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표가 대권 고지에 오르기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들]

대통령에 근접했다가 실패한 이회창 후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지역·세대·이념·박근혜·노무현이란 5개의 산 넘어야 정상에 오른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칼럼]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현대'라는 세계적 기업을 세운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좌우명이다. 역경을 딛고 세계적 회사를 만든 경영자 정신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서 굳이 실패를 꼽자면 1992년 대통령 선거 낙선이다. 산전수전(山戰水戰)의 백전노장으로서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대통령 자리다.

대통령에 근접했다가 실패한 이회창 후보를 반면교사로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우리 정치에서 대통령에 오르진 못했지만 가장 근접한 사람은 누구인가. 두말할 것 없이 이회창 전 총재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맞붙어 불과 39만여표 차로 석패했다. 2002년 제16대 대선에서는 이보다 조금 많은 57만여표 차로 고배를 마셨다. 이 전 총재의 패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보수 진영의 표심을 온전히 결집하지 못했다. 97년 대선에선 이인제 후보의 독자 출마가 결정적 원인이었다. 세인들의 평가처럼 이인제 후보를 설득하고 포용하여 보수대통합을 이루지 못했다. 2002년 선거에선 보수 성향이 강한 기업인 출신의 정몽준 후보에 대한 대비가 없었다. 월드컵 바람을 타고 2030세대와 중도 성향 유권자들은 ‘후보 단일화’라는 역마차를 타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로 결집되었다. 이 전 총재는 대선을 세 번이나 도전했다. 마지막 도전은 2007년 대선이었다. 혜성같이 나타나 3위라는 의미 있는 성적을 올렸지만 역부족이었다. 일부 보수표가 넘어왔을 뿐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오히려 이명박 후보로 결집되는 결과를 낳았다. 보수 후보가 두 명이나 나왔는데 왜 선거가 한나라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했을까. 의외로 간단한 해답을 찾아낼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정 평가는 매우 낮았고 대부분 국민들은 정권교체를 원했다. 그리고 다수 국민들의 선택지엔 이명박과 박근혜 중 양자택일만 남아 있었다. 이 전 총재에게는 현직 대통령이었던 노무현도 그리고 같은 보수 진영의 이명박과 박근혜를 넘어설 경쟁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1987년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은 두 번 도전 끝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삼수 끝에 청와대로 입성했다. 두 전직 대통령과 이 전 총재의 차이는 무엇인가. 두 전직 대통령의 당선 전략은 지금 차기 대권 잠룡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가.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가는 길에 ‘3당 합당’이라는 보수진영 대통합을 완성했다. 그리고 김윤환이라는 킹메이커를 통해 당내를 장악하고 현직 대통령인 노태우를 극복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역적 통합을 위해서 김종필, 이념적 통합을 위해서 박태준과 손을 잡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외환위기 극복 과제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현직 대통령의 존재감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극복해냈다.

문재인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 신임 대표가 되면서 정치 지형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후 민주당은 여러 우역곡절을 겪었다. 급기야 안철수 신당과 합당하여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다시 태어났다. 지방선거에선 선전했지만 보궐선거에서 참패하면서 정당 지지율이 대폭 내려가 있다. 하지만 임기 3년 차 시작을 목전에 둔 시점에 대통령 지지도가 급락했다. 대통령 지지율이 고공행진할 땐 코너에 몰렸었던 문 의원이 전당대회를 거치며 강자로 거듭났다. 정당 지지율이 동반 상승하고 차기 대권후보 지지율 1위에 올라섰다(그림1).

현재로선 가장 강력한 대선후보처럼 비친다. 그러나 대선을 치르기도 전에 '대세론'이 흘러나왔던 이 전 총재는 세 번이나 도전했지만 결국 노정객으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 2011년 4월 보궐선거 당선 직후 가장 강력한 야권 후보였던 손학규 전 고문은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산간벽지에 머무르고 있다.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후 문 대표는 광폭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경쟁자였던 박지원 의원과 만나고 계파를 뛰어넘는 당내 인사를 단행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아성인 호남 방문을 통해 차기 대권을 향해 한발 더 나아가는 형국이다. 아직 다음 대통령 선거는 3년여 가까이 남았다. 그 사이 보궐선거와 총선 그리고 다양하고 민감한 정치 및 정책 이슈 등 각종 변수들이 가득하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2017년 대선 투표일에 가까워서 경쟁력이 극대화되어야 한다. 역대 대통령 선거를 돌아볼 때 문 대표는 적어도 5개의 산은 넘어서야 대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지역, 세대, 이념, 박근혜, 노무현이라고 하는 5개의 산이다.

'출신지 효과' 살리고 충청권에서 우위 보여야

먼저 지역이다. 텃밭인 호남에서의 영향력은 압도적이야 하고, 출신지인 영남에서의 경쟁력은 유의미해야 한다. 정당의 발달 과정으로 보나 역대 대통령 선거 당선자들의 경우를 보아도 지역 기반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새정치연합 절대 강세 지역인 호남에서 문 대표의 영향력은 압도적이어야 한다. 집토끼를 놓치고 산토끼를 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출신지임과 동시에 국회의원 지역구인 부산·경남(PK)지역에서의 경쟁력은 유의미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주당 후보였지만 출신지인 PK지역에서 상당한 득표 경쟁력을 보였다(PK지역에서 이회창 후보의 절반 정도 득표). 그러나 현재 문 대표는 호남 영향력과 출신지역 경쟁력이 노 전 대통령만 못하다(그림2). 지난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클린턴 정부의 부통령이었던 앨 고어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선다. 전체 득표에서는 앞섰지만 선거인단(미국 대통령선거는 해당 주에서 일반 유권자 득표에서 한 표라도 앞서면 모든 선거인단을 다 가져가는 승자독식 제도)에서 열세로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부시 후보의 동생이 주지사로 있었던 플로리다주의 투표 조작 의혹을 제기하고 이 패배가 결국 전체 결과를 좌우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자신의 고향인 테네시에서 승리했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출신지 결집 효과(Hometown Effect)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이다.

문 대표에게는 충청권 역시 매우 중요하다. 역대 선거에서 충청권을 놓치고 대통령이 된 사례는 거의 없다. 김영삼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충청 맹주’였던 JP와 손을 잡고서야 대통령이 되지 않았는가. 지역의 개념은 점차 변화한다. 단순한 출생지 의미를 넘어 경제공동체로 전환되고 있다.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호남 지역에서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이 지역이라는 산을 넘은 정책의 승리에 따른 것이라고 봤다면 지나칠까. 지역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산이다.

40대 요구에 귀기울여야… 30대·50대 다독이기도 병행

다음으로 넘어야 할 산은 세대이다. 지난 대선에서 2030세대의 투표율은 역대 선거와 비교할 때 낮은 편이 아니었다. 문 대표는 2030세대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던 안철수 지지층까지 끌어들이며 청년 유권자들로부턴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렇지만 문제는 40대였다. 박근혜 당시 후보는 50대 이상 유권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경제민주화와 복지 이슈를 선점하면서 40대 표심을 되돌렸다. 세대별 투표 성향이 강한 대선에서는 유권자들의 연령 특성을 잘 고려해야 한다. 야권 후보는 적어도 40대에서 60~70%에 가까운 호응을 끌어내야 대권 정상 문턱까지 올라갈 수 있다. 40대 표심을 잡지 못하고선 대권은 없다. 50대 이상 유권자들을 위한 각종 정책 구상이 필요하겠지만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성향 자체를 바꿔놓긴 힘들다. 2007년 대선에서 40대 화이트칼라 유권자들은 ‘샐러리맨의 신화’로 기억하는 이명박 후보의 손을 들어 주었다. 40대는 지역적으로 충청권처럼 특정 진영 후보에게 러브콜을 일방적으로 보내지 않는다. 지난 대선에서는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에 열광했다. 문 대표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적어도 상당 기간 40대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귀기울여야 한다. 가장 사회 비판적 세대인 30대와 노후 문제로 골머리를 않는 50대의 마음을 다독이는 노력이야 더 말해 무엇할까. 문 대표는 세대의 산을 넘어야 대권 가도를 달릴 수 있다.

'이념의 산'… 중도를 지양하는 열린 진보로 가야

세 번째로 넘어야 할 산은 이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이라는 이념적 통합을 이루고서야 대통령 당선이 가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보수의 대표적 인물인 박태준 전 포항제철 회장과 통합하고서야 청와대 주인이 되었다. 문 대표는 이념적으로 진보 진영을 완전하게 통합하고 상당수의 중도층을 껴안아야 한다. 2007년 대선은 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가장 싱거운 결과였다. 한나라당 경선이 사실상의 본선이었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대선 당선은 불문가지처럼 여겨졌고 실제 그랬다. 여권 후보였던 정동영 후보가 무기력했던 것은 결과적으로 이념적 분열이었다. 진보 진영 내에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갈라졌다. 대선이 있기 1년 전인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심지어 호남에서 당선을 목표로 서로 죽기살기로 겨뤘다. 통합해도 될까 말까 한 대통령 선거라면 2007년 패배는 예고된 결과였다.

지난 대선 이후 리서치앤리서치 조사에서 민주당이 앞으로 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물어본 결과 이념 철학의 재정립, 계파 혁신, 중도 외연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가장 높았다(그림3). 계파 혁신은 당내 의지가 강력하면 실현 가능하고 중도 외연 확대 역시 당 운영 방향이 균형감을 찾으면 실천 가능하다. 문제는 이념 철학의 재정립이다. 당내부터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고 구 통합진보당을 포함해 정의당까지 진보 진영의 색깔은 각양각색이다. 한편으론 국민 정서상 ‘종북 성향’정당과의 통합은 물건너갔다. 2007년 대선후보였던 ‘전북 맹주’ 정동영 전 고문은 탈당하여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 대표 당선 직후 이승만·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데 대한 당내 강경 발언도 이어지고 있다. 갈길 먼 문 대표에게 이념의 산은 가장 높은 산 중의 하나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닫힌 진보로 갈지 아니면 ‘중도를 지향하는 열린 진보’로 갈지 문 대표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당 대표에 그칠 요량이라면 몰라도 대권을 향해간다면 선택은 분명해진다.

박 대통령의 '소인정'(소통·인사·정책) 블랙홀 넘어야

문 대표가 넘어야 할 네 번째 산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지난 대선 이미 일합(一合)을 겨루었고 문 대표는 패배했다.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산이 높으면 높을수록 문 대표는 넘기가 힘들어진다. 최근 문 대표의 차기 대권 지지율이 상승하게 된 큰 이유는 박 대통령이라는 산이 낮아진 것이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으면 낮아질수록 문 대표의 존재감은 부각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노태우라는 군사정권의 존재감을 무력화시키고 나서야 문민정부의 시대정신을 부각시킬 수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고착된 지역감정을 이제는 부수어야 한다는 수평적 정권교체의 열망 속에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호남을 기반으로 한 집권여당의 영남 출신 대선후보였다. 일방향의 아날로그형 정부에서 국민이 참여하는 디지털 세계로 패러다임을 바꾼 ‘참여정부’를 탄생시켰다. 박근혜 정부는 현재 진행형이다. 창조경제, 통일대박, 국가대개조가 슬로건이다. 그러나 남은 임기 동안 얼마나 어떻게 성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쫓아 박 대통령이라는 산을 넘는 방법이 있겠지만 국민들이 대통령의 어떤 점을 아쉬워하고 대통령에게 어떤 모습을 기대하는지 연구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추락한 가장 큰 이유는 '소인정'이다. 소통, 인사, 정책 미흡이다. 문 대표의 향후 행보는 반대로 소인정(소통, 인사, 정책-이하 소인정)을 얼마나 잘할지에 달려 있다.

적어도 ‘어게인 2012’가 되고 있는 대통령의 임기 3년 차, 문 대표의 임기 1년 차 진검 승부는 시작되었다. 문 대표가 다음 대통령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박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는 '소인정' 블랙홀을 관통해야 한다. 문 대표가 또하나 넘어야 할 박 대통령이라는 산은 선거에서의 영향력이다. 2012년 총선에서 박 대통령은 선거 승리의 선봉장이었다. 말 그대로 박근혜 선거였다. 2016년 총선에서 문 대표의 선거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할지가 승부수다. 정권 심판 성격이 강한 내년 총선을 문 대표의 선거로 만든다면 그래서 박 대통령 산을 넘을 수 있다면 대권 승리의 5부 능선에 이를 것이다.

'카피캣'은 안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 극복해야

마지막으로 남은 가장 힘든 산은 노무현이라는 산이다. 역대 대통령 당선자 중 전임 대통령의 카피캣(Copy Cat:독창적이지 않고 남을 모방하는 사람이나 기업 또는 제품을 일컫는 말)은 없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달랐고,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달랐다. 문 대표에게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노무현의 비서실장’이라는 꼬리표다. 친노라는 그룹의 브랜드로 대선후보도 될 수 있었고 당 대표도 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그 이상이어야 한다. 역대 대통령 평가에서 노 전 대통령은 꽤 좋은 평가를 받지만 지역, 세대, 이념별로 차이가 꽤나 큰 편이다(그림4). 확장성이 크지 않다. 문 대표가 친노의 수장 역할에만 국한된다면 지난 대선 때의 득표조차 어렵다. 한번 출마한 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은 그만큼 식상하고 시들해진다. 노 전 대통령과는 다른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노무현정부에서 어떤 역할을 했고 그 이전부터 노 전 대통령과 어떤 관계였는지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앞으로는 문 대표가 어떤 대통령이 될 수 있는지, 되고 싶은지를 국민들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이제는 문재인라는 사람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릴 수 있도록 그 산을 넘어서야 한다.

아직 3년이나 남았지만 다음 대선을 이야기하게 된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차기 대권 주자를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현재의 상황이 만족스러우면 얼마나 좋을까. 시황제는 중화를 통일했다고 진이라는 나라를 세웠지만 실은 통일중국이 아니었다. 민생은 피폐했고 정사(政事)는 도탄에 처했다. 백성들은 새로운 영웅을 기다렸고 항우와 유방이 나섰다. 초한쟁웅(楚漢爭雄)의 왕위쟁탈전에서 최종 승자는 유방이었다. 항우와 유방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5개의 산을 넘었는지 여부였다. 항우와는 달리 유방은 지역과 세대를 막론하고 존경받았다. 자기와 다른 생각(이념)을 가진 사람들을 포용했다. 현존 권력이었던 진시황제의 폭정을 넘어섰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우상이었던 항우라는 거대한 산을 마지막으로 극복했다.

문재인 의원은 당 대표 선거라는 1차 관문을 통과했지만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문 대표가 한나라를 세운 유방처럼 5개의 산을 순조롭게 넘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지난 대선에서 문 대표의 선거 슬로건은 ‘사람이 먼저다’였다. 차기 대권에 나서는 문 대표의 장도를 위해 ‘슬로건의 재구성’을 선물한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먼저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서울대 국제대학원, 고려대 행정학과 박사과정 수료-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길리서치 팀장-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이사,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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