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여야 정치인들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는 사실상 오십보백보 차이
미국·유럽연합에서는 정치자금 기부 공개에 초점… 미국은 공개 로비 허용
'리스트' 외 다른 부정 자금 수수자도 엄벌해야… 정치자금법 등 개정해야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 칼럼] 고 성완종씨의 보복성 폭로로 정치계는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 그의 리스트가 공개될까 정치인과 공무원, 은행원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사실이지 정치에서 돈은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에 '검은 돈'을 배척한 정치인이 적은 것이 현실이다. 과거 정태수씨 사건을 비롯하여 기업인들이 정치권에 검은 돈을 제공하여 그 대가를 받은 경우가 허다했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를 지켜보면 여ㆍ야 정치인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는 오십보백보의 차이로 보인다. 다만 이번 경우에는 과거와 달리 검은 돈을 받은 사람이 ‘신뢰’를 지키지 않고 구명 활동을 해주지 않아 저주의 대상이 되었다.

여야 정치인의 정치자금 수수는 사실상 '오십보백보'

과거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인사는 현직에 있을 때 총리공관에서 뇌물을 받았다고 하여 고등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아직도 국회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과거 16대 대선 때에는 야당(현재 여당)이 차떼기로 정치자금을 받았고 여당(현재 야당)은 32억원을 수뢰하였다. 대통령후보가 직접 받았느냐, 선대위 간부들이 받았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대선 때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는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치권 관계자들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가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불법 정치 자금 수수가 줄어든 것은 그동안 역대 정권의 정치쇄신 의지와 법 개정 때문이라고 하겠다. 그동안 정치인을 부정한 정치자금 수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국가는 세금으로 정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했고, 후보자에게 선거자금을 보전해주었다. 또 정치기탁금을 분배해주고, 개인헌금도 허용했기에 정치계가 과거보다 다소 나아졌다고 하겠다.

사실 민주정치에서는 선거가 필수적이기에 막대한 정치자금이 필요하게 되고, 많은 국가에서 부정하고 부패한 정치자금 수수 행위가 행해져 왔다. 그래서 유엔도 반부패협정을 체결하여 모든 체약국가에게 선출직 공직후보자의 선거자금 모집과 정당에 대한 보조 등을 규정하고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를 기할 것을 권고해왔다.

선진국의 정치자금 공개와 규제...미국은 공개 로비 허용

유럽연합 각료회의도 2003년 권고결의를 채택하여 정당과 선거운동의 모금에서 부패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일반 원칙을 선포하였다. 제1조에서는 정당에 대한 공적·사적인 보조를 규정하고, 제2조에서는 정당에 대한 기부의 정의를 하고 있다. 이익충돌 금지, 기부자의 공개와 비밀 기부의 금지(제3조), 기부에 대한 면세(제4조) 규정도 두었다. 또 법인의 기부 시에 장부에 기록하도록 하며 법인의 주주나 다른 구성원에게 설명하도록 강제(제5조)하는 한편 법인의 정당 기부에 대한 면세(제6조) 외국인 기부의 금지 또는 규제(제7조) 등을 규정하고 있다. 선거자금 제한(제8조), 지출 기록의 강제(제10조), 기부자 명단·기부의 성격과 액수 기록(제12조), 년 1회 이상 기부자의 계좌 공개(제13조) 등도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선거자금규제법은 1970년대에 보완되었으나 그 뒤 많은 개혁이 이뤄졌다. 미국 대법원은 작년 '금전 살포도 표현 행위'라고 하여 회사나 노조의 정치헌금 금지는 '표현의 자유 위반'이라고 판시했다. (5:4 판결). 국고 보조를 받지 않는 대선후보는 대선자금을 무제한 사용할 수 있게 하면서 국고 보조를 받을 대선후보의 선거자금은 제한하고 있다. 대선이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후보자나 정당이 받을 수 있는 기부금의 액수가 제한되어 있다. 미국법은 특정 이익을 대표하는 정치활동위원회를 구성하여 로비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면서 헌금 액수를 한정하고 있다. 이를 제공한 단체나 받은 후보자는 그 사실을 공개하도록 하여 어떤 이익단체나 이념단체에 가까운지를 선거인이 알 수 있게 하고 있다. 미국의 선거관리위원회는 기부금 수입과 지출 등을 공개하도록 독촉하고 이를 실사하여 위반 시 처벌하고 있다.

한국에선 정치자금 제도 개혁에도 불법 '쪼개기' 후원 성행

우리나라도 세계적 추세에 따라 개인의 후원금을 정하고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 선거자금의 국고보전을 하여 정당과 정치인의 금전 수요를 충당하게 하고 있다(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이들 법률은 개인 후원금의 상한액이나 모금의 상한액을 정하고 있으며, 정치자금 공개를 강제하고 있으며, 선거관리위원회가 철저히 이를 심사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이래도 돈이 모자라기 때문에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정치인들은 미국처럼 로비 활동을 인정하여 기업이나 노동단체 등 법인으로부터도 기부금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지구당을 부활하여 지구당 운영비를 조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제까지 기업이나 노동조합 등 법인은 차명을 활용한 '쪼개기'로 기부해왔다. 이것은 불법이며 현실적으로 기업이나 노동조합, 법인들이 국민들도 모르게 뒷거래를 하고 있어서 선거 결과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이들 단체들의 기부를 허용하되 그 액수를 제한하고 그 기부를 받은 후보자나 정당을 공개하여 정경유착의 실상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지구당 부활은 필요할지 모르겠으나, 그 운영비는 당비와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으로 충당해야 할 것이다.

사실 지구당 활동은 지역 기초의회의원이 맡아서 하면 되는 것이고 지역민의 대변은 기초의회나 광역의회에서 해야 할 것이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은 한 지역의 대표가 아니고 전국민의 대표이기 때문에 전국이나 광역자치단체를 대표하는 전국적 인물을 국회의원으로 선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거비용이 많이 드는 소선거구를 축소하고 권역별 대선거구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면 정치자금을 축소할 수 있을 것이다. 검은 돈을 없애고 정경유착을 막기 위하여 국민세금을 아끼기 위하여 선거 제도를 개선해야 하겠다.

'성완종 리스트' 외에도 불법 자금 수수자 전원 엄벌해야

문제는 검은 돈의 출처를 막아 이를 정치인이나 공무원에게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동안 수사기관은 검은 돈에 의한 정경유착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척결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성완종 리스트'에 올려진 사람 외에도 다른 부정 정치자금 수수자도 발본색원하여 다시는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하거나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다. 정치자금 수수죄의 공소시효가 지난 경우에도 수수자 명단을 공개하여 재범을 막는 예방적 조치를 해야 하겠다. 공소시효가 완료되지 않은 제공자나 정치인 등은 여ㆍ야를 막론하고 철저히 조사하여 이번 위기를 부패 근절의 결정적 호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국민들도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의 연결고리를 단절할 수 있도록 받은 사람과 함께 준 사람의 불법성을 인식해 준 사람의 엄벌을 요구하고, 불법 자금을 준 기업은 망한다는 것을 입증해보여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 국민은 검은 돈의 발호와 정경유착을 당연한 것으로 관용해왔는데, 이번에 발본색원하여 다시는 부패 기업인의 폭로에 따라 국가가 위기에 처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다.

당리당략 접고 정치자금법·공직선거법 개정 서둘러야

정부는 이번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여 범법자를 엄벌에 처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에 위축되지 말고 당초에 시작했던 부패 척결을 과감히 집행하여 다시는 부패 행위가 발붙일 수 없도록 하고 청렴사회 건설을 완성해야 할 것이다. 검찰과 정부의 건투를 빈다. 국회도 당리당략을 위한 정쟁을 접고 정치자금법이나 공직선거법 등을 고쳐 국회의원들이 악덕상인에게 농락당하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정치혁신을 위한 제도 개혁 입법을 완료해야 할 것이다.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 프로필
서울대 법대, 뮌헨대 유학(헌법학), 서울대 법학박사- 서울대 법대 교수- 한국공법학회 회장, 한국헌법연구소장- 탐라대 총장- 국회 헌법개정자문위원장- 서울대 명예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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