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는 환율 전쟁 속에서 원화 약세와 국내 경제 활성화 위한 대책

인하 결정의 부작용도 적지 않아… 자칫 가계부채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경기 부양 효과 가져올지 확실치 않아… 대출심사 강화하고 규제 완화해야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조하현 연세대 교수 칼럼] 지난 12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기존 2%에서 1.75%로 내렸다. 작년에 두 차례 금리를 인하한 지 5개월 만에 추가 인하를 단행함으로써 본격적인 초저금리 시대가 됐다. 일각에서는 갑작스럽다는 반응도 있으나 대부분은 인하 시기가 다소 늦은 감이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내수가 침체된 상태에서는 금리를 내려 소비와 투자를 늘릴 필요가 있는데 그동안 기준금리를 동결했다가 최근에 와서 본격적으로 인하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번 금리 인하 결정은 가계부채 증가와 같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금리 인하의 이득이 손실보다 더 크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낮춘 국내·외 배경

한국은행이 금리를 낮춘 배경은 해외 요인과 국내 요인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해외 상황을 보면 일본이 아베노믹스로 엔화 가치를 낮춘 데 이어 유럽까지 올해 대규모 양적완화에 나서 유로화도 약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원화는 강세를 띄고 있는데, 유럽이나 일본은 기준금리가 거의 제로에 가까운 반면 한국의 기준금리는 상대국보다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세라면 일본과 유럽에 대한 우리나라의 수출 경쟁력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원화 강세를 누그러뜨리고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준금리를 낮춰 통화량을 늘려야 한다. 이번 금리 인하는 이러한 글로벌 환율 전쟁에 대한 대응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금리 인하의 국내 요인은 점점 고착화되고 있는 내수 부진이다. 전 세계 경기 침체의 여파로 국내 소비 및 투자가 줄어들었고 일본식 장기 침체를 우려할 정도로 경기 회복이 어려워지고 있다. 게다가 물가도 계속 하락해 지난달에는 담뱃세 인상 효과를 제외한 실질 물가상승분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 인하는 자금 수요를 늘려 소비와 투자를 촉진시키고 내수 활성화를 위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

금리 인하 부작용… 가계부채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하지만 금리 인하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1100조에 가까운 가계부채이다. 낮은 금리로 은행권의 수익률이 하락하면서 대출 경쟁이 심화되고, 이것이 사람들의 대출 수요 증가와 맞물리면서 가계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게다가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대출 규제가 완화된 상태여서 가계 빚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이 더 늘어날 것이란 비판이 많다. 물론 부동산 시장으로 자금이 흐르면 자산 가치가 상승해 소비심리를 일깨울 수 있다는 낙관적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하지만 향후 상황이 바뀌어 금리가 상승하게 되면 가계부채는 경제 위기의 뇌관이 되어 우리를 위협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것은 경기 침체와 물가 하락을 막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금리를 내리면 환율이 상승하는데, 그렇게 되면 원화 가치가 떨어져 수출경쟁력이 높아진다. 이렇게 수출과 생산을 증가시켜 소비와 투자를 늘리겠다는 것이 이번 금리 인하의 목표이다. 비록 유럽의 경기 상황이 좋지 않아 대유럽 수출은 증가하기 어렵겠지만 미국은 경기 회복 단계에 있기 때문에 적어도 대미 수출 증가를 기대해볼 수 있다.

경기 부양 효과 가져올지 확실치 않아

하지만 경기 부양 의지를 보여준 한은의 이번 조치가 성과를 보일지는 확실치 않다. 우리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유동성 함정이란 금리를 낮추고 통화량을 증가시켜도 경제 주체들이 미래 경제 상황을 낙관하지 못해 돈을 움켜쥐어 소비와 생산, 투자가 늘지 않는 상황을 지칭한다. 이는 일본의 기준금리가 제로에 가까워도 경기 침체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실제로 중앙은행이 공급한 본원통화가 시중 통화량을 몇 배로 창출했는지 나타내는 지표인 통화승수는 지난 1월에 18.5로 이미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 시점이 불확실하다는 점도 금리 인하 효과를 줄이는 요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Fed)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서에 ‘인내심 발휘’라는 표현을 넣어 현재 미국 경제가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어도 금리 인상은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이달 성명서 발표에서는 이 표현을 삭제했다. 이것만 보면 미국이 금리 인상을 앞당길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지만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춰 금리 인상 시기를 예측하기가 더 어렵게 됐다. 미국 경제가 충분히 회복되어야 금리를 올릴 수 있는데 성장률 전망치를 낮췄다는 것은 아직 경기 회복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렇게 미국의 금리 인상 시점이 불확실해지면 한국의 금리도 언제 다시 상승세로 돌아설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언제라도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자본유출의 우려 때문에 한국도 금리를 올려야 할 압박이 커진다.

대출심사 강화하고 내수 진작 위해 규제 완화해야

한은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로 내린 것은 글로벌 환율전쟁 속에서 원화 약세를 이끌고 국내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대응책이다. 비록 가계부채 등 여러 변수로 인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수출과 소비, 투자 증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일단 경기 부양 카드를 선택한 이상 저금리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부는 가계대출 급증을 막기 위해 대출심사를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내수 진작을 위해 불필요한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등의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한다. 중앙은행에만 의존해 통화정책 수단을 소진하지 않으려면 정부 차원에서도 금리 인하의 부작용을 줄이고 경제 활성화를 돕는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조하현 교수 프로필
연세대 경제학과, 연세대 대학원 경제학과(석사)- 시카고대 경제학박사- 연세대 상경대학 경제학부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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