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기획-통일 시대 준비하자 ⑪ ]

독일은 급격한 통일 이후 후유증… 한국 상황은 다를 것

준비된 통일은 통일을 완성하고 경제 재도약 발판 마련

북한에 국유상업은행 설립, 민간은행 지점 진출 허용 검토

정우택 국회 정무위원장
[정우택 국회 정무위원장 칼럼] 올해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이 ‘대박’을 쳤다.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세계 경제의 저성장은 고착화됐고, 대한민국도 중진국 함정에 빠져 이대로 주저앉지 않을까 걱정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에서 역사상 유례없는 기회이자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통일이 우리 사회를 강타한 키워드로 떠오른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통일은 대한민국이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이 될 것이라는 견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은 주로 독일의 경험을 예로 든다. 급격한 통일 이후 독일은 2000년대 초까지 그 후유증에 시달리며 ‘유럽의 병자’로 통했다. 경제 시스템이 합쳐지면서 동서독 간의 경제 격차로 인해 한동안 독일 경제는 수렁에 빠졌다. 동서독 주민들은 서로를 거만한 서독인 ‘베씨’(Wessi)와 게으르고 불평만 하는 동독인 ‘오씨’(Ossi)라는 비하어로 지칭하곤 했다.

우리나라와 독일은 '통일 리스크'에서 차이

독일 통일 당시 동서독의 경제적 격차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에서 9.7배, 1인당 GDP에서 2.6배였다. 독일이 이 간극을 메우고 세계 제4의 경제대국으로 부활하기까지 20여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장벽의 흔적인 동서독 간의 지역감정과 경제적 격차는 완전히 좁혀지지 않았다. 명목 GDP가 대한민국의 2.35% 수준에 불과한 북한과 당장 통일이 이뤄진다면 독일 통일 이상의 충격이 찾아올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하지만 독일과 우리나라의 상황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냉전 체제 종식과 동독의 붕괴가 그렇게 갑작스럽게 진행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독일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북한을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급변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국민들이 공유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냉전시대 이후 통일 선례가 없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 독일과,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볼 수 있었던 우리는 출발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준비된 통일은 우리 경제 재도약 발판 될 것… 통일비용은 투자

준비된 통일은 대한민국의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는 것임은 물론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발판이 될 것이다. 8천만 인구와 북한 경제에 대한 투자는 내수 시장의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며, 한반도의 비핵화와 정치적 안정을 통해 우리 경제에서 가장 커다란 불안 요소를 없앨 수 있다. 또한 남북 분단의 현실에서 발생하고 있는 국방비를 비롯한 분단 비용은 한 번 사용하면 매몰되는 비용이지만, 통일비용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비용이 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독일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성공적 통일을 위해서는 70년 동안의 분단으로 인해 벌어진 남북한 간의 문화적 격차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제적 격차를 줄이는 것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이를 위해 앞장서서 철저히 사전 준비를 해야 하는 분야가 우리의 금융 산업이다.

금융산업이 철저히 준비해야…상업은행 도입, 화폐 통합 대비

독일이 갑작스러운 통일의 후유증을 떨쳐내는데 20년이 걸렸던 점을 고려해 현재 1인당 1,251달러에 불과한 북한의 GDP를 20년 후 1만 달러 수준으로 상향시키는 것을 목표로 예산을 집행할 경우 약 5,00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막대한 비용을 국가 재정이나 해외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서만 조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정책금융기관의 투자, 민간투자자금 유치는 물론 북한의 자체 재원 창출이 가능한 사업 발굴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자금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또 통일 준비 과정에서 상업은행제도를 도입해 북한에 국유상업은행을 설립하고, 민간 은행들도 지점 형태로 진출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제언도 새겨들어야 한다. 은행의 진출은 곧 북한에 금융 시스템·인프라가 구축되고, 금융 개념이 전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중앙통제 경제체제에서 가격 중심의 시장경제체제로 이행하는 단계를 무사히 통과하기 위해서는 금융 개념이 북한에 뿌리내리는 것이 선결 과제가 아닐까 한다.

마지막으로 남북한 간의 화폐 통합에도 대비해야 한다. 화폐통합 문제는 경제적 측면 등을 고려해 종합적 시각에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동서독의 화폐 교환 비율은 경제적 논거 외에 정치적 동기에 의해서도 상당 부분 결정되어 동독 기업의 채산성 악화와 도산에 따른 실업률 상승 등의 부작용이 유발되었다. 우리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남북한의 경제력 차이, 통화 제도 등을 고려하고 화폐 교환 대상을 세분화하여 교환 비율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남북 경제 통합 과정에서 발생할 거시금융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탄력적인 금융정책 운영 기조도 함께 수립되어야 한다.

맹자는 제선왕과의 대화에서 항산(恒産)과 항심(恒心)을 말했다. 경제가 안정돼야 사람이 항상 가지고 있는 선한 마음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체제를 전환하는 국가들은 그 단계에서 고인플레·재정 적자 급증 등 경제 위기를 맞이했다. 통일 대한민국의 경제를 최대한 빠르게 안정시킬 수 있도록 탄탄한 기반을 쌓는 것은 곧 가장 적확한 통일 준비가 될 것이다. 모래 위에 세운 집은 쉬이 무너지지만 반석 위에 세운 집은 흔들리지 않듯이 통일이 가져오는 위험을 넘어서서 과실을 얻기 위한 필요조건은 탄탄한 경제 기반 마련이다. 대한민국의 금융 산업이 통일을 대박으로 만들 수 있는 반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정우택 국회 정무위원장 프로필

경기고, 성균관대 법학과, 하와이대 경제학박사- 행정고시 22회 합격- 경제기획원 법무담당관- 15·16·19대 국회의원(현, 충북 청주 상당, 새누리당)- 해양수산부 장관- 충북도지사- 새누리당 최고위원- 국회 정무위원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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