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기울어진 운동장' 탓하지 말고 '제3의 길' 모색해야
여당, 보수정권의 '권불십년' 피로감 극복 위해 대혁신해야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는 많이 변신하는 쪽이 유리할 것

[김광덕 인터넷한국일보 뉴스본부장 칼럼] "야당이 기울어진 운동장에 적응하면 될 텐데, 그걸 외면하니 너무 답답합니다."
지난주에 한 독자가 필자에게 보내온 글이다. 필자가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와 한국의 차기 대선 전망을 연결해 쓴 글을 보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필자는 “2017년 대선에서는 ‘권불십년론’에 따르면 진보가 유리하고, ‘기울어진 운동장론’에 따르면 보수가 우위에 있다”고 분석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의 뜻은 십년 이상 길게 가는 정권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10년 동안 이어지는 보수세력 집권에 대한 피로감 누적으로 다음에는 진보세력이 유리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했다. 반면 50대 이상 인구 급증에 따른 고령화 현상의 가속화로 다음엔 보수 세력이 구조적으로 우위에 설 가능성이 높다는 게 ‘기울어진 운동장론’이다.

야당 '운동장' 핑계 대지 말고 역발상의 대혁신 해야

독자의 주장은 전적으로 맞는 얘기다. 그의 주장은 야당의 '역발상'을 촉구한 것이다. 어차피 박근혜정부 말기로 갈수록 10년 가까이 집권한 보수 여당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야당의 득점 요인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표밭의 구조적 한계, 즉 기울어진 운동장에 잘 적응하는 과제가 남게 된다. 야당은 고령화에 따른 보수화 현상에 맞춰서 잘 대처하면 실점을 면할 수 있다. 글 잘 쓰는 사람은 붓을 탓하지 않는다. 불편한 운동장에 맞춰서 현지 적응 훈련을 하면 되는 것이다. 가령 월드컵 경기가 고산 지대에서 열릴 경우 지형과 기후 탓을 하면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주장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경기장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합리적 중도층과 고령층의 표심에 다가갈 수 있도록 당의 이념과 노선을 근본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또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사회적 양극화, 청년 일자리 창출, 노후 복지, 보육·교육, 연금, 외교안보, 경제 활성화 문제 등에 대해 깊이 연구해서 실현 가능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 정책을 비난하고 브레이크를 거는 역할에 그쳐서는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없다. 가령 재원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신혼부부에게 임대주택 한 채씩 제공하겠다고 선심 공약을 해서는 수권정당이 될 수 없다.

1990년대 위기에 처한 선진국의 진보 정당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적응하려는 역발상으로 집권 발판을 마련했다. 총선에서 연속 네 번 패배한 영국의 노동당은 1990년대 초반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처럼 보였다. 게다가 1994년 노동당의 존 스미스 총재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당은 혼란에 빠졌다, 이 때 혜성처럼 등장한 토니 블레어는 노동당 당수로 선출된 뒤 ‘제3의 길’이란 기치를 내걸고 보수적 정책을 당에 접목시켰다. 그는 노동당의 성격도 '계급정당'에서 '국민정당'으로 변모시켰다. 블레어는 당시 “나라를 바꾸는 것보다 당을 바꾸는 것이 더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한 적이 있다. 블레어를 비난하는 측에서는 보수당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마가렛 대처에 비유해 "블레어는 바지를 입은 대처"라고 비아냥거릴 정도였다. 블레어는 1997년에 총리로 선출돼 노동당이 10년 이상 집권하는 길을 열었다.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불리한 경기장을 감안한 맞춤형 전략으로 공화당의 장기 독주를 막아냈다. 1980년대 민주당은 대선에서 세 번 연속 패배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칸소 주지사를 지내고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빌 클린턴은 공화당의 정책 중 필요한 것을 골라 벤치마킹해서 당의 노선을 전환함으로써 1992년과 1996년 대선에서 잇따라 승리할 수 있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같은 고전적 사례를 참고해서 자기 희생을 각오하는 변신을 시도해야 희망의 불빛을 찾을 수 있다.

야당 싱크탱크, '노인층 잡기' 시도… 당권 경쟁자들은 계파 싸움

요즘 새정치민주연합의 움직임 중 번쩍 눈길을 사로잡는 게 있다. 새정치연합이 차기 총선과 대선에 대비해 노년층 표심을 잡기 위한 정책 개발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당 산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을 중심으로 ‘100세 사회 위원회’를 구성해 노년층을 사회적 생산활동의 중심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연구원 일부에서는 ‘70세 이상으로 정년을 연장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고 한다.

새정치연합 지도부와 중진들은 아직도 계파 싸움에 매몰돼 있지만, 당 싱크탱크 내부에선 ‘발상의 전환’ 전략 검토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새정치연합이 이렇게 확 변신을 시도한다면 새누리당이 걱정하고 초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보면 기울어진 운동장에 안주하면서 쉽게 선거를 치러온 세력이 새누리당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들은 “야당의 싱크탱크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지만 당권 경쟁에 나선 야당 중진들은 여전히 계파 싸움에 젖어 있어서 우리에게 위안이 된다”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여당도 발상의 전환해야… 보수정권 피로감 탈피 위해 대혁신을

하지만 여권의 한 선거전략가는 “당연히 보수 정당도 과감히 역발상을 시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불십년론이 적용돼 피로감을 느끼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새누리당을 대수술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에 보수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이명박정부나 박근혜정부와는 완전히 콘셉트가 다른 새로운 정권이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보수의 대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수의 대혁신을 위해서는 우선 청렴성·도덕성을 확보해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한국에서는 보수세력이 진보세력보다 더 부패하다는 얘기가 상식처럼 통해 왔다. 보수 여당과 보수 단체들은 대대적으로 우리 사회의 도덕성 회복 운동을 벌여야 한다. 반면 진보의 대혁신을 위한 최우선 방안은 합리적 개혁을 추구하는 ‘제3의 길’로 전환하는 것이다. 또 국민들은 보수와 진보 양측 모두에게 진영의 벽을 허물고 합리적 대화와 토론을 하기를 바라고 있다.

차기 대선 '계가 싸움'인가 '불계패'인가… 혁신 강도에 달려

두 진영이 모두 이런 방향으로 혁신을 추진한다면 다음 총선과 대선은 한두 집 차이를 따져야 하는 '계가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개혁하지 않는 진영이 있다면 그 쪽은 불계패를 당하게 될 것이다.

요즘 여야 지도부와 혁신위가 내놓는 혁신 방안를 보면 근본적인 수술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유권자들에게 전혀 감동을 주지 못하는 혁신안이다. 의원 세비 동결이나 항공기 이코노미석 타기, 출판기념회 금지 등은 본질적인 개혁 방안이 될 수 없다. 어찌 보면 본질에서 벗어난 것으로 모양 갖추기일 뿐이다. 일각의 표현처럼 ‘비누칠하거나 때를 미는 수준’에도 미치는 못하는 방안들이다. 당을 환골탈태시키는 근본적 수술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여야 모두 옷뿐 아니라 체질까지 바꾸는 노력을 한다면 다음 선거는 막상막하의 시소게임이 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건강하게, 팽팽하게 대결해야 우리 정치도 살아난다. 그렇게 되려면 여야 양측에서 용기 있게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리더들이 나와야 한다. 어쨌든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는 많이 변신하는 쪽이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밖에 없다. 확 달라져야 한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