적으로 접근했다. 신문은 “역대 정권의 복지 퍼주기 정책으로 인한 재정 파탄을 바로잡으려면 국민이 앞으로도 계속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며 “빚내서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하며 흥청망청 살아온 대가는 가혹하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 '설마 EU가 그리스를 내치겠느냐'며 배짱을 부리면서 빚을 갚지 못하겠다며 버티고 있다"면서 "복지에 취해 타락한 국민은 국가 경제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갈 수 있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도 사설을 통해 '퍼주기식 복지'에 책임을 물었다. 신문은 우선 “그리스 국민은 예상 밖의 개표 결과가 나오자 광장으로 몰려나와 환호했지만 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유로존 국가들”이라며 “그리스 국민은 벼랑 끝에 섰다”고 진단했다. 신문은 “그리스가 허리띠 졸라매기를 거부하는 ‘간 큰’ 채무자가 된 것은 400년 간의 오스만튀르크 지배에서 1821년 독립한 뒤 절반을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태로 보낸 역사와 무관치 않다”고 분석했다. 동아일보는 “폴 크루그먼 등 일부 경제학자들은 2010년 이후 구제금융 대가로 강력한 긴축 프로그램을 실행해온 그리스가 경제 위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은 지나친 긴축으로 경제 자체가 붕괴됐기 때문이라고 본다”면서도 “그러나 분에 안 맞는 소비, 세입을 능가하는 세출을 계속하는 태도로는 경제를 살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1981년 사회당이 집권하면서 퍼주기식 복지를 시작했고 국민은 당근에 맛을 들였다”며 “2001년 유로화 가입은 이를 더욱 부채질했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그리스를 보면서 국민이 깨어 있어야 나라가 산다는 점을 절감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을 통해 그렉시트 가능성 대비에 초점을 맞췄다. 이 신문은 그리스와 채권단의 추가 협상에 대해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채권단의 신뢰를 잃은 상황이라 추가 협상의 성사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면서 “그리스 국민은 ‘그렉시트’로 이어질 수 있는 험난한 여정을 스스로 선택한 셈”이라고 진단했다. 향후 파장과 관련해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떨어져 나가면 유럽은 물론 세계 금융시장은 메가톤급 충격이 불가피하다”며 “파국이 그리스에 그치지 않고 이탈리아·포르투갈 등 남유럽으로 불통이 튀면 이게 다시 유로존 전체로 전염돼 세계 경제가 동반 추락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신문은 "언제 쓰나미처럼 우리 시장을 덮칠지 모른다"며 우리 정부를 향해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한겨레는 이번 그리스의 ‘오히’(oxi·반대) 선택에 대해 “지난 5년의 긴축 프로그램이 남겨준 암울한 현실은 그리스 국민으로 하여금 더 이상의 긴축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리도록 이끈 주된 배경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채권단의 요구대로 연금과 임금을 삭감하고 허리띠를 졸라맸음에도, 그들이 맞닥뜨린 세상은 5년 새 국내총생산(GDP)이 25%나 쪼그라든 믿기 어려운 현실이었다”면서 '동정론'을 펴기도 했다. 그러나 한겨레는 “어쩌면 그리스의 비극은 유로화 도입으로 얻은 소중한 기회를 내실을 키우는 쪽으로 살리기보다는 단지 빚을 내서 거품의 열매를 즐기는 데 허비해버린 원죄에서 찾아야 할지 모른다”고 분석했다. 한겨레는 이어 우리의 가계부채 급증에 따른 미증유의 사태를 막기 위해선 "그리스 사태가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을 냉철하게 되새겨보며 만전의 대비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사설 제목에서부터 '그리스 국민의 긴축 반대 선택을 존중한다'고 썼다. 이번 결과에 대해 “채권국 입장에서는 그리스가 돈을 빌려간 뒤 못갚겠다고 배짱을 부리는 채무자처럼 보였을 것”이라면서도 “그리스 국민은 악질 고리대금업자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고 반긴다”고 썼다. 이어 “5년 간의 긴축정책으로 삶의 질이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채권국이 새로 제시한 연금 삭감과 부가가치세 인상, 노동자 대량 해고 요건 완화를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유로존을 탈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도 했다. 신문은 “정부에 힘을 실어줬으니 제대로 된 협상을 하라는 게 국민투표에 드러난 그리스 국민의 뜻”이라면서 “유로존 정상들이 그리스 국민의 선택을 존중하고 받아들여 원만한 타협을 이끌어내길 기대한다”고 마무리지었다.

여러 시각이 있지만 그리스 사태의 원인은 분명하다. '여유가 없는 집이 빚을 내 소를 잡아먹었기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정치인이 이를 부추겼고, 국민은 따라갔다. 이제 빚을 갚자니 앞길이 너무 고달퍼 깎아달라고 조르는 형국이 됐다. 어느 시대나 정치 지도자는 코앞의 달콤함으로 국민을 유혹하는 경우가 많다. 소위 포퓰리즘이다. 당장 눈앞의 편리함이 미래의 고통으로 전이될 수 있음을 통찰하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느냐 여부에 따라 선진국이냐 아니냐가 결정된다.

먼 옛날 신(神)들의 나라로 불리던 그리스는 '민주주의 발상지'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이번 국민투표 결과를 “민주주의 승리”라고 했다. 그러나 한때 지중해를 제패했던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이미 2,000여년 전에 그 신들과 함께 사라졌다. 치프라스 총리는 지금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기도 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를 막기 위해 유로존에 암암리에 그렉시트는 막자고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의 경제력이 없으면 결국 이런 줄타기도 다 부질없는 일이다. 당장이야 연명할 수 있어도 장기적 해법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누가 빚 내서 먹고 살겠다는 이웃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하겠는가?

지금 포퓰리즘으로 신음하고 있는 나라는 그리스만은 아니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푸에르토리코 등 상당수 중남미 국가들은 아직도 '인기영합 대중주의'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가령 아르헨티나는 한때 신대륙의 신흥대국으로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나라다. 동화 ‘엄마 찾아 삼만리’의 배경이 된 나라가 바로 아르헨티나다. 가난한 나라 이탈리아에서 돈을 벌기 위해 머나먼 나라 아르헨티나로 가정부 일을 하러 떠난 엄마를 찾아가는 소년의 여정을 그린 이 동화 속 아르헨티나는 이제 더 이상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현실을 망각한 달콤한 공약에 취할 경우 국가의 안위는 물론 내 미래도 수렁에 빠질 수 있다. 이를 막아낼 냉철한 국민적 집단지성이 존재할 때 위험을 피해갈 수 있다. 지금 그리스에 필요한 것은 돈보다는 포퓰리즘을 가려낼 혜안이다. 이같은 지혜와 피땀 흘리는 노력이 없으면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 부어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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