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선거 영향력에선 국민모임 정동영 전 장관이 우위

미래 영향력에선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가 확실히 강세

남은 승부수는 현재의 영향력… 초반 여론조사는 '백중지세'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칼럼] 외나무다리 승부. 누군가를 밀쳐 떨어뜨려야만 길을 건너갈 수 있다. 동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이지만 바로 코앞에 닥친 보궐선거의 현실이 되어버렸다. 문재인과 정동영. 정동영과 문재인. 지난 두차례의 대통령선거 후보였다. 모두 패자였지만 한국 정치를 상징하는 인물임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정치 무대에 등장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운명적 만남을 인연으로 정치판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

대선후보 지낸 동갑내기 문재인과 정동영… 외나무다리 승부

문재인과 정동영, 두 사람은 신기할 정도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출생년도가 같은 동갑내기다. 천주교라는 신앙마저 일치한다. 두 아이의 아버지이고 부인과는 책으로 남길만한 러브 스토리까지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을 한데 묶어주는 인물은 바로 노무현이다. 정동영 전 장관은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경쟁자였지만 노 전 대통령이 후보가 되자 열렬한 지원군이 되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결사체라 할 수 있는 열린우리당에서는 초대 당의장을 맡아 탄핵으로 궁지에 몰린 대통령을 대신해 2004년 총선을 진두지휘했다. 문 대표는 말할 것도 없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수석과 마지막 비서실장이지 않았는가. 노무현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고 대선후보였던 정동영 국민모임 인재영입위원장과 노 전 대통령의 영원한 친구인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관계는 철저한 동지적 관계가 아닌 것이 오히려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하지만 정치 현실은 냉혹하고 아이러니하다.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두 사람은 서울 관악을이라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정 위원장은 선거를 정확히 한달 앞둔 3월 30일 서울 관악을 보궐선거 출사표를 던졌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충격에 빠졌고 선거 판세는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 서울 관악을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경선을 거쳐 정태호 전 청와대 대변인을 출격시켰다. 야권 강세 지역이기도 하고 양자 대결 구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속단할 순 절대 없지만 판세를 불리하게 예측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잔잔했던 이 지역에서 정동영 국민모임 위원장이 출마를 선언함으로써 사실상 같은 진영의 대선후보 간 정면 대결은 불가피해졌다. 과연 문재인과 정동영, 두 사람의 최종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두 사람의 경쟁력을 진단하고 판세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과거 선거에서의 영향력, 미래권력을 상징하는 차기 대선 영향력 그리고 현재 매우 예민하게 돌아가고 있는 보궐선거 지역에서의 영향력까지 세가지 승부수를 보아야 한다.

과거 선거 영향력에선 정동영 전 장관이 우위

먼저 과거 선거에서의 영향력이다. 2007년 제16대 대선 때까지를 기준으로 한다면 정동영 위원장이 더 우위에 선다.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혜성같이 등장해 전북 전주 지역구에서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되어 중앙 무대에 섰었다. 2000년 총선에서도 1996년 총선과 마찬가지로 90%에 가까운 표를 획득했다. 적어도 전주를 중심으로 한 전북 지역에서는 맹주와 같은 선거 영향력을 가졌다(그림1).

김대중 전 대통령이 97년 대통령 선거 당선 당시 호남 지역에서의 득표율과 거의 다르지 않다. 비록 2007년 대선에선 전국적으로 600만 표가 조금 넘는 득표에 그쳤지만 집권여당의 대선후보였던 영향력만큼은 좀체로 사라지지 않는다. 본인의 선거는 아니었지만 2004년 총선에서 당 의장으로서 과반 의석을 확보한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정 위원장의 기존 선거 경쟁력은 제19대 총선(2012)에서 서울 강남을에 출마해 40%득표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무기력함을 드러냈었다. 실제로는 2008년 서울 동작을 지역 총선에 낙선함으로써 정치적 기반이 없는 수도권 지역에서의 정치적 한계를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위원장의 지난 20년 간 역정은 정치사에 한 획은 그었다. 두 번이나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들었고 결국 집권여당의 대선후보가 되었다. 장관으로 행정 경험을 가졌고 두 번이나 당 대표 격인 당의장을 역임했다.

이에 비해 문 대표의 과거 영향력은 노 전 대통령과 한 뼘도 분리할 수 없다. 적어도 2012년 대선까지는 노무현이 있었기에 문재인이 있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고 개인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논하긴 힘들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치적 유산을 거의 물려 받았고 이러한 친노 세력을 기반으로 2012년 대선에 설 수 있었다. 1988년 국회의원 선거 당시 노무현, 김광일과 함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선거 출마 제의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정작 현실 정치로 들어서진 않았다. 2002년 친구 노무현이 부산시장 출마를 권유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른바 권력의지나 정치적인 욕심이 없었던 과거였다. 노무현정부에서 맡았던 역할은 전부 임명직이었기 때문에 야당의 거물 정치인으로 집권여당을 이끌었던 정 위원장과 비교하기조차 힘들다. 2012년 대선을 기점으로 과거 정치적 영향력은 정 위원장은 더 앞선다.

미래 영향력에선 문재인 대표가 확실히 앞서가

그러나 문-정(文-鄭)대결 승부수의 한 축인 미래 영향력 즉 차기 대권 호감도를 말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과거 영향력에서는 정 위원장이 한 수 앞섰지만 미래 영향력은 정반대이다.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함으로써 대선에서 낙선한 정 위원장의 영향력은 민주당 내에서 점차 사라져갔다. 2009년 지역 사회의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치 입문 지역이었던 전주 재보궐 선거로 국회로 돌아왔다. 일종의 데자뷰일까. 2009년 재보궐 선거일이 4월 29일이었다. 단순한 우연이겠지만 관악을 재보궐 선거일과 같다. 전주 덕진구의 재보궐 선거로 생환했지만 정 위원장의 미래 영향력은 가라앉아 있었다. 96년과 2000년 총선에서는 같은 지역에서 90%에 육박하는 득표였다. 그러나 재보궐 선거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미래 가능성을 엿본 2009년 선거에서의 득표는 70%를 간신히 넘겼다. 미래 영향력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문 대표의 행보는 정반대였다. 2010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본격적인 문 대표의 영향력 시대가 열렸다. 2011년부터 차기 대권후보로 강력하게 거론되기 시작했고 2012년 당내 경선에서 전승을 거두며 민주통합당의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가 된다. 미완의 정치인. 문재인의 운명은 바로 그 지점부터였다. 비록 대통령 선거에서 패장이 되었지만 역대 2위에 해당하는 득표수였다(전체 투표자의 48.02%, 1,469만2,632표). 지긴 졌지만 남는 선거였다. 과반에 육박하는 득표는 향후 야권의 얼굴로서 활약할 기반을 만들었다.

2013년과 2014년은 국정원 댓글, NLL(서해 북방한계선)논란과 세월호 참사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승부처는 2014년 말 당대표 선거에 출마 선언을 하면서부터다. 2014년 말까지만 하더라도 야권의 차기 대선후보 경쟁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두각을 나타냈다. 일각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대선 재도전에 성공한 사람이 없다는 점을 들어 문 대표의 차기 가능성을 일축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당대표 선거 결과는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과거 영향력'으로 분석할 수 있는 박지원 의원을 가까스로 넘어 당대표가 되었다. 과거 영향을 많이 받는 일반당원과 권리당원에서는 뒤졌지만 미래 영향력에 촉각을 곤두세운 대의원과 일반국민 여론조사 결과가 문 대표를 살렸다. 여론조사전문기관에서 2015년 들어와 실시한 차기 대선 후보 호감도 조사에서 문 대표는 부동의 1위다(그림2).

그것도 야권의 경쟁자인 박원순 시장과 안철수 의원을 멀찍이 밀어냈다. 경남중 1년 선배이자 여권의 강력한 대선후보인 김무성 대표보다는 2배 가까이 지지율에서 앞선다. 과거 영향력에서 앞서는 정동영 국민모임 위원장은 차기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이름을 찾기조차 힘들다. 아직 다음 대통령 선거는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예상치 못한 수많은 변수가 뒤따를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2015년 4월 현재, 한국 정치권에서 미래 영향력의 절대 강자로 문재인 대표가 자리하고 있음을 부인하긴 힘들다. 미래 영향력을 기준으로 승부를 가린다면 그리고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이 기준이라면 문 대표가 정 위원장을 몇 발자국은 앞서가고 있다.

남은 승부수는 현재의 영향력… 초반 여론조사는 '용호상박'

남은 승부수는 현재의 영향력이다. 서울 관악을의 영향력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만 놓고 보면 영원히 함께 갈 것 같았던 두 사람의 정면 대결이다.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의 정치적 지역 기반인 영남과 호남이 아닌 수도권에서 현재의 영향력을 겨루게 된 것이다. 서울 관악을은 전통적인 야권 강세 지역이다. 직선제 개헌 이후 실시된 1988년 총선부터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져온 보수정당 후보들은 한번도 뿌리내리지 못했다. 특히 이 지역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잇는 이해찬 전 총리의 아성이었다. 제13대 총선부터 제17대 총선까지 내리 5선을 한 곳이다. 이 전 총리는 2008년 총선에선 불출마했다. 정 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문 대표의 정치 역정은 노 전 대통령의 삶 그 자체다. 서울 관악을의 야야(野-野)대결은 김대중 세력과 노무현 세력의 대결처럼 비친다. 지난 대선에서 문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 세력 이른바 동교동계를 충분히 포용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들었다. 직접적인 대결은 아니더라도 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가 노무현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역임한 만큼 양대 세력의 대결 구도로 볼 가능성은 다분하다.

과거 영향력에서 정 위원장이 앞섰든 미래 영향력에서 문 대표가 더 우위이든, 더 이상 관건이 아니다. 서울 관악을 선거에 정동영 국민모임 위원장이 사자후를 토하며 출사표를 던졌고 선거 결과가 두 사람의 운명을 바꿀 가능성이 커졌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휴먼리서치가 지난 3월 21일과 22일 실시한 선거여론조사(서울 관악을 거주 만19세 이상 702명. 유선RDD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 95%신뢰수준±3.7%포인트. 응답률 1.63%.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의 결과를 보면 정동영 국민모임 위원장이 출마할 경우 선거 판세는 요동치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림3).

아직 투표일이 많이 남아 있고, 여론조사 이후 정 위원장의 출마 기자회견이 있었고 아직 유권자의 투표 의향이 여론조사나 현장 상황에 오롯이 다 담겨 있다고 장담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판세 조사는 일일이 지역 사정을 모르는 상황에서 그나마 조사 시점의 판세를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활용 가치는 충분하다. 정 위원장이 출마할 경우 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와 호각지세 국면이다. 여기에 사실상의 대리전을 펼쳐야 할 문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의 조직력이 투입된다면 판세를 예측하기 더욱 힘들어진다. 한편으론 정 위원장의 재평가 분위기가 형성되고 새정치민주연합의 대안으로 야권 지지층들이 '국민모임'을 인식하다면 선거 예측은 더욱 어려워진다. 분명한 것은 서울 관악을에서 야권의 두 거물이 정면 대결을 펼치는 동안 새누리당 후보는 가장 많은 반사적 이익을 본다. 조사 결과에서도 3자 대결을 가정할 경우 새누리당 후보가 가장 앞서는 초반 판세를 보여준다. 선거 운동 기간에 접어들면 다른 양상일 수 있겠지만 선거 초반 서울 관악을 지역에서 두 대선 후보는 자웅을 가리지 못하고 있다. 백중지세다.

'골리앗과 골리앗'인가? '골리앗과 다윗'인가?

어떤 이는 서울 관악을 선거의 문-정(文-鄭)대결을 가리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한다. 당대표에 차기 대권 주자로 자리매김한 골리앗이 문 대표이고, 군소정당에 불과한 국민모임 후보로 나서는 정 위원장을 다윗으로 보았다. 고대 신화에서는 다윗이 예상과 달리 골리앗을 이기지 않았는가. 예를 든 사람의 의도는 다를 것 같다. 외형적 조건과 놓고 보면 골리앗이 훨씬 유리해 보이지만 결과에 따라 두 사람의 평가는 달라짐을 의미한다. 골리앗이 이기면 당연한 일로 여기겠지만 다윗이 이기면 이변이 된다. 어차피 미래 영향력이 희박한 정 위원장에게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계산을 한 셈이다. 문과 정의 정면 대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골리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보인다. 대선후보에게 반드시 필요한 선거 영향력만 놓고 보면 정 위원장은 백전노장이다. 문 대표는 겨우 초선 의원에 정신없이 전개되었던 지난 대선 후보 경험 정도에 그친다. 과거 영향력은 정 위원장이, 미래 영향력은 문 대표가 더 앞선다. 동갑 나이인 두 사람에게 과거와 미래는 너무 먼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현재 보궐선거 판세와 관련해 다른 입장과 분석을 내놓겠지만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용호상박(龍虎相搏)이다. 문제는 이 대결 자체가 아니라 이 대결이 가져올 결과다. 정작 이 싸움이 새누리당의 승리로 끝날 경우 두 사람 모두 패자가 된다. 만약 정동영 위원장이 당선되거나 새정치민주연합의 정태호 후보가 당선될 경우 한쪽은 서로에게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게 된다. “시저보다 로마 시민들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그를 죽였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영웅인 시저의 양아들 브루투스가 시저를 살해하면서 남긴 연설이다. 잔인한 4월, 서울 관악을 보궐선거를 지켜보면서 2000여년 전 브루투스의 말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서울대 국제대학원, 고려대 행정학과 박사과정 수료-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길리서치 팀장-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이사,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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