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AIIB 가입 논란의 본질은 미국과 중국의 동북아 패권 대결

애매모호한 '전략적 모호성' 계속되면 미·중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安美經中) 대원칙 하에 '전략적 유연성' 필요

박한규 경희대 교수
[박한규 경희대 국제대학원장 칼럼] 우리 정부는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고 26일 오후 발표했다. 지난해 7월 방한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으로부터 AIIB 창립 회원국으로 가입해달라는 공식 제안을 받은 뒤 미국과의 관계 등 외교적 고려와 경제적 실익 사이에서 8개월가량 고심하다가 가입을 결단한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주한미군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를 놓고도 신중하게 고심해왔다.

사드의 한국 배치와 한국의 AIIB 가입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과 고민은 미국과 중국의 경쟁 구도에서 한국이 얼마나 난해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미국과 중국이 갈등하는 구도에서는 이들로부터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을 맞기 쉽다. 세계 질서의 재편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이 경쟁을 지속한다면 한국은 향후 이와 유사한 곤경에 자주 처하게 될 것이다.

사드 배치와 AIIB 가입 논란의 본질은 동북아 패권 경쟁

미·중 갈등 속에서의 한국의 외교적 딜레마는 미·중 간 역학 관계 변화라는 보다 근본적인 국제정치 구조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을 먼저 지적하고 싶다. 따라서 한국 내 사드 배치 문제를 대(對)북한 중·장거리 미사일 방어를 위한 무기체계로서의 효용성이라든지, AIIB 가입 문제를 경제적 이익이라는 단순한 계산법으로 접근한다면 한국의 미래 외교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앞으로 한국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의 도전이라는 국제질서의 구조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외교전략 틀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최근 미·중 관계는 중국의 힘이 크게 부상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는 미국의 주도 하에 형성되었다. 동북아 지역만 보더라도 미국은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등과 굳건한 양자적 안보관계를 형성했다. 즉 ‘허브-앤-스포크’(hub and spoke) 시스템을 만들어 미국 중심의 동아시아 안보체제를 구축했다. 또 미국은 자신이 주도하는 세계금융체제를 형성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을 설립하였고, 아시아에서도 미국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일본과 협력하여 아시아개발은행(ADB)을 창설하였다.

시진핑의 '중국의 부흥 꿈'과 오바마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

그동안 힘과 덩치를 키운 중국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매우 불편하게 여기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현재 자신의 경제력과 군사력에 걸맞은 국제적 영향력과 힘의 공간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최근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신 육상·해상 실크로드) 전략을 통해 AIIB 참여국 위주로 중국 중심의 세계경제체제를 새롭게 구축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다른 한편 중국은 ‘접근 거부/배타 지역'(A2/AD)이라는 군사전략을 구사하면서 동중국해, 남중국해, 서태평양 등에서 자신의 세력권 지역에서 미국 등 다른 강대국들을 몰아내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시진핑 주석 취임 이후 중국은 미국에게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를 요구하면서, 명실 공히 세계 패권국가로 재복귀하여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을 달성하려 하고 있다.

미국 역시 중국의 이러한 힘의 팽창 시도를 가만히 보고 있을 리 없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러한 중국의 행위를 엄연히 미국의 패권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아시아 회귀 정책”(Pivot to Asia)에 이어 “아시아 재균형 정책”(Rebalancing to Asia)을 통해 중국의 도전을 견제하려고 하고 있다. 미국은 전통적인 한·미·일 안보체제를 더욱 강화함과 동시에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군사력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서 동남아 국가, 인도 등과 군사적 협력관계를 빠른 속도로 강화하고 있다. 또 미국은 세계 전역에 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하여 중국을 군사적으로 견제하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 내 사드 배치 시도는 중국에게 미국의 대중국 미사일방어체제 구축 일환으로 비칠 수 있다. 이와함께 미국은 중국의 AIIB의 창설 추진을 미국 중심의 세계금융질서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간주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통해 중국의 도전에 맞대응해왔다.

애매한 '전략적 모호성' 계속되면 미·중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

역동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미·중관계는 한국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하고 정교한 전략적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미·중 경쟁 속에 끼인 한국에게는 한 순간의 선택이 향후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외교는 목표도 없고, 전략도 없이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해왔다. 이러다보니 급기야 워싱턴 정계에서는 한국에 대한 피로증이 극에 달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고, 중국이 한국 안보 문제에 대놓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제 한국은 세계 패권을 둘러싸고 경쟁하는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어정쩡한 입장을 견지할 것이 아니라, 미·중관계의 역동적인 변화에 따라 '전략적 유연성'을 최대한 발휘해야 할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이란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이 나아가야 할 좌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국가 안위와 국가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복잡하게 전개되는 동북아 국제정세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이러한 유연한 외교적 선택이 가능한 이유는 미·중관계가 과거 냉전시대의 미·소관계처럼 항상 정치이념적으로, 군사적으로 갈등과 경쟁만 거듭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미국과 중국은 종종 군사안보적으로 서로 대립하고 경쟁할 것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상호의존적이고 협력할 수밖에 없는 '갈등과 협력'의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 발휘해야…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安美經中) 대원칙

한국이 미·중 사이에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安美經中)이라는 대원칙을 확실히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한미동맹이 한국의 안보의 핵심이라는 점을, 중국과의 경제협력은 한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미국과 중국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 사드의 한국 배치는 북한 핵미사일을 방어할 수 있느냐 아니냐 하는 군사기술적 판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것이 한국 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신중히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동시에 미국 눈치 때문에 중국 경제력 부상이 가져다주는 많은 경제적 기회와 이득을 한국이 앉아서 포기할 수만은 없었다. 이번 AIIB 가입 결정은 이런 측면에서 불가피한 전략이었다. 한국경제를 위해서는 중국과의 교역을 더욱 확대하고, 중국이 신(新)실크로드를 개척하는 데서 생겨나는 투자 기회를 적극적으로 살려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드와 AIIB 논란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앞으로 미국과 중국이 군사안보와 경제적 이슈들을 상호 연계하면서 한국에게 미국과 중국 사이에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은 대미관계 및 대중관계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안보와 경제 문제를 상호 분리하여 대응할 수 있는, 보다 다층적이고 정교한 전략을 세워둘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이슈 분리 전략이 가능한 이유는 미국과 중국은 군사안보 영역에서는 갈등하지만, 경제 영역에서는 상호 협력해야만 하는 이중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념의 진영 논리에 빠져 갑론을박하면 국가안위 위태로울 수도

최근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국가의 생존이 달린 전략적 선택 문제마저도 우리 사회 일각이나 정치권에서 정치적 이념의 진영 논리에 빠져 친미 혹은 친중이 되어야 한다고 서로 갑론을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분법적 안보 사고는 국가의 안위를 크게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실로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은 미·중 간 경쟁과 갈등에 휘말려서 스스로 안보를 지키지 못하고 경제적 기회를 박탈 당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향후 동북아지역 국제질서뿐 아니라 세계질서를 재편하려는 미국과 중국의 이중적 관계를 잘 이해하고,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자주적이고 능동적인 유연한 외교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 박한규 경희대 교수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 미국 컬럼비아대 정치학박사 -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현), 경희대 국제대학원장(현), 경희대 국제대학장(현), 경희지구사회봉사단 사무총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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