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전문가 칼럼]

필자는 친박모임 세미나에서 '반기문의 허와 실' 발제

일부 언론, "반기문 대망론 거론, 김칫국 마셨다"고 보도

질문 문항에 '반기문' 이름 포함시키면 지지율 더 높게 나와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 칼럼] '반기문 대망론'이 여의도 정가에서 발화(發火)된 시점은 10월 29일 친박 의원들의 연구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의 제9차 세미나였다. 그 세미나의 발제자는 바로 필자였다. 필자는 본의 아니게 반기문 대망론에 불을 붙인 방화범이 되었다.

친박 모임에서 '반기문 대망론'이 아닌 '반기문의 허와 실' 발제

당초 필자의 의도는 여론조사방법론에 초점을 맞춰 반기문 대망론의 허(虛)와 실(實)을 따져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필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전개됐다. 세미나는 반기문 대망론의 시발점(始發點)으로 보도되었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일부 언론의 의도적 오보와 재인용 오보 등으로 진실이 왜곡되었다.

이에 필자는 당시 포럼의 준비·진행 과정에 대해 간단히 배경 설명을 하고, 그날 소개하고자 했던 반기문 대망론의 허와 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드리고자 한다.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의 총괄 간사인 유기준 의원실에서 발제 요청이 온 것은 세미나 당일로부터 23일 전인 10월 6일이었다. 담당 보좌관이 “세미나가 10월 29일 오전 11시에 있는데 발제가 가능한가”라고 물어왔다. “가능하다”고 답을 했다. 그리고 주제를 필자가 정해서 알려달라고 했다.

필자가 주제를 알려준 것은 그로부터 9일 후인 10월 15일이었다. 주제는 ‘2017년 대권 지형 전망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출마 가능성 등 여러 가지 변수들을 중심으로’였다. 적어도 친박 측이 유력 여권 대권주자인 김무성 대표를 견제하기 위해 청와대측과 교감하여 세미나 주제를 필자에게 던져주지 않았던 것은,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명확한 팩트(fact)이다. 문자메시지로 주고 받은 모든 통신 기록도 그대로 보존돼 있다.

다만 세미나 당일이 하필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 2년 차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방문한 날이라는 점에서 시점이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한 점에는 필자도 동의한다. 박 대통령이 그날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할 것이란 사실에 대해 필자는 당일 오전에야 뉴스를 보고 알았다. 미리 알았다면 다른 주제를 정했거나, 세미나 날짜를 조정하자고 했을 것이다.

물론 국가경쟁력강화포럼 측은 시점이나 주제가 정치적으로 큰 파장이 있을 것을 알았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세미나를 언론에 개방하는 공개 형식으로 진행했고, 주제와 관련해서도 필자에게 변경 요청을 하지 않은 점은 오해를 낳기 충분했다. 반기문 대망론의 진원지로서 비난 받는 것을 감수하고, 김무성 견제용으로 세미나를 개최했다고 오해 받기에 충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행사 당일 언론 보도 과정을 보면서, 그러한 오해에 상당 부분 기여한 책임은 일부 언론과 일부 기자들에게도 있다고 느껴졌다. 세미나 당일 발제는 11시였고 세미나가 진행 중이던 11시 51분 한 석간지에 세미나 관련, 정확하게는 발제의 내용이 보도됐는데, 제목은 ["반기문, 대선 후보"… ‘김칫국부터 마시는’ 親朴]이었다.

세미나가 끝나기도 전에 다소 부정적인 제목으로 기사가 송고되었고, 발제자가 “반 총장이 대구·경북 지역 및 새누리당 지지층에서 지지도가 높다”면서 “만약 반 총장이 출마한다면 새누리당 후보로 나설 것”이라고 발언한 것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필자는 발제 과정에서 "대구·경북 지역에서 지지도가 높다"고 말한 적도 없고, "출마한다면 새누리당 후보로 나설 것”이라고 발언하지도 않았다. 정확하게 전하면 “대전·충청 지역에서 지지도가 높고, 아직 영남권에서는 지지율이 높지 않다. 지지 정당별로는 새누리당 후보들과 지지층이 겹친다는 점에서 유권자들이 새누리당 후보로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반 총장이 대구·경북 지역에서 지지도가 높고,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할 가능성이 높으니, 여권 후보로 나가면 상당한 경쟁력도 있고 가능성도 높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다. 필자가 느낀 것은 해당 기자, 혹은 언론사가 먼저 김칫국을 마신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반기문을 너무 이르게 띄우는 친박을 비난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해당 언론이 반기문을 먼저 띄우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 김칫국 기사는 다른 매체들에 의해 재인용되어, 이미 반 총장이 영남권에서도 지지를 받는 여당의 친박 후보로 인식되게끔 재생산되었다. 반기문 대망론에 허와 실이 있다는 발제 요지는 전혀 보도되지 않고, ‘반기문 김칫국’ 왜곡 보도가 나가게 됐다. 졸지에 포럼과 필자는 '친반'(親潘) 단체와 인사가 된 것이었다.

'반기문'을 질문 문항에 포함시키면 지지율 더 높게 나와

그렇다면 필자가 그날 하고자 했던 반기문 대망론의 허와 실은 무엇이었을까? 반기문 대망론이 제기되는 계기를 제공한 여론조사는 한길리서치의 조사였다. 1위인 반 총장의 지지율이 2위인 박원순 서울시장에 비해 무려 3배가량 앞서는 조사 결과였다. 그 전후에 실시된 다른 기관의 조사, 가령 엠브레인이나 리얼미터의 조사에서는 그와는 다르게 반 총장과 2위가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런데 다른 요인도 작용할 수 있지만 질문의 방식 때문에 이같은 격차가 나타났을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었다. 그 뒤 실시된 중앙일보의 조사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 담당 기자가 그에 대해 부연설명을 한 적도 있었다.

질문 방식의 차이를 살펴보자. 한길리서치의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문1) 귀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문2) 귀하가 지지하는 정당은 다음 중 어느 당입니까?
문3) 귀하는 차기 대통령후보로 다음 새누리당 인물 중에서 누가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하십니까?
문4) 그럼 야권의 대통령 후보로 다음 중 누가 적임자라고 생각하십니까?
문5) 그럼 여야 전체로 볼 때 차기 대통령으로 누가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하십니까?
문6) 그럼 반기문 UN사무총장이 나올 경우 차기 대통령으로 누가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하십니까?

문6)에서 반기문 총장만 다른 후보와 달리 질문 문항에 포함돼 있다. 마치 보조인지도 문항처럼 질문 과정에서 브랜드(후보) 이름을 불러주고 인지 여부를 묻는 방식으로 조사돼 반 총장이 상대적으로 이름이 불려지지 않은 여타 후보들에 비해 유리하게 지지율이 나왔을 수 있다.

중앙일보도 지난 11월 초에 동일한 방식으로 조사했는데, 한길리서치와 조사 결과가 역시 비슷했고, 다음과 같이 인정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포함시킨 지지율 조사도 해봤다. 반 총장은 34.3%로 문 재인 의원(10.6%)- 박원순 시장(10.6%)-김무성 대표(8.1%)를 크게 앞지르며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질문 문항이 ‘거론된 후보들 외에 반 총장을 포함시킨다면 누구를 지지하겠느냐’여서 “반 총장 측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고 중앙일보 여론조사팀 관계자가 말했다. 지난달 중순 반 총장이 39.7%를 기록하며 1위에 올랐던 여론조사도 같은 방식으로 질문했다.”

반면 '질문 과정에서 반 총장의 이름을 별도로 거론하지 않는 방식의 여론조사에서는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반 총장의 압도적 지지율에는 다소 거품이 끼어 있을 수 있다. 잘못하면 고건·정운찬 전 총리의 전례처럼 여의도에 안착하기엔 힘겨울 수도 있다'는 것이 세미나의 요지였다. 그러나 필자의 이같은 주장은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김칫국 마시지 말라' 는 취지의 발제가 '김칫국' 포럼으로 둔갑

김칫국 마시지 말라는 취지의 발제가, '김칫국 마시는' 포럼의 발제로 둔갑한 것이었다. 일부 언론에 의해서 말이다. 참고로 최근 여론조사기관들의 질문 방식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타난 사례는 이것 말고도 더 있었는데, 바로 중대선거구제 개편 관련 여론조사 결과였다.

리얼미터와 중앙일보 조사와는 달리,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는 소선거구제(32%)보다는 중대선거구제(49%)에 찬성하는 의견이 훨씬 높게 나타났는데, 원인을 찾아보니 한국갤럽의 조사 문항이 리얼미터나 중앙일보 조사팀과 다른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이었다.

한국갤럽의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현행 선거구를 광역으로 통합해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있는데요. 귀하는 작은 선거구에서 최다득표자 한 명을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와 좀 더 큰 선거구에서 순위대로 두 명 이상을 뽑는 중대선거구제 중 어느 것이 좋다고 보십니까?” 현행 소선거구를 광역으로 통합해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있다는 설명을 하고 질문을 던지니, 중대선거구 찬성 의견이 높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리얼미터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개헌에 대한 여러 의견과 함께 국민 각계 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표하지 못하는 현 국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국회의원 선거제도와 관련하여 다음 중 어느 선거구제에 더 공감하십니까?”

중대선거구나 소선거구제에 대한 언급 없이 선거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정도로 질문을 하고, 어느 선거구제에 공감하는지 물으니, 소선거구제가 47.8%, 중대선거구제가 27.1%로 정반대로 나타난 것이다. 중앙일보 조사 결과도 비슷해 소선거구제 선호가 51.5%로 중대선거구제(37.5%)보다 높았다. 한국갤럽과는 완전히 다른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처럼 여론조사 결과는 조사기관의 질문 방식, 조사 방법, 그리고 언론사의 입장 등에 따라서 진실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조사 결과의 해석과정에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반기문 대망론도 결국 그래서 허와 실이 있다는 것이고, 그 중 허(虛)는 여론조사 전문가로서 봤을 때 실재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었다. 물론 '안철수 현상'이 퇴조하고 난 이후 새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욕구가 반기문 현상으로 부활했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실재적 실(實)일 수는 있으나, 총장으로서의 임기가 2년여 남아 있다는 점에서는 아직 그 실(實)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하기는 이른 것이다.

여하튼 반기문 현상은 실재하기 때문에, 여론조사기관들 입장에서는 무시할 수도, 집중 조명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반 총장도 작금의 현상에 대해서 난감하겠지만, 여론조사기관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여론조사 대상으로 반기문 총장을 포함시켜야 하는지’ 여부를 여론조사에 부쳐봐야 할지 모르겠다. 참으로 복잡한 대권 지형이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 프로필
연세대 철학과- 연세대 신문방송학 석사- 연세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리얼미터 대표이사(현), 한국정치조사협회 상임이사(현),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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