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대선 당시 89.2%였던 투표율이 요즘 선거에선 50%대에 그치기도

투표율 하락 원인?… 정치 혐오·무관심 커지고 저지할 정당 선택지 부족해서

정치 혐오·정책서비스 실종 극복과 정당 사유화 예방 위해 선택지를 넓혀야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데일리한국=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유권자 10명 중 9명이나 투표를 한 경우가 있었다. 후보들이 당선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작은 지역의 선거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총칼로 위협을 받아가며 투표하는 북한의 경우도 아니다.

1987년 대선에선 10명 중 9명이 투표

직선제 개헌 직후 치러진 제13대 대통령선거의 투표율은 89.2%였다. 요즈음 세대가 이 투표율을 듣는다면 ‘설마’라는 의심이 되돌아올지 모르겠다. 이제는 나오기 힘든 투표율일 정도로 현실적이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1987년 있었던 대통령선거는 전무후무할 정도로 치열한 선거였다. 군부 통치를 이어가야하는 여당 후보와 영남, 호남, 충청을 대변하는 야당 후보들의 군웅할거(群雄割據)였다. 당시 후보들에 대한 호불호가 있겠지만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은 모두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있는 인물들이었다. 실제로 노태우 당선자를 이어 양김은 권좌에 올랐고 김종필은 총리 자리에까지 이르렀다. 어떻게 보면 지역 감정이 점철된 상처가 많은 선거였지만 유권자들의 관심은 충만했다. 경쟁력 있는 후보들이었지만 경쟁이 치열했기에 유권자들의 눈치를 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많은 공약들이 이 선거를 통해 나왔다. 심지어 노 당선자는 ‘중간 평가’를 받겠다는 약속까지 내걸었다. 가장 최근인 민선 6기 지방선거(2014년)에서 50%대의 투표율밖에 올리지 못한 사실과 평균 30%대에 머무르고 있는 재보궐선거 투표율을 생각한다면 1987년 대선 투표율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요즘 투표율이 하락한 첫째 이유는 정치 혐오와 무관심

요즈음 투표율 하락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 전반적으로 정치 무관심이 커진 이유를 우선 들 수 있다. 유권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정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함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점차 외면 받는 상황이 되었다. 더 큰 이유는 변화하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따라잡지 못한 정치권의 책임이 더 크다. 나날이 낮아지는 선거 투표율과 정치 무관심을 유권자의 책임으로 돌릴 일은 아니다. 1987년 대선과 비교한다면 우리 유권자들의 선택 범위는 지나치게 좁다. 투표장에 가더라도 고작해야 투표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정당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실상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양강 구도가 형성된 한국 정치에서 다양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좋든 싫든 우리들의 선택지엔 몇 개 정당의 메뉴만 올라와 있는 것이다. 지지할 정당이 없다. 지지하고 싶은 정당을 찾지 못하는 비율이 여론조사에서 30% 이상을 차지한다(그림1). 과거엔 무당층이라고 하더라도 그 중엔 부동층의 비율이 상당했다. 당장은 어느 정당에게 투표할지 정하지 못했지만 투표할 마음까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최근 정당 지지율에서 무당층은 정치에 대한 혐오가 점점 높아져 가는 ‘정치 불신층’이 되고 있다.

무당층 30%…정당 선택지 넓어져야 정치 혐오 극복 가능

이런 정치 불신을 떨쳐내려면 정당의 자기 반성과 정치 혁신이 있어야겠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국민들의 선택지가 넓어져야 한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주어진 정당밖에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한국 정치의 발전은 요원해 보인다. 왜냐하면 기존 정당들의 수준이 곧 한국정치, 더 나아가 한국의 수준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정당에 대한 선택지가 넓어져야만 정치 혐오 심화, 정책 서비스 실종, 정당 사유화 강화라는 폐단을 극복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선택지를 넓혀야 하는 이유가 있다.

우선 정치 혐오가 심화되는 상황 때문에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무당층의 비율이 30%를 넘어섰다. 새누리당 지지율이 40%대이고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이 20%대 중반 정도라면 무당층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여차하면 집권여당을 위협할 수준이다. 제1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보다 비율이 더 높다. 누군가 정치적으로 무당층을 결집시킬 수 있다면 단번에 제1 야당으로 올라설 수 있지 않을까. 전반적인 무당층 비율이 높아지는 상황이 우려스럽지만 더 큰 걱정은 장차 대한민국의 짊어질 젊은 세대의 정치 혐오가 커졌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의 정치적 관심과 호기심을 반영하기에 기존 정당들은 역부족이다. 겉으로는 청년 세대를 대표할 수 있는 국회의원 후보를 발탁하고 당내 선거위원회를 만들고는 있지만 관심을 되돌리기엔 충분하지 않다. 현 정부 들어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20대들의 응답은 거의 절반에 이른다(그림2).

유럽의 경우, 20대들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일 만한 정책정당들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환경 문제를 주로 다루는 녹색당, 인터넷을 통해 정치적 관심을 활성화시키는 해적당 등이다. 우리는 국회의원 선거뿐 아니라 지방선거에서도 청년세대들의 등용문이 매우 좁다. 사실상 두 개 정당이 정치권을 반분지계(半分之界)하는 현실에서 공천을 따내기란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 공천권을 받기 위해 펼쳐지는 이전투구(泥田鬪狗)과정에서 좌절하는 젊은 정치인들이 다반사다. 청년 유권자들에게는 일자리, 주거. 결혼, 학업 등의 걱정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단순한 정치 무관심이라면 모르겠지만 정치 혐오는 매우 위험하다. 앞으로 이들이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좌우할 위치에 서게 된다. 정치 혐오가 깊어진다면 투표율은 더욱 낮아지기 마련이고 제대로 된 정치 지도자를 선택할 리 만무하다. 정치 실종의 하류 국가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지지할 정당이 없는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정당의 선택지는 필연적으로 넓어져야 한다.

정책서비스 실종 극복 위해 선택할 정당이 많아야

다음으로는 정책서비스 실종을 극복하기 위해서 선택할 정당은 많아져야 한다. 지지율과는 무관하게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으로부터 받는 정치서비스는 국민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 현재 정당의 지지율을 묻는 질문에서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또는 그 외 군소 정당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이 질문은 새누리당이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새정치민주연합이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는 담겨 있지 않다.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와는 본질적인 성격이 다르다. 국민들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국민들의 민생 문제 해결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주문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돌아온 모습은 민생 법안을 장기 방치한 채 정쟁에 몰두한 모습이다. 정쟁의 당사자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기 때문에 민생 법안은 곧잘 정치적 볼모로 전락한다. 만약에 다른 경쟁력 있는 정당이 국회 내에 있다면 그리고 그 정당이 정책 서비스 경쟁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여지가 크다면 지금처럼 정쟁에만 몰두하는 모습으로 방관하고 있을까.

지금의 정당에 대한 선택지는 미흡해도 너무 미흡하다. 한국갤럽이 자체 조사로 지난 5월 19~21일까지 실시한 조사(전국 1004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 95%신뢰수준±3.1%P)에서 국회가 그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여부를 물어본 결과 ‘잘하고 있다’는 의견은 10명 중 1명도 채 되지 않은 5%에 불과했다.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10명 중 9명에 가까운 88%나 되었다. 이 평가만 놓고 보면 두 정당에 대한 국민 여론의 평가는 낙제점 이하 수준이다. 무분별한 정치 혐오나 국회의원들에 대한 폄훼는 바람직하지 않고 위험하다. 그러나 국민들이 평가한 국회의 역할은 참담하다. 국민들이 국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꼽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여야 합의가 되지 않고 싸우기만 하며 소통이 되지 않는다. 당의 이익과 입장에만 따르고 파벌 정치를 한다. 자기 이익만 챙기고 비리 문제가 있다. 법안 처리가 안 되고 일 처리가 느리다. 국민을 생각하지 않고 여론을 무시한다.’ 아마추어가 아니라 수십 년 지속되어온 프로정당이 이런 평가에 그친다면 정당의 다양화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정당 사유화 막기 위해 선택지 넓어져야

마지막으로 정당의 사유화를 예방하기 위해 선택지가 넓혀져야 한다. 전체 298명(정원 300명)의 국회의원 중 160명은 다수당인 집권여당 새누리당 소속이다. 130명은 제1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 소속돼 있다.(7월6일 현재). 정의당은 5명밖에 되지 않아 제2 야당이란 호칭을 붙이기가 어색하다. 두 정당이 전체 의석의 대부분인 290석을 차지하고 있다. 두 정당이 한국 정치를 좌우하고 있다. 과거 제2 공화국 때는 소수 정당의 난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정치 혼란에 대한 우려가 컸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국민들의 의식 수준과 교육 수준이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오히려 기득권에 안주하고 변화하지 않는 거대 정당의 현실에 유권자들은 더 크게 분노하고 있다. 거대 정당들은 당직 인선과 선거 공천이라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절대권력에 집착한 모습이다. 새누리당의 친박과 비박, 새정치민주연합의 친노와 비노 모두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 스타일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공천권에 얼마나 목을 매달고 있으면 당 대표는 오픈프라이머리를 통해 자신에게 닥쳐오는 정치적 부담을 피하고 싶을 정도다. 국민들의 추상과 같은 분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통령의 한마디에 당이 사분오열(四分五裂)의 자중지란을 보이고 있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국민들의 생각이 두려웠다면 과연 이런 모습을 대수롭지 않게 보였을까. 당이 특정 계파에 의해 사유화된 모습을 피했더라면 끝을 모르는 당내 갈등과 계파 대립은 없었을 것이다.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인물 역시 두 정당의 당 대표라는 점에서 정당 선택지의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국민들이 제 아무리 원하는 인물을 차기 대선후보로 찾아내더라도 층층이 쌓인 당내 계파의 터널을 뚫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제왕적 총재의 폐단은 사라졌지만 선거 때마다 공천권을 둘러싼 정치 사유화는 한 발짝도 물러남이 없다.

광복 후 불완전하게 정당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산업화를 거쳐 민주화 시대를 관통했다. 정당이라는 정치적 결사체를 통해 한국 정치는 나름 큰 발전과 성장을 거듭해왔다. 많은 정당들이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기도 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민주노동당이 전신인 통합진보당의 정당 해산 선고가 있었다. 변화하지 않으면 변화 당하는 법이다.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은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노동 정책에 전문화된 경쟁력을 보이며 많은 유권자들의 선택 메뉴에 이름을 올렸다. 급기야 2004년 총선에서는 13.8%의 정당득표를 차지하며 한국정치의 작은 거인으로까지 성장했었다. 거기까지였다.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는 데는 수년이 걸렸지만 잃는 데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그 이름만 수차례 바꾸었을 뿐 국민들의 평가를 들여다보면 별로 변하지 않았다.

여론조사 결과 국민들은 새로운 정치세력 출현 희망

리서치앤리서치가 데일리한국의 의뢰를 받아 지난 5월 15~16일 실시한 조사(전국 1000명 유무선RDD전화조사 표본오차 95%신뢰수준±3.1%P)는 한국 정당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안이 무엇인지 물어본 결과, ‘현행 지도부의 사퇴’가 10명 중 3명 정도(29.6%)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현 지도부의 당내 혁신 및 공천 개혁’, ‘새정치민주연합의 틀을 뛰어넘는 신당 창당’ 순 이었다(그림3). 혁신과 공천 개혁을 하지 못해 내홍을 겪고 있는 제1 야당에 대해 유권자들이 내놓은 처방은 지도부 사퇴와 신당 창당이다. 말하자면 새롭게 국민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정치 세력의 탄생을 희망하고 있다.

새누리당 역시 예외는 아니다. ‘새누리당과 청와대, 정부 등 여권 전체적으로 볼 때 현 시점에서 어느 세력이 여권을 주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는지’ 물어본 결과, 비박 그룹이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의견과 친박 그룹이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응답이 각각 35.6% 대 32.6%로 팽팽했다. 새누리당 지지층만 떼어 놓고 보면 과반이 넘는 53.6%는 친박그룹이 여권을 주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조사 결과를 놓고 보면 두 진영은 함께 할 수 없는 정치세력으로 보인다. 어쩌면 국회법 개정안과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와 관련된 친박과 비박의 진영 대결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한국에서 크게 성공한 세계적인 아이스크림 회사가 있다. 처음 한국 진출을 시도할 때만 해도 수십 가지나 되고 다양한 이름을 가진 아이스크림이 한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고 한다. 고작해야 바닐라 아니면 초코 아이스크림으로 나눌 때였으니 말이다. 요즘은 다양한 맛과 이름을 좋아하는 젊은 세대의 아이스크림 사랑은 유별날 정도다. 이제 정당도 아이스크림만큼이나 국민들의 선택 폭이 넓어지길 희망한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서울대 국제대학원, 고려대 행정학과 박사과정 수료-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길리서치 팀장-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이사,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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