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 일본 방문 리포트]
누카가 한일의원연맹 회장 "손님 맞기 위해 청소 깨끗이 하겠다"
일본, 위안부 문제 책임 있게 행동해 '역사의 감옥'서 탈출해야
"일본, 한일국교 정상화 50주년 앞두고 청소하고 화(和)를 실천해야"

정의화 국회의장
*편집자 주=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달 26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의회 지도자들을 만났습니다. 대통령 순방과 달리 국회의장의 순방은 충분히 보도되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 내용이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 의장은 외교 활동을 국민들에게 보고하는 차원에서 지난달 '중남미 방문 리포트'에 이어 이번에 '일본 방문 리포트'를 써서 인터넷한국일보에 특별기고를 했습니다.

[정의화 국회의장 일본 방문 리포트]

"손님을 초대하려면 현관 앞 청소를 깨끗이 하듯 (한일 정상회담) 분위기 조성을 위한 청소를 깨끗이 해나갈 생각이다.” 최근 일본을 방문했을 때 첫날 누카가 후쿠시로 한일의원연맹 회장이 우리 방문단에게 한 말이다.

누카가 한일의원연맹 회장 "손님 맞기 위해 청소 깨끗이 하겠다"

'청소' 와 '화'(和). 지난달 26일부터 2박3일 간 진행된 일본 방문의 두 가지 화두이다. 내년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는 한국과 일본의 바람직한 미래 관계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나는 누카가 회장의 '청소론'에 공감을 표시했다. 양국 정상이 사전 조율 없이 만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현 상황이 주는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번 일본 방문에는 여야를 대표해서 김태환, 심상정, 심윤조, 문정림, 신의진 의원이 동행했다.

방일 두 번째 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만났을 때 나는 ‘화’(和)를 화두로 꺼냈다. 최근 일본을 주제로 이야기할 때 ‘화’를 자주 거론해 왔다. 사실 ‘화’(일본식 발음으로는 ‘와’)는 ‘주위를 배려하고 사이 좋게 지낸다’는 뜻으로 일본은 이러한 ‘와 문화'를 건국이념이자 국민성의 토대라며 자랑해왔다. 한자를 풀이해 보아도 ‘화’(和)라는 글자는 ‘밥(禾)을 같이 나눠 먹는다(口)’는 뜻을 지니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서기 603년 일본의 쇼토쿠(聖德) 태자가 일본 최초의 성문법을 반포하며 제1조에 ‘와를 존중하라’고 한 것이 그 시초로 알려져 있다. 현대 일본인들도 스스로를 화의 나라(和國), 일본식 음식을 화식(和食), 일본 스타일을 화풍(和風)으로 부를 만큼 이러한 ‘와 문화’에 익숙해 있다. 마침 내년에 아베 총리의 고향인 야마구치현에서 열리는 보이스카우트 세계잼버리의 슬로건도 ‘와’(和)로 정해져 있어서 자연스럽게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아베 총리에게 "한일 간에 화(和)를 이루어줄 것 기대한다"

나는 일본의 ‘와 문화'를 높이 평가하며 “(세계잼버리를 계기로) 일본 내부뿐 아니라, 한·일 간에, 세계적으로도 화(和)를 이루어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지난 3월 (아베 총리가) 참의원에서 ‘고노담화를 수정할 의사가 없다’고 한 발언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운을 뗀 뒤 “평균 나이가 88세에 이르는 54명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주었으면 한다”며 위안부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주문했다.

아베 총리는 “필설로 다할 수 없는 힘든 고통을 겪은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면서 “고노 담화를 수정할 의사가 전혀 없고, 역대 내각과 나는 생각이 다르지 않다”고 답했다. 아베 총리의 발언은 고노-무라야마-간 나오토로 이어져온 일본 측 담화에 담긴 원칙을 지켜가겠다는 의미로 해석되지만 사실 그 동안의 입장을 그대로 반복한 것이어서 내심 아쉬움이 컸다. ‘(고노 담화 등을) 수정할 의사가 없다’고 100번 말하는 것보다는 한 가지라도 실천적 대안을 내놓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아베 정권 출범 이후 한국 등 피해국 국민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아베 총리 등 일부 정치지도자들의 행동이 잦았기에 더욱 그러하다. 기존 담화의 계승 의사도 필요하지만, 고노-무라야마-간 나오토 담화를 흔들림 없이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100번의 말보다 실천적 대안 제시가 필요한 시점

아베 총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동아시아정상회의(EAS), G-20 등 앞으로 예정된 다자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희망을 피력하기도 했다. 나는 “21세기는 문명의 시대이다. 패권주의나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지배하는 시대는 끝났다. 한국과 일본이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바탕으로 교류하며 발전하기를 원한다”는 말로 일본의 전향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물론 아베와의 회담에서 성과도 있었다. 아베 총리는 나의 한일 국회의장 회담 정례화 제안에 적극적인 찬성을 표하였고, 내년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점으로 두 나라가 미래지향적이고 발전적인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이번 일본 방문의 공식 목적은 양국 의회 차원의 교류 확대였다. 그러나 양국 언론은 나와 아베 총리의 만남에 더 비중을 두었다. 나 역시 일본 총리의 전향적인 입장이 나왔으면 하는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회담이었다.

이번 방일을 초청해주었던 이부키 분메이 중의원 의장과는 보다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이부키 의장에게 “한·일이 어두운 역사의 짐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면 안 된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살아계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과거의 일을 깨끗이 정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부키 의장은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 협력하여 미래를 개척하기를 희망한다”고 화답해주었다.

이부키 의장은 “독일과 프랑스가 몇 차례 전쟁을 했으면서도 2차대전이 끝난 뒤 (엘리제)조약을 맺어 번영을 향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이에 대해 “1963년 프랑스와 독일이 조약을 맺은 것이 오늘날 유럽연합(EU)을 만드는 기반이 되었다. 우리 양국도 진심으로 양보하고, 배려하고, 이해하고, 도와주고, 감사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응답했다. 야마자키 참의원 의장과는 한층 실무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한다면서 2020년 도쿄 올림픽이 잘 치러지도록 협력해줄 것을 부탁했다.

한반도와 일본 열도 간 교류의 역사는 1500년을 넘게 이어져 왔다. 한국과 일본은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과 식민지시대 35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세월 동안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해왔다. 지금도 두 나라 대부분의 국민들은 한일 우호관계가 증진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일본 총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이중적 자세를 보이면서 정상 간 만남조차 불투명하고, 일본 내에서는 혐한(嫌韓)시위와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특정집단에 대한 공개적 혐오 발언)까지 날로 증폭되고 있다.

팩트(fact)로서의 역사는 엄연히 존재한다. 동북아 근현대사를 볼 때 누가 뭐라고 해도 일본은 가해국이고 한국은 피해국이다. 일본의 강제병합과 수탈, 태평양 전쟁 감행에 따라 당시 한국민들은 말로 형언하기 힘든 피해와 고통을 겪은 것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한일 양국, 특히 두 나라 정치권이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너무나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야스쿠니 참배, 역사교과서 왜곡 등 한일 간의 많은 쟁점이 여기에서 비롯됐으며, 최근에는 일본군 위안부를 둘러싼 양국의 인식차가 가장 첨예한 문제로 부상했다.

일본 정부 책임 있게 행동해야… '역사의 감옥'에서 탈출하는 길

이번 일본 방문을 통해 한국과 일본이 바라는 일차적 ‘희망 사항’은 분명해졌다. 한국은 일본의 ‘행동 변화’를, 일본은 한국과의 ‘정상회담’을 원하고 있다. 이 간격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어쩌면 답은 이미 나와 있을지 모른다. 우선 누카가 회장이 언급한 청소론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진정으로 이웃과의 ‘화’(和)를 원한다면 ‘화’(和)를 실천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것저것 사족을 다는 식으로 책임 회피를 할 것이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그것이 일본이 ‘역사의 감옥’으로부터 탈출하고 피해 국가들과 진정으로 화해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또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동포들과 재일기업인 등이 이구동성으로 말한 것처럼, 반인권적이고 시대착오적인 혐한 시위와 헤이트 스피치는 일본 정부가 어떻게 해서든 억제해야 한다. 한일 간 정치적 경색이 양국 국민들의 갈등으로 확산돼 악순환 고리에 빠지는 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나는 야마자키 참의원 의장을 만났을 때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동북아 평화와 번영에 이르는 먼 길은 한·일이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

결국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다양한 채널에서 더 많은 교류와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 특히 내년은 국교정상화 5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그 동안 수없이 언급되고 강조돼 왔던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이라는 말이 더 이상 공허한 수사가 아니라 양국관계의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과거의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하되, 일본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이라는 사실을 직시하는 균형 감각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정의화 국회의장 프로필

부산고. 부산대 의대- 의학박사, 신경외과 전문의-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18대 후반기 국회부의장, 국회의장 직무대행- 세계스카우트의원연맹 총재- 한미의원외교협의회장- 5선 국회의원(현, 부산 중구·동구)- 국회의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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