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엔 "정치 엉망이어도 나라는 발전"… 요즘은 국가가 정치를 따라가 걱정

정장선 전 국회의원
[데일리한국= 정장선 전 국회의원 칼럼] 전에는 우리 국가와 정치는 따로 움직이는 듯했다. 정치가 엉망이어도 나라는 발전했으니 말이다. 국가적 위기도 많았지만 공장도 많이 세워지고 수출도 잘되고 그래서 선진국 문턱에 왔으니 정치가 잘못해도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국가가 정치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악화'(정치)가 '양화'(국가) 구축하는 게 아닌가 우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란 말이 있다. 중국 송나라 때 불서 전등록(傳燈錄)에 나오는 말 그대로 불행은 홀로 오지 않고 겹쳐온다는 뜻이다. 경제는 안 좋고 한반도 주변 정세도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성완종 파문에 이어 메르스가 강타해 우리 한국이 휘청거리고 있다. 지금 국민들은 극도의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불안감은 일시적 현상이 아닌 것 같아 더욱 난감하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런 흐름이 장기화되는 것은 아닌가, 이대로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조금씩 우리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외국에서 부러워하던 한국의 역동성과 위기 때 더욱 강해졌던 우리의 오기는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게다가 세월호 사건은 우리가 선진국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도 아직 멀었다는 우리의 참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다시 해보자"고 했지만 세월호 사건이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 수준에 대해 한탄할 때 메르스가 다시 우리를 덮쳤다. 이번 메르스도 초기에 대응을 잘못해 생긴 인재(人災)였다. 화복무문 유인소소(禍福無門 惟人所召)란 말도 있다. 화와 복은 따로 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부르는 대로 온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이제 사람들은 정말, 성공한 사람들조차도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말들을 하는 지경이 되었다.

국가는 기업의 흥망과 종종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대기업 연구소의 김성표 수석연구원은 '저성장기의 경영 전략'이란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업들이 전 세계적으로 최근 겪는 저성장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기업 경영의 성장과 질의 저하를 초래하는 '성과 하락'을 경험하고 이것이 계속될 경우 기업의 미래 역량을 확보해주는 재원 축소와 상품의 차별성이 저하되는 '역량 잠식'으로 이어진다. 궁극적으로 기업가 정신 약화와 근로 의욕이 위축되는 기업의 '활력 침체'로 들어선다는 게 김성표 수석연구원의 분석이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성과 하락, 역량 잠식 이어 활력 침체 단계로

실제로 대한민국 기업가 90%가 과거 성장기 대비 기업가 정신 위축을 느끼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은 지금 국가의 모든 분야에서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의 저성장이 지속되면서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돼가고 있고, 여기에 정치권의 무능과 부패로 세월호와 메르스 같은 초보적 사태에 국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대한민국 전체가 자신감을 상실해가고 있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이미 성과 하락과 역량 잠식에 이어 마지막 단계인 활력 침체로 들어선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든다.

한국은 지금 저성장, 저물가, 저환율 3중고에 수출마저 마이너스를 이어가는 등 심각한 경제 위기 국면에 직면해 있다. 경제 성장은 3%대 내외를 맴돌았고, 금년에도 메르스 때문에 2%대 성장을 보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제 저성장이 일반화되어 가고 있으나 정부의 뾰족한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도는 20%대로 떨어졌고, 국회 신뢰도는 5%에 그친다. 여기에 대통령과 국회, 여야 정당 내부 모두 온전한 것이 없다.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획기적으로 고치겠다고 수없이 약속했지만 여전히 정부는 대통령만 쳐다보고 있다. 대통령과 여당의 불통은 여전하고 청와대와 여당은 국회법 문제로 언제든 터질 휴화산 상태이다. 야당은 선거에 그렇게 지고도 친노 비노, 그리고 호남 신당 출범 가능성 등이 거론되며 분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대통령과 정치권만이 지금 국민들이 얼마나 힘들어 하고, 대한민국이 얼마나 심각한 위기 국면에 처해 있는지, 그리고 역사적으로 자신들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주겠는가. 지금 우리 정치권은 메르스라는 국가적 비상 사태 앞에서 잠시 휴전만 한 셈이다. 메르스가 마무리되면 언제 어떻게 전쟁으로 돌입할지는 결국 시간 문제일 것이다.

세월호와 메르스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 국민이 겪는 좌절감은 상상을 넘는다. 이런 일은 결국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무신불립(無信不立·믿음이 없으면 일어서기 힘들다) 상황으로 갈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희망의 빛이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 경제, 정치, 국제 정세, 남북문제 어느 하나 좋아질 조짐이 없다.

이럴 때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정말 변해야 한다. 정치인에게도 국가에게도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모경제연구원에서 조사한 불황기를 극복할 CEO 자질을 보면 제일 중요한 것들이 소통, 비전 제시, 설득과 공감대 확보이다. 우리 국가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덕목과 차이가 없다. 그리고 이런 주문은 수년 간 거의 매일 요구해 왔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링컨의 리더십을 다시 본다. 링컨은 대통령선거에서 경합했던 슈어드를 국무장관, 체이스를 재무장관, 베이츠를 법무장관에 임명했고 민주당 출신들에게도 해군장관, 우정장관 그리고 링컨을 '긴팔원숭이'라고 빈정대고 야비한 행동까지 했던 스탠턴을 중요한 전쟁장관에 임명해 노예제로 위태로웠던 미국의 암울한 시대를 헤쳐 나갔다. 링컨과 같은 상대에 대한 배려와 포용, 자신감이 우리 정치인들에게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또 그런 리더십을 통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가 극복되길 국민들은 마지막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장선 전 국회의원 프로필
중동고, 성균관대, 연세대 행정학 석사- 16,17,18대 국회의원(경기 평택 을)- 열린우리당 정책위부의장- 국회 지식경제위원장- 민주당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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