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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문가 칼럼] "통일 준비하려면 냉전구조 해체와 '북한의 1989 동독화' 추진해야"
  • 기자김동명 독일문제연구소(RIGA) 소장 승인시간승인 2015.05.05 11:31
[광복 70주년 기획-국가 혁신과 통일 준비 ⑩]
독일과 한반도의 여건 다르다… "독일처럼 무혈평화통일 이뤄야"
조기 흡수통일 어려워… 북한 체제 변화 유도하며 점진적 통일로
냉전체제 극복 시급, 중장기적으로 북한 산업화·민주화 지원해야
  • 김동명 독일문제연구소 소장
[데일리한국= 김동명 독일문제연구소 소장 칼럼] 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전승 4개국은 나치 만행에 대한 대가로 독일을 분단시켰다. 그러나 동·서독은 분단 45년 만인 1990년 10월 3일 재통일되었다.

1. 독일 통일은 무혈평화통일이며 흡수통일이다.

1989년 소련 및 동구권의 몰락으로 야기된 동서 냉전 체제의 종식은 국제 문제 성격을 띠었던 독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배경을 마련했다. 이같은 환경 속에 동독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의 자체 모순으로 저절로 와해되었다. 서독이 총 한발 쏘지 않았으나, 동독은 교회와 반체제·민주화 세력들의 지원 아래 평화 시위를 주도한 동독 시민들에 의해 무너졌다. 이런 관점에서 독일 통일은 무혈평화통일이다.

통일 방식과 관련해 통일 직전 동독 인민의회는 서독 기본법(헌법) 23조에 의한 통일을 결정했다. 동독이 서독에 그대로 편입되어 당장 기본법을 적용받겠다는 결정이다. 따라서 독일 통일은 힘센 서독이 힘없는 동독을 강제로 집어삼킨 통일이 아니라, 동독이 제발 흡수해 달라고 서독에게 간청한 흡수통일이다.

한반도 통일도 독일처럼 무혈평화통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공산체제가 저절로 와해되는 가운데 한국 사회와 체제를 동경하는 북한 주민들이 무혈평화혁명을 주도해야 한다.

2. 독일과 한반도 문제는 어떻게 다른가?

독일과 한반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강대국에 의해 분할된 후 고착된 분단으로 이어졌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독일은 주변국을 위협하고 유럽의 안정을 해칠 정도로 너무 강하여 분할됐으나 한반도는 달랐다. 남북한은 너무 약하여 일제로부터 식민통치를 당했고, 한반도는 일본의 패망 이후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이유로 미국-소련에 의해 38선을 경계로 강제 분할되었다.

독일의 분할은 미-소를 중심으로 한 동서 냉전이 가열되면서 동·서독 분단으로 고착화되었다. 반면 한반도는 미-소 강대국에 의해 어이없게 강제 분할되었으나, 한반도의 분단 책임은 남북한 공동정부 수립에 실패한 남북한 정치지도자들에게 기인한다. 남북한 자유총선에 따라 남북공동정부를 구성하라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1947.11)에도 불구하고 결국 남북한은 각각 독자 정부를 수립했기 때문이다. 또 한반도의 분단은 소련의 팽창주의와 소련의 이해를 대리한 김일성에 의해 발발된 6.25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고착화된 측면이 있다.

독일의 경우 고착된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서 동서 진영 간 긴장 완화가 우선시되어야 했다. 반면 한반도의 경우 동서 냉전의 큰 구도 속에 남북한 간의 또 다른 냉전이 전개됐기 때문에 미국-소련·중국 양 진영 간의 긴장 완화와 함께 남북한 간의 냉전이 종식되어야 비로소 분단이 종식될 것이다.

3. 현재 한반도의 통일 여건은 객관적으로 어떤 상태인가?

2014년 초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에 따라 '통일'이란 단어가 우리 사회에 널리 회자되고 있다. 이후 통일준비위원회가 설립되고, 통일 관련 각종 행사 등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통일한국의 국력은 엄청나게 신장될 것이며, 국제적 위상도 획기적으로 향상될 것이라는 등 온통 통일한국 관련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는 연구들이 봇물 터진 듯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안보와 통일 여건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면 우리의 통일 전망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한반도의 안보 여건과 통일 여건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현실에 맞는 우리의 통일 전략을 마련하고 준비해가야 할 시점이다.

남북한은 분단된 지 7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관계 개선은커녕 아직도 냉전 체제 속에 머물고 있다. 우리의 통일 대상인 북한은 여전히 공산체제를 지키고 있을 뿐 아니라, 남북한 군대는 180만 명이 중무장한 채로 70년째 대치 중이다. 6.25 남침 이후 북한은 지금까지 군사적 도발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핵무장한 상태이다. 남북관계는 정부 공식 통일 방안 1단계인 화해·협력 단계조차도 아직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반도 현실이다. 최근 한반도 주변 4강의 역학관계도 또 다른 '신냉전 체제'로 발전하고 있어서, 한반도 냉전 체제 극복에 어려움을 조성하고 있다.

이처럼 객관적인 안보 여건을 고려할 때 당장 통일이 도래할 전망은 지극히 불투명해 보인다. 따라서 한반도 냉전 체제 극복이 통일보다 더 시급한 과제이다. 이는 안보 정책적 시각의 대북 정책이 통일 정책적 시각의 대북 정책보다 훨씬 더 우선적인 비중으로 다뤄져야 함을 시사한다.

한국 내 많은 인사들은 한반도 통일과 관련해 북한 내 급변 사태에 따른 흡수통일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이명박정부 때 '통일세' 도입 문제나 '통일 항아리' 준비 등이 모두 이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북한 공산체제의 기능이 마비되어 체제 붕괴가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장기간 지속되는 열악한 경제 상황과 독재체제에 반기를 드는 체제 이탈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김정은 체제 하에서 급변 사태 가능성은 군과 당 관료들 간의 경제권 확보 문제로 인해 갈수록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향후 북한의 급변 사태는 1989년 여름 동독의 아래로부터의 혁명과 같은 성격을 띠지는 않을 것이다. 설사 북한 에서 김정은의 유고 등과 같은 급변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북한 체제는 붕괴되지 않고 존속할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은 체제 수립 이래 독재 체제를 유지해오고 있고, 북한 주민들은 주체이념으로 무장된 채 70년 이상 공안 당국으로부터 감시·통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북한 내에는 동독에서 통일운동을 주도했던 야당, 반체제 및 종교지도자, 민주화 개혁세력 등과 같은 집단이 전혀 없는 상황이다.

설사 북한 내 급변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조만간 독일식으로 흡수통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2015 북한'과 '1989 동독'은 정치문화, 지도부의 이성, 군부의 영향력 관점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내 아래로부터의 혁명 움직임이 있더라도 중국의 천안문사태(1989년) 때처럼 군부에 의해 진압될 것이다.



4. 독일 통일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객관적 통일 여건은 갑자기 통일이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환상으로부터 우리 모두가 깨어나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언제쯤 한반도에 평화통일이 도래할까?

독일 통일은 장차 한반도 통일도 '정반합'(正反合)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거쳐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시사한다. 독일 통일은 헤겔의 역사적 변증법에 따라 '정반합'으로 발전되는 오랜 과정의 산물이었다. 아데나워(正)는 ‘친서방 정책’과 ‘힘의 우위 정책’을 통해 동독과의 국력 격차를 넓혔다. 브란트(反)는 양독 간 국력 격차를 바탕으로 동독을 품는 '동방정책'을 통해 양독 간 교류·협력을 제도화했다. 오랜 교류와 협력 끝에 콜(合)은 통일이란 결실을 거두게 된다.

서독과 한국 역대 정권의 역할을 비교해 볼 때 박정희 대통령은 아데나워 총리,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은 브란트 총리와 비견된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군사적 긴장 완화와 남북 화해·협력을 제도화하는 데 실패했다. 따라서 김대중 대통령은 동방정책으로 동·서독 간의 교류와 협력을 제도화시킨 브란트 총리와는 차이를 보인다. 박근혜정부에게 부여된 시대적 과제는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①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 달성과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저지하고, ② 남북 화해·협력의 확대 및 제도화와 남북 정치·경제 공동체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다.

독일 통일은 우리에게 교류·협력을 통해 북한의 체제 변화를 유도하고 점진적 통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분단 시절 동·서독의 교류·협력이 한반도에 주는 시사점은 첫째, 동·서독 교류·협력이 동독의 체제 변화를 유도했고 동독 주민들이 서독을 동경하게 만듦으로써 통일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것이다. 경제 교류가 그 어떤 군사적 수단보다도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한 무기임을 우리에게 암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 간의 교류·협력 수준은 전반적으로 1945년 분단 당시의 동·서독 간의 교류·협력 수준보다도 질적·양적인 면에서 훨씬 뒤떨어져 있는 실정이다. 둘째, 동·서독 간의 교류·협력이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안보 문제가 양독 간의 교류·협력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독은 분단 당시 서독에 대해 군사적 도발을 자행했거나 국제사회를 상대로 안보 위협을 가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남북 교류·협력 관계는 북한 핵문제 등으로 인해 전 분야에 걸쳐 경색되어 있다. 따라서 북한 핵 문제와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 완화 등 한반도 안보 문제의 해결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남북 간의 교류·협력 분야에서 본질적인 진전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5. 한국은 어떤 통일 전략으로 평화 통일로 접근할 것인가?

한반도 분단을 이른 시간 내에 종식시키고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확고한 통일 방안과 이에 따른 대북 통일 전략, 그리고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통일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우리는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이상 냉철한 이성으로 통일 여건을 직시하며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을 유지해야 한다. 즉 화해·협력단계 → 남북연합 단계 → 통일로 이어지는 3단계 통일방안 중 2단계인 남북연합 말기 단계에서 남북한은 1:1 합의에 의한 통일을 지향하든지, 혹은 독일식 모델처럼 북한 내 급변 사태 발생 후 한국에 흡수되는 통일 방안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북 통일 전략은 '북한의 1989 동독화'로 중장기적 시각에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북한 내에서 '신사고'를 하는 새로운 지도자가 출현할 수 있도록 수차례에 걸친 정권 교체가 이뤄져야 하고 북한 사회의 민주화, 북한 주민들의 친한국화, 북한의 산업화, 북한 군부의 온건화 등도 필요하다.

적화 노선과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을 포기할 실용주의 노선을 지향하는 지도자가 평양에 등장할 수 있도록 수차례에 걸쳐 정권 교체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한국은 국제사회와 긴밀한 조율 속에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는 대북 통일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및 압박에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통일의 물꼬는 평양에 제2의 고르바쵸프나 등소평이 등장할 때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북한 사회의 민주화를 유도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 사상과 자본주의 외부 사조를 북한에 전파해야 한다. 또 김씨 왕조의 독재통치 내막을 폭로해 반독재·민주화를 주도할 혁명 역량을 구축해야 한다. 또 북한 주민들의 친한국화를 유도하기 위해 교류·협력을 통해 한국 실상을 전파시켜야 한다. 한류(드라마·영화·음악)의 파급도 북한 주민들이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동질성 회복을 위해 인도적 지원은 지속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산업화를 지원하기 위해 민생 인프라 분야(교통·통신·도로)에도 미리 투자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남·북·중·러 협력 사업에 참여하고, 개성공단 등 협력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실용주의 노선을 추종하는 지도자가 등장할 경우 북한 군부도 온건화될 것이다.

6. 통일 준비를 위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 문제와 '북한의 1989 동독화'가 중장기적 과제라는 점에서 지금은 대내적 통일 준비에 더욱 치중할 때이다.

한국 정부의 대내적 통일 준비 과제 중 첫째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바탕으로 착실하게 국력을 신장시키는 일이다. 북한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북한 지역 인프라 구축과 북한 주민들에 대한 사회보장 등 막대한 통일비용을 준비해야 할 주체는 한국이다. 독일의 경우 동독 재건을 위해 투입된 순이전액은 2조 유로로 추계된다. 이는 독일 GDP의 4%, 동독 지역 GDP의 30%에 해당되는 액수로, 매년 평균 약 1,000억 유로(150조원) 꼴이다. 한국 국가 예산의 2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남북한의 경제력 격차는 통일 전 동·서독 간의 격차에 비해 훨씬 큰 반면 남북 통합을 주도해야 하는 한국의 경제력은 서독에 비해 훨씬 열세이다. 따라서 통일비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독일보다 훨씬 더 많은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1989년 동독의 GDP는 서독의 15%였던 반면, 2013년 북한의 국민총소득(GNI)은 약 300억달러로 1조1,400억달러인 한국의 2.6%(1/38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막대한 통일비용을 우려하여 통일을 주저하거나 반대해서는 결코 안 된다. 기회가 포착되면 언제든지 통일비용과 상관없이 통일을 달성할 필요가 있다. 통일은 통일비용을 요구하지만, 반면 분단비용 지출을 불필요하게 만들고 '평화배당금'이란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통일을 대비하여 국내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남 갈등'을 해소하고 선진 시민사회의 기반을 육성하는 일이다. 분단 후 좌익세력 대 우익세력 간 이념 대립은 6.25를 통해 더욱 심화되었고, 급기야 종북·좌파와 우파 간의 이념 갈등으로 확대되었다. 남북 체제 대결이 심화되는 가운데 좌우 이념 대립은 일제 청산, 미군 주둔, 군부정권 등장 및 산업화 후유증과 결합되어 복잡한 양상으로 변질됨으로써 한국사회 양극화는 날로 심화되고 있다.

한국은 통일 대비 차원에서 주변국을 대상으로 일관되게 '통일 지향 외교'를 추진해야 한다. 통일한국이 주변국에 우호적이고, 결코 지역 안정과 평화를 위협하는 세력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도록 'Friendship with all' 대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통일한국은 한반도의 비핵화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 북한이 갖고 있는 ‘핵무기 보유국+테러 지원국+핵·미사일 기술 수출국+인권 탄압국’이라는 ‘오명의 딱지’를 제거해야 한다. 또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을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모습을 전 세계에 과시함으로써 ‘품위 있는 국격을 갖춘 국가’라는 인식을 전파해야 한다.

통일될 때까지 굳건한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완벽한 안보 태세를 유지해야 한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동독의 급변 사태가 확산되며 독일 통일이 가시화되는 과정에서 전승 4개국 중 독일 통일을 처음부터 지지한 국가는 미국뿐이었다. 나머지 3개국은 독일 통일과 관련하여 과거 역사적 경험에 기초하여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콜 총리는 전승 4개국으로부터 통일 관련 승인을 끌어내기 위해 처음부터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긴밀히 협의하며 통일의 모든 과정을 조율했다. 이에 부시 대통령은 소련의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 독일 측 입장을 대변하면서 독일 통일을 강력히 지지함으로써 프랑스와 영국의 반대 입장도 조정하고 설득했다. 미국의 적극적 지지가 없었다면 독일 통일은 어려웠을 것이다. 한반도 안보 및 통일 여건을 살펴볼 때 굳건한 한미방위동맹체제 유지는 한반도 통일을 위한 가장 값진 투자가 될 것이다.

■김동명 독일문제연구소 소장 프로필
- 육군사관학교, 서울대 독어독문과, 독일 콘스탄츠대 국제정치학·독문학 석사, 콘스탄츠대 국제정치학 박사- 국방부 군비통제관실 북한 핵문제 담당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국방정책 담당관- 주독 한국대사관 국방무관- 국방부 군비통제관실 대북정책과장- 국제기구 포괄적 핵실험 금지기구(CTBTO) 국제협력과장-민주평통 상임위원(현)-독일문제연구소 소장(현)/저서 <독일 통일 그리고 한반도의 선택>(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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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5/05/05 11:31:14 수정시간 : 2020/02/07 1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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