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와 잡스의 리더십 평가받는 이유는… 자신의 '콘텐츠' 분명하고 실적 중시

평소 명확한 입장·비전 정립해야… 일에 매몰되지 말고 소통하며 주변을 살펴야

천영준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
[데일리한국=천영준 연세대 책임연구원 칼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대한 전세계인들의 관심이 뜨겁다. 얼마 전 미국 대법원의 동성 결혼 합헌 판정에 대한 지지 선언(‘Love is love’)에 이어 총기 난사로 살해당한 흑인 목회자와 신자들을 기리는 예배에서 찬송가를 불렀던 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왜 그럴까? ‘콘텐츠’가 분명한 광폭 행보 때문이다.

최고지도자라는 자리는 자신의 의견을 뚜렷하게 밝히기 어려운 위치다. 왜냐하면 특정 사안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즉시 여러 이해관계자 집단으로부터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개인적 국정 철학을 뛰어넘는 범국민적 표준을 보여주어야 하는 지도자가 분명한 자기 입장을 밝히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러나 때때로 지도자의 확실한 의견 정립은 어려운 정국을 슬기롭게 돌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티브 잡스, 애플 경영 제1성은 "다시 우리 가슴이 뛰게 하자"

1990년대 초반 실적 부진으로 곤경을 겪던 애플에 다시 입사한 스티브 잡스가 가장 깊게 고민했던 것은 거대화된 기업 안에 수많은 이해관계자 집단이 얽히고설켜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과거의 벤처 정신, 콘텐츠와 실적 중심의 문화가 온데 간데 없는 상황을 우려했다. 그가 경영에 복귀하자마자 제1성으로 내건 말은 ‘다시 우리의 가슴이 뛰게 하자’는 것이었다. 단순 수익성과 성과 중심의 제품 개발이 아니라, 인류를 바꿀 만한 창의적 콘텐츠를 만들자는 애플 초기의 이상으로 돌아가자는 주문이었다. 그의 확실한 의지 표명은 리더십 부재로 곤경을 겪고 있었던 애플의 위기 수습에 큰 도움이 되었다. 잡스의 말은 관료화된 구 경영진에 대한 혁신 조치를 단행하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애플의 브랜드 가치는 소비자중심주의에 있으며, 조직원들의 자발적 동기로 인한 노력이 그 원동력임을 전제한 발언이기도 했다.

월급쟁이 경영자나 선출직 리더는 왜 표류하나?

그러나 자신의 가치와 철학을 일관되게 피력함으로써 조직을 통솔할 수 있는 리더는 정말 많지 않다. 그들이 오바마나 잡스가 걸었던 길을 거부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여력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많은 지도자들은 자신이 중간 관리자였을 때 가졌던 습관을 최고의 위치에서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우선 바쁜 회의와 업무 일정을 즐긴다. 수첩이나 다이어리에 촘촘하게 기록해 둔 일들을 하나씩 지워가며 ‘오늘도 열심히 했다’는 느낌을 소비한다. 대부분의 리더들은 근면·성실함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고, 자신의 일 자체를 사랑하는 ‘업무 중독자’인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유명 대기업의 경영자들이 임원이 된 후 ‘20년 간 세 번 휴가를 갔다’는 말을 미담처럼 여기겠는가. 이들은 자는 시간을 빼면 거의 일에 대한 생각뿐이다. 누군가와 담소를 나누거나 식사할 때조차 일의 가치로 귀결되는지 여부를 따진다.

그러나 큰 틀을 보고 미래를 위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이들에게도 안타까운 내막이 있다. ‘언젠가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밀려날지 모른다’는 위기 의식 때문에 업무를 위한 발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월급쟁이 경영자이거나 선거로 선출된 리더일수록 자신의 단기 성과를 빨리 만들어내는데 급급하다. 그렇다 보니 부지런함 이외에 다른 가치가 몸에 배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우리 기업이 미래 지향적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오너 경영이 꼭 필요하다고 여러 전문가들이 동의하게 된 데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자신의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끼는 ‘피고용자’들의 시각, 실수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일개미’들의 시각이 상당수 리더들에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끊임없이 표류할 수밖에 없다. 요즘 들어 많은 기업 오너들이 전문경영인의 임기를 공식화해주거나 은퇴 시 관가나 비영리법인 등으로 보이지 않는 ‘이직 배려’를 해주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나날이 ‘일’만 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았을 그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만 하다 보면 인간관계와 정치에 무감각해진다

그러나 일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리더들이 불쌍하다고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성실한 습관은 집중력과 효율성을 높이지만 동시에 주변을 살피는 유연함을 저해할 수 있다. 특히 회의가 많은 리더들이 문제다. 수많은 업무 때문에 부하와 동료들을 일일이 살필 수 없는 지도자들은 공식 회의를 통해 그들과 소통하고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정형화된 소통 상황에서 본인의 진심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때때로 ‘가면’을 쓴 부하들도 정말 많다. 특히 일일이 개별 사안에 대해 터치할 여력이 없는 리더가 일을 시킬 때 진면목이 드러난다. 어떤 사람은 일이 잘 되게끔 하기 위해 백배 노력을 하지만 지도자의 기호를 건드리지 않아 인정을 받지 못한다. 반면 누군가는 콘텐츠의 정밀도는 떨어지면서 ‘들은 풍월’로 리더가 좋아할 만한 내용들만 대충 꾸려서 보고해 칭찬을 받는다. 비슷한 습관이 두세 번 반복되면 조직 안에서 총애를 받는 그룹과 그렇지 못한 그룹이 나뉘게 된다. 그러나 리더는 이런 내막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큰 틀을 생각하느라 여력이 없는 자신의 뒤를 충실히 따라오는 사람만이 훌륭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인정받지 못한 자들은 자연스럽게 불만을 갖게 되고, 여기 저기서 ‘상대방’과 자신의 상사를 비난하는 언사를 일삼는다. 그러다 보면 조직 안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고, 능력 계발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자신의 성공과 보신을 위해 리더의 방향을 적극 지지하는 이들과, 불만을 가진 이들, 그리고 무관심한 이들로 집단이 분화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러나 조직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책임감을 느끼는 리더가 많지 않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 솔직하게 의사결정을 내렸을 뿐인데, 몇몇 충성도가 약한 사람들이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여기기 쉽다. 특히 똑똑해 보이는 부하일수록 ‘찍힐’ 가능성이 높다. 최근 뜨거운 감자가 된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 일부 간의 갈등도 사실은 바쁜 리더 밑에 있는 집단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특징일 수 있다.

평소 명확한 입장 피력하고, 마지막 산출물을 분명히 밝혀라

한때 큰 그림을 보고 집단 간의 역학 구도를 정비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언론에서 ‘그랜드 디자이너’라는 호칭을 붙인 적이 있었다. 흔히 정계에서 유능한 중재자 역할을 하던 전문가들이 이 표현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리더들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덕목인 듯싶다. 복잡한 경영 환경 속에서 리더들에게 조직 안에서 ‘스킨십’을 강화하라고 요청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한 주문일 수 있다. 오히려 그의 ‘영(令)’이 올바로 서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타당할 수 있다. 그러자면 리더는 자신의 평소 소신을 키워드로 정리해 이야기하는 습관, 어떤 일을 했을 때의 성과와 비전을 분명히 보여주는 습관을 가져야만 한다. 디자이너가 계산과 예측뿐 아니라 구현과 개발에도 능한 사람임을 뜻하듯이 리더는 특정한 일의 미래 가치를 명확하게 현재의 시점에서 환산할 줄 알아야 한다. '공포 정치'를 구사하는 경영자보다 더 좋지 않은 케이스가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다가 막판에 화를 내거나 포상함으로써 상황을 정리하는 사람이다. 조직 경영은 연애처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의 ‘마지막 통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리더들이 깨달아야 한다. 그러자면 스스로의 일에 파묻힐 것이 아니라, 세심한 관리와 분석이 필요한 일은 적당히 떠맡기고, 자신은 복잡한 이해관계나 상충되는 전략적 대안에 관심을 기울이려는 대범함이 필요하다. 또 스스로의 오피니언과 철학을 정립하기 위해 조직 안팎의 다양한 사람, 특히 동종 업계의 비슷한 수준에 있는 지도자들을 자주 만나는 작업이 요구된다. 잡스나 오바마 같은 천재형 지도자들도 이런 노력과 고민을 통해 훌륭한 인물로 거듭났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리 리더들이 그들을 뛰어넘는 날도 머지않을 것이다.

■천영준 책임연구원 프로필
연세대 경영학과- 연세대 정보산업공학 석사, 기술경영협동과정 박사- 다음소프트 연구자문역- 합창단 Chantez a dieu, 오페라단 '청 ' 자문위원-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현)/저서 <직장인 4대 비극> <바흐, 혁신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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