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리더들이 기존 프레임 유지하려 안간힘 쓰는 이유는 "편안하기 때문"

스캐너 역할 인물 주변에 둬라… 옹정제는 '만기친람'형이었지만 편지로 소통

똑똑한 의사결정자들은 트렌드와 일반인 감각 놓치지 않으면서 ‘혁신’ 추구

천영준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
[천영준 연세대 책임연구원 칼럼]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려는 기질을 갖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환경이나 이슈를 만나면 자기가 잘 알고 있는 구석부터 찾아내 분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어떤 사안에서 ‘예측하지 못한 이질성’을 발견하는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 부족을 탓하거나 문제가 생겨나게 한 ‘대상’이 잘못된 것이라고 치부한다. 결국 당신이 잘 안다고 생각해 왔던 것들은 꽤 중요한 경험이자 자산이었겠지만, 때때로는 짐이 되고 장애물이 된다.

조직이론의 거장 헨리 민츠버그(Henri Mintzberg)가 ‘학습’(Learning) 못지 않게 ‘망각’(Unlearning)이 중요하다고 한 이유다. 그는 여러 유형의 조직 의사결정자들을 직접 관찰하고 인터뷰하며 분류하는 연구를 오랫동안 진행한 석학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대부분의 조직에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인물은 그곳의 성장에 기여한 최고경영자(CEO)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처음에는 헌신적으로 ‘내 조직’을 일으키기 위해 어떤 일이든 했겠지만, 나중에는 그의 상식을 거스르는 어떤 시도도 온건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는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반대되는 아이디어를 짓누른다.

중국의 진시황이 학자 3,000명을 매장했던 것도 단순히 여론 탄압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진(秦)나라가 중요한 국가 이념으로 삼고 있는 법가(法家) 사상의 권위를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다. 시황제 본인의 입장에서는 이미 ‘역술’이나 예의와 염치를 강조하는 ‘유가’의 논리가 국정의 효율성을 거스르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리고 어떤 철학이나 가치를 신봉하든지 정치에 참여하게 되면 진나라의 법가 사상의 테두리에 포함될 수 있는 주의·주장을 내놓으라고 이론가들을 설득했다. 그러나 그들은 듣지 않고 저마다의 ‘상식’을 말했다. 그래서 시황제는 권력을 가진 자의 상식을 보여주기 위해 학자들을 강력하게 탄압했다. 결국 그의 제국은 아들 호해가 암살되기까지 2대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군주의 상식이 지배하는 힘이 갖는 고루함과 여유 없음을 싫어하는 지배층 내부의 반발에서부터 시작한 쇠망이라고 보아도 좋았다.

리더들이 프레임 유지하려 안간힘 쓰는 이유는 "편안하기 때문"

그렇다면 왜 의사결정자들이 자신의 앵글이나 프레임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일까? 때때로 그들의 경영 원칙이나 정치 철학이 틀렸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답은 단순하다. ‘편안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익숙한 가치와 철학을 유지할 때의 이익이 비용을 초월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직이론가 마이클 해넌(Michael Hannan) 스탠포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조직 안에 변화에 저항하는 강한 힘이 생기는 기제를 가리켜 ‘구조화된 관성’(Structured Inertia)이라고 말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자주 바뀌고 혁신을 지향하는 조직일수록 잘 망하더라는 역발상적 발견에서 시작된 개념이다. 우선 조직이 한번 바뀌려면 단순히 사업 영역이나 부서 개편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문화적·사회적 변화를 추구해야만 한다. 그러는 사이에 다른 조직들은 효율과 집중으로 시장을 선도해나가기도 하고,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기술적 기회를 잡아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습관적으로 내부 정비를 거듭하는 기업은 남들이 장점을 발휘하며 앞으로 나아갈 동안에 스스로 ‘화장’을 고치느라 타이밍을 놓치기 쉽고, 그게 반복되면 망한다는 게 해넌 교수의 논리다.

그러나 역으로 자기 습관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조직도 스스로 화의 근원을 쌓게 된다. 조직 안에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동질화된 집단의 정치적 연대가 생긴다. 그리고 최고경영자에게 바른 말을 잘 하지 않으려는 간신들이 모이게 된다. ‘돈 되는 사업’ 또는 당장 잘 되는 일만 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그래서 장기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시기에 자신의 발밑만 내려다보는 경향이 누적된다. IBM이나 GE와 같은 글로벌 대기업들은 대공황이나 석유 파동과 같은 ‘거대한 전환’의 시기에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혁신의 성장 동력이 없이 자신만의 상식에 기대어 살아가는 관성화된 기업들은 그런 기회를 붙잡지 못한다. 자기 위주의 상식이 통하지 않을 때 그들은 당황하고 실수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경영학 교과서에서 변화를 게을리한 결과 망한 케이스로 기록되기 십상이다.

스캐너 역할 할 사람을 주변에 둬라… 청나라 옹정제는 편지로 의견 교환

청나라의 명군(名君) 옹정제(雍正帝)가 가장 싫어한 것은 자신의 ‘감’이 떨어지는 일이었다.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명·청 시대의 중국 정부는 만기친람(萬機親覽), 즉 모든 사안에 황제의 결재를 필요로 하는 수직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띄었다. 그렇다 보니 황제가 가장 똑똑할 사람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 부지런하지 못한 군주들은 자신의 일을 환관에게 대신 처리하게 하거나, 층층시하로 만들어진 결재 시스템 속에서 여러 사안들이 걸러지게 만들었다. 그러다보면 황제는 여론과 사회 변화에서 소외된 사람으로 전락하기 쉬워진다. 옹정제는 이전의 왕조들이 같은 과정으로 의사결정의 난맥상이 초래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말년이 되어서까지 일일이 국정 전반을 점검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스스로 시원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자 '주비유지'(朱批諭旨)라는 편지 시스템을 도입한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지방과 각계의 동정을 세밀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솔직한 공직자들을 골라 사적으로 편지를 교환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옹정제는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즐겼는데, 청나라의 가장 강력한 독재자였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특정 정책에 반대하는 이유를 부하들에게 솔직하게 물어보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총 112권의 책으로 묶인 주비유지 속에는 옹정제가 말단 관리들과 특정 사안에 대해 갑론을박하며 그것을 일부러 흔적으로 남기려 했던 노력이 숨어 있다. 적어도 자기의 상식을 소비하느라 의사결정을 훼절(毁折)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게다가 옹정제에게 자주 반대 의견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트렌드를 훑고 동향을 솔직하게 보고하는 ‘스캐너’(Scanner) 역할을 했다. 그러다 보니 층층시하의 수직 결재 구조 속에서 최고경영자가 소외되지 않을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되었다. 게다가 옹정제는 자신에게 가장 강력한 반대자들을 총리(總理)로 임명하는 정치적 능력도 보여줬다. 사사건건 황제의 정책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파당을 꾸리려는 시도를 막기 위해 자주 불러 의견을 묻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상대방이 시간을 소비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서 늘 자신의 상식에는 반대 의견이 있을 수 있음을 인지했다. 최고경영자가 자기 중심적인 의사결정을 하더라도 스스로의 생각이 통용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실험과 다양성은 쉽지 않다… 트렌드와 일반인 감각 놓치지 않는 ‘혁신’ 필요

익숙하고 편안함에 나의 의사결정을 맡기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다. 반면에 실험과 다양성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항상 힘들다. 자신의 상식과 믿음을 거슬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때로 똑똑한 의사결정자들은 자기 중심적 권력을 추구하면서도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다. 누군가를 통해서 열심히 공부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작고한 싱가포르의 지도자 리콴유 전 총리가 그랬다. 26년 간 장기집권을 하면서도 일반인들의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던 그는, 자기의 상식이 통하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유연성이 있었다. 그가 역사상 가장 칭송받는 '권위주의 통치자'라는 역설적 진실도 거기에 기초할 것이다.

■천영준 책임연구원 프로필
연세대 경영학과- 연세대 정보산업공학 석사, 기술경영협동과정 박사- 다음소프트 연구자문역- 합창단 Chantez a dieu, 오페라단 '청 ' 자문위원-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현)/저서 <직장인 4대 비극> <바흐, 혁신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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