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주제 편지 공모전 수상작]
"독한 공부 자극 글에도 꿈쩍 않던 딸이 아빠 편지 보고 울컥"

*편집자 주= 여성가족부에 등록된 비영리단체인 '함께하는 아버지들'은 정갑윤 국회부의장, 여성가족부, 우정사업본부 등의 후원을 받아 최근 <제1회 아버지와 함께하는 '행복 한 통(通)'> 공모전을 주최했습니다. 이번 공모전에 참여한 아버지와 자녀들은 '아버지가 자녀에게 보내는 편지' '자녀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등 총 5,036통의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탤런트 최불암씨와 퇴직 교장선생님 등 40여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은 24일 글 편지와 영상 편지 중에서 대상, 금상, 은상, 특별상 등 총 21명의 수상자를 선정했습니다. 시상식은 이달 29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1소회의실에서 열립니다. 인터넷한국일보가 발간하는 데일리한국은 가족 간의 사랑을 재확인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 글 편지 분야의 대상과 금상 수상 작품을 주최측으로부터 받은 원문 그대로 게재합니다.

영상부문 대상 수상작 - 마음의 문 (최한솔)

 

[글 편지 분야 대상= 안상수(서울 관악구)]

 

<아비의 당부>

 

아들아!
떨리는 목소리로 신붓감을 소개시키러 오겠다던 너의 전화를 받은 것이 얼마 되지 않은 것만 같은데 벌써 너를 장가 보낼 날이 정말 코앞으로 다가왔구나. 한 여자의 남편이 된다는 설렘과 한 가정의 주인이 된다는 행복함보다는 가난한 아버지의 도움 없이 홀로 결혼을 준비해야 하기에 애를 쓰며 힘겨워 하는 너의 모습. 그런 너를 지켜볼 때마다 가슴에 가시가 박히었는지 아버지는 쿡쿡 가슴이 아려오는구나.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미안함을 담아 오늘은 너무도 못난 이 애비가 아들에게 펜을 들어본다.

오늘처럼 스산한 바람이 부는 날이면 넌 언제나 가방 속 한가득 낙엽을 담아 오느라 바쁜 아이였단다. 낯모르는 행인의 무심한 발걸음에 바스락거리는 낙엽이 안타깝다며 늘 그렇게 수많은 낙엽을 모아 책장을 장식하곤 했었지. 온통 더럽혀진 너의 책장을 정리하라며 너를 꾸짖기도 했지만 아버지라고 어찌 몰랐을까? 먹고사는데 바쁜 아버지가 혹시 가장 좋아하는 계절마저 잊을까. 그 가을을 느끼게 해주기 위한 너의 착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아버지를 대하였듯이 아내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잊지 말거라.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주려 노력한다면 아마 이 세상의 그 어느 부부보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좋은 부부가 될 수 있을 게야.

나의 고운 아들아!
유달리 짧은 가을을 탓하지 않고 금세 아름다움으로 물드는 고운 낙엽처럼…. 부족한 아빠 밑에서도 바르고 정직하게 자라주어 고맙다는 말을 너에게 전하고 싶구나. 한껏 피었다 져버리는 욕심 많은 꽃이 아닌 아빠의 책장 속에 오래토록 책갈피로 간직해온 낙엽처럼 변함없는 모습으로 착하게 자라주어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구나. 가족을 남겨두고 홀로 가버린 엄마를 너는 어찌 탓하지 않았느냐? 주머니도 마음도 모든 것이 가난했던 아버지를 어찌 한 번 원망하지 않았느냐? 엄마가 없다는 핑계로 더욱 칭찬에 인색하였고, 매를 들어 무섭게만 가르쳤던 나쁜 아버지. 모든 것을 동생들에게 먼저 주었던 모진 아버지 앞에서도 언제나 가을 하늘처럼 넓고 높은 마음으로 하하 소리내어 웃어주던 너를 볼 수 있어 아버지는 많은 상처와 아픔을 씻어 낼 수 있었단다. 가족들에게 그러하였듯 상대방을 탓하기 전에 먼저 양보하는 마음으로 아내를 대하여 주거라. 네가 먼저 이해하며 다가선다면 너의 가정엔 언제나 하하호호 웃음소리가 멈추지 않을 게야.

나의 착한 아들아!
청명한 가을 하늘 같은 너의 마음이 있었기에…. 그 푸른 하늘 아래서 아버지는 홀로 세 아이를 키워야 했던 고된 시간을 이겨 낼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싶구나. 따스한 햇살 같았던 우리집 기둥 장남 때문에 동생들도 올바른 성인으로 커갈 수 있었다고 아버지는 그렇게 믿는단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를 갖게 된다면 꼭 동생들을 대하던 그 곱디고운 마음으로 아이들과 소통하는 부모가 되거라. 부족하였기에 언제나 너에게 부끄러웠던 이 아버지처럼은 되지 말고, 너른 마음으로 아이들을 이해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 같은 아비가 되어주거라. 자상하고 살가운 마음으로 항시 아이들을 대한다면 때론 아이들에게 호통을 칠 일이 생기는 날에도 아이들이 아버지에 대한 원망보다는 자신의 잘못을 더욱 더 깊이 깨달을 수 있을 게야.

나의 귀한 아들아!
조막만한 손을 움켜쥐고 네가 이 땅에 첫 울음을 터뜨린 날부터 아버지에게 너는 가을보다 고운 아이였다. 아니 사계보다 더한 신비로운 아름다움이었단다. 부모 속을 섞이던 철없던 자식이었고, 자신만 알던 이기적인 남자였지만, 너는 그런 못난 나에게도 아버지라는 귀한 이름표를 달아주었고, 그 날부터 아빠의 삶은 그 어떤 누구보다 더 소중한 의미를 갖게 되었단다.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주는 네가 아빠에겐 모진 바람과 거센 파도 같은 인생살이를 견디게 해주는 단 하나의 이유였단다.

나의 아이야!
아버지는 아직도 매일이 꿈같단다. 고운 너의 모습을. 착한 너의 모습을. 그런 내 아들의 모습을 곁에서 바라볼 수 있었기에 행복했고 아름다운 날들이었단다. 고단한 삶, 힘들었던 세월 대신 하늘이 아버지에게 내려준 선물은 바로 너. 나의 큰 아들인 너였음을 아버지는 이렇게 온 가슴으로 느껴본다. 너도 그려므려나.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되었으니 지금보다 곱절은 행복하여라. 아빠의 아들만이 동생들의 오빠만이 아닌, 이제는 한 여자의 남편으로 아이들의 아버지로 장인·장모님의 사위로 더 큰 사랑을 받게 될 터이니 앞으로도 감사하는 마음만은 잊지 말고 살아가거라.

부디 부디 잘 살거라.
아버지와 함께 했던 나날들보다 더 행복하기를 바란다. 세월이 쏜살같이 흘러 너의 아들을 혹은 너의 딸 아이를 혼인시키는 날에도 못난 이 애비처럼 더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미련일랑 없도록 아낌없이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며 후회 없이 사랑을 주며 살아가거라.

부끄러워 차마 꺼내어 보지 못한 말이지만 아버지는 너의 존재를 알게 된 삼 십여년 전의 그 날부터 지금까지 너를 오래토록 사랑해 왔단다. 그리고 영원토록 사랑할게야. 고맙다. 내 아들아. 미안하다. 나의 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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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편지 분야 금상= 김태희(충남 지역 외고 1년)]

 

<세상에서 제일 솔직한 답장>

 

10월 26일 아빠께 생애 처음으로 받았던 편지를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학교에서 ‘아버지와 함께하는 행복한 하루’를 한다는 말에 저는 아빠께 바로 전화를 드리려고 했는데 반장이라서 가정통신문을 다 걷고 마감일이 돼서야 아빠께 전화를 드렸었죠. 그런 저에게 아빠는 “아빠도 그거 문자 받았는데, 딸이 아빠 살이 까매져서 창피해서 오지말라고 전화 안하는 줄 알았네...ㅠㅠ 따님이 오라면 아빠야 좋지 뭐^^.” 하고 회사일도 다 미루고 그 주 토요일에 한걸음에 달려오셨죠. 제가 좋아하는 포도즙 한 박스 들고서요.

그 날 아빠와 하루 종일 함께하면서 제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서 아빠께 너무 죄송했어요.
고등학교 와서 힘들다는 핑계로 공부도 잘 안해서 성적도 안 좋고, 기숙사 벌점이나 받고 그리고 무엇보다 아빠, 엄마 한테 전화도 제대로 안했잖아요. 3주에 한 번씩 집에 가도 매번 친구들이나 만나고, 잠 잘 생각만 했을 뿐 어째 아빠랑 엄마와 함께 가족을 느낄 생각은 한번도 안해봤네요. 그리고 또 큰 언니 등록금, 생활비랑 철안든 남동생 게임 비용도 달라고 졸라대는데 그 옆에서 저도 친구들 입는 메이커 옷 하나 달라고 그럴 때만 아양 떨기나 하는대도 아빠는 항상 저를 믿어주고, 무조건적으로, 그냥 무조건적으로 믿어주셨죠.

이제 철이 좀 들었는지 이제야 정말 많이 느끼네요. 그날 하루종일 아빠랑 붙어있으면서 아빠가 생각보다 저를 많이 생각하고, 사랑하고 있구나를 느꼈어요. 제가 아빠한테 한 번 물어봤잖아요. “아빠는 저한테 무슨 말이 제일 듣고 싶어요?” 그 때 아빠가 해준 말은 지금도 제 자습실 책상에 포스트잇으로 붙어있어요. “아빠, 전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아빠도 이제 아빠 인생 사세요.”

아빠가 입버릇처럼 말하시는 “태희야, 나중에 주말에 쉴 수 있고, 쉬는 날 쉴 수 있는 직업을 가지렴.” 하는 말을 그제서야 이해했던 것 같아요. 어렸을 적에 아니 어쩌면 저번 달까지만 해도 아빠가 슈퍼맨인 줄 알았던 것 같아요. 아무리 힘들어도, “아빠니깐.” 내가 이렇게 해도 “아빠니깐.” 하는 생각에 이제껏 아빠께 제대로 된 편지 한 번 써본 적이 없네요. 어버이날이면 항상 마지막 문장에는 “이제부터 아빠 말 잘 듣고 언니랑 동생이랑도 안싸울께요. 아빠 사랑해요.”하고 삼일도 못 지킬 말들을 읊어댔는데, 아빠의 진심 어린 소망 한마디에 과거의 저에게 한 대 맞은 것처럼 한동안 멍했어요.

그리고 그 날 행사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아버지와 자녀의 편지 공유 시간에 저는 바보처럼 아빠께 편지 한 통 안가져왔었죠. 아빠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초록색 꽃무늬 편지 하나를 꺼내셨어요. 그 다음은 기억나죠? 편지 읽기도 전에 그 편지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펑펑 울어버렸어요. 아빠께 너무 죄송해서, 그리고 너무 고마워서. 무엇보다 아빠의 딸인 게 기뻐서…. 저는 아빠의 딸이라서 너무 기뻐요. 독하디 독한 공부 자극 문구에도 움직이지 않던 제 손이 아버지의 진심에 이제는 펜을 잡고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냥 이 자리에 있게 해준 아빠께 너무 감사해서요. 더 이상 아빠를 괴롭히고 싶지 않아서, 아빠께 창피하지 않은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어요. 아빠가 저의 유년기를 예쁘게 꾸며주신 만큼 저도 아빠의 노년기를 예쁘게 꾸미고 싶어요. 그 누구보다.

“휴... 아버지도 잘난 우리 딸 뒷바라지하려면 열심히 일해야지.... 헤헤”라는 말 아빠에만 해당되는 거 아니에요. 저도 우리 존경하는 아빠 뒷바라지하려고 이제부터 열심히 공부할꺼에요. 저도 힘들면 가족 사진 보면서 힘내고 있어요. 우리 가족들 진짜 열심히 일해서 건강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멋진 부녀가 됩시다, 아빠. 이제부터 아빠 말 잘 듣고 언니랑 동생이랑도 안싸울께요.

아빠 사랑해요. 아빠 잘 때 옷 두껍게 입으시고, 현장 나가면 꼭 안전모 쓰고 가세요. 그리고 출근하실 때는 지퍼 다 잠그고 다녀서 항상 감기 조심하세요. 또 가끔씩 제 용돈 줄 돈으로 아빠 쓰고 싶은 데에 좀 쓰세요. 아빠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세상에서 제일, 엄마보다 많이.

아빠! 저는 끝이 없는 인생의 긴긴 길을, 아빠와 같이 걷고 싶습니다. 아빠와 같이 걷고 싶습니다. 아빠 사랑합니다.

2014년 11월 어느 밤
그리 멋지지 않은 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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