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절 불참 입장 발표할 적정 시기"… 서방국과의 공조 유지해야

한미동맹 이간에 활용되지 않게… 비정상적 김정은체제도 고려해야

다른 기회에 주도적으로 남북정상회담 추진해야 명분·실리 추구 가능

전옥현 서울대 교수
[전옥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칼럼] 알렉산드르 티모닌 주한 러시아대사는 4월1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5월9일 예정된 러시아 전승절 행사에 참석할지 여부에 대해 "이른 시일 내에 최종 결정을 알려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양국 관계의 높은 수준과 우호 선린 협력"이라며 “남북 정상 간 면담은 한반도 정세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으며, 이런 대화를 위한 호의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러시아 대사 "박 대통령의 러시아 전승절 참석 이른 시일 내 결정해달라"

전승절 행사가 불과 한달 남짓한 상황인데도, 우리 정부가 묵묵부답인데 대해 주재대사로서 답답함을 표현한 것이다. 남북 정상의 참석 여부에 대해 국제사회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는 남북 정상을 끌어들여 미국과 힘겨루기를 하면서 서방의 대러 봉쇄 사슬을 풀어보려는 전략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승절 불참 입장 발표할 타이밍"… 서방국과의 공조 유지해야

이제는 우리 정부가 '불참' 입장을 발표할 타이밍이라고 본다. 우선, 전승절 행사 참석 문제에 접근하는 기본 원칙은 서방국가와의 국제 제재 공조 유지에 있다. 주요 서방 국가들도 전승절 행사 불참 의사를 밝히고 있다. 우리에겐 큰 제약 요인이다. 우리나라는 북한의 6.25 무력 남침 당시 서방 우방국의 지원을 받은 수혜 국가이며, 현재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에 따른 대북 유엔 제재를 주도하고 있다. 북한이 무력 시위나 핵미사일 실험은 물론 국지 도발과 심지어 핵전쟁 불사 위협까지 지속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러시아 제재에서 일탈하는 외교 행태를 보일 만한 외교적 명분과 여력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력 사용을 금지하는 유엔헌장 의무를 준수하는 평화 애호국 이미지를 제고시켜야 한다.

한미동맹 이간에 활용되지 않게… 비정상적 김정은체제도 고려

두 번째 원칙은 한미동맹을 단순한 양자동맹을 넘어 글로벌 동맹 차원으로 확장시킨다는 원칙을 이행해야 한다. 미국은 대(對)러시아 제재를 주도하고 있으며, 최근 우리 정부를 향해 전승절 참석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공개 표명했다. 일견 내정 간섭에 가까운 발언으로 비칠 수도 있으나 우리 정부의 '중국 경사' 의혹에 이어 대러시아 협력 태도에 대한 의구심의 또 다른 표현일 수 있다. 더구나 한미동맹 해체를 목표로 삼고 있는 북한은 최근 최용해 정치국 상무위원과 리수용 외무상을 연이어 러시아에 파견하는 등 냉전시대와 같은 러북동맹 체제 복원을 위해 애쓰고 있다. 러시아는 6자회담의 무조건적 재개라는 북한 입장에 동조하면서 북측에 호응하고 있다. 북한이 더 이상 한미동맹 이간 촉매제로 활용하지 않게 미리 못박을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김정은 체제의 비정상적인 한계 성격을 고려해야 한다. 오늘날 김정은 체제는 전세계 정치사에 유례 없는 3대 세습 체제를 고수하고 있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은 반인도적 범죄로 인해 국제사법 당국의 심판대에 올라 있을 정도로 ‘인권 탄압 독재자’로 낙인찍혀 있다.

남북정상 회담은 다른 기회에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박근혜 대통령은 2차대전 이후 가장 성공적으로 경제 발전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세계 15위권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국가의 국가원수이다. 이러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제사회에서 '인권 유린자'로 낙인찍힌 김정은과 함께 굳이 외국에서까지 남북 정상 접촉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설령 정상이 그곳에서 조우하고 접촉한다고 해서 한반도 평화, 통일 준비, 비핵화에 기여할 수 있을까. 카메라 조명은 좀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본다. 오히려 남남 갈등만 뻔하지 않은가. 남북 정상이 만나서 진정한 대화를 하려면 명분 있는 다른 기회를 만들어서 회담을 가져야 한다. 그것도 다른 나라가 개최한 행사에서 만나기보다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만든 기회에 회동을 가져야 모양도 좋고 실속도 있을 것이다.

다만 전승절 행사 불참으로 인해 한러 전략적 협력관계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다양한 보완적 외교전략을 고민하는 게 바람직하다. 우리 정부는 이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망) 배치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문제를 두고 "전략부재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왔다. 외교에서는 실기하지 않는 게 기본이다. 우리 안보와 국가이익을 위해서 말이다.

■ 전옥현 교수 프로필
대전고, 서울대 외교학과- 주 유엔대표부 공사- 국가안전보장회의 정보관리실장- 국가정보원 제1차장- 주 홍콩 총영사-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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