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문가 칼럼]
아베노믹스의 경기회복 시나리오 현실화되지 않아
엔저 현상에 단기적으로 환변동 보험료 등 지원
근본 대응책은 기업경쟁력 강화, 서비스업 육성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조하현 교수 칼럼] 일본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불리는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진 것은 1985년 ‘플라자 합의’(Plaza Agreement)에서 비롯되었다. 미국, 일본 등 주요 5개국은 이 합의를 통해서 엔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대폭 절하시켰다. 그 결과 엔화가 급격하게 고평가되자 일본은 금리를 내려서 엔화 절상을 완화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낮은 금리로 인해 오히려 일본의 주가와 부동산가격이 폭등했고, 인플레이션을 제어하기 위해 금리를 다시 상승시키자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는 현상을 겪었다.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면서 소비와 투자가 감소하고 일본 경제가 장기침체에 들어간 것이다.

아베노믹스는 이렇게 20년 동안 지속된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아베 정권의 여러 경제 정책들을 말한다. “윤전기로 돈을 찍어서라도 경기를 부양시키겠다”는 아베 총리의 언급은 적극적인 통화팽창 정책을 상징한다. 구체적으로 일본중앙은행(BOJ)이 일본 정부의 국채를 매입하는 금융완화를 실시하고, 정부 지출을 늘리는 것이 아베노믹스의 핵심이다. 금융완화로 엔화 약세가 유지되면 수출기업의 이익 증가가 임금 인상과 소비 증가로 이어져 경기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출발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2년 내 물가상승률 2% 달성‘ 그리고 ’2020년까지 실질성장률 2% 달성‘을 내세우며 숫자 ’2‘로 국민들에게 경기부양 의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면서, 우선 침체된 분위기를 걷어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또 집권 후에 중앙은행을 통해 20조엔 규모의 통화를 공급하면서 엔/달러 환율이 집권 전 70엔 후반에서 3개월 만에 95엔 이상으로 상승했고 수출도 상승세를 이어나갔다.

아베노믹스가 의도한 경기회복 시나리오 현실화되지 않아

하지만 최근 일본의 소비지출이 지난 5개월 내내 침체하면서 아베노믹스가 경기부양에 실패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가 막대한 재정적자를 완화시키기 위해서 소비세(한국의 부가가치세)를 5%에서 8%로 인상한 것이 소비 감소의 원인이었다. 소비와 투자 증대가 아베노믹스의 궁극적인 목표인데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한 세금 인상은 소비를 위축시킴으로써 일본 경제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올해 일본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9%로 3개월 만에 또 하향 조정했다.

또 다른 문제점으로는 아베노믹스가 의도했던 경기회복 시나리오가 그대로 현실화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원래 계획은 엔화 약세를 유도해서 수출기업의 이익을 늘리고, 이것이 고용 확대로 이어져 소비와 투자를 증가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엔화 약세가 수출은 늘렸어도 고용, 소비, 투자 등 내수를 진작시키는 데까지는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이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시키고 무역수지 적자가 역대 최고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출보다 수입이 많은 상태에서는 엔저 현상이 수입물품 가격을 상승시켜서 ‘긍정적’ 인플레이션이 아닌 수입 증가로 인한 ‘부정적’ 인플레이션의 발생으로 소비자의 구매력을 약화시킨다.

엔저 현상에 단기적으로 환위험 줄일 수 있도록 대비

그렇다면 엔저 현상은 한국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엔화가치가 저평가되면서 상대적으로 원화가치는 상승했고 여기에 최근 위안화 약세까지 겹치면서 한국의 수출기업들은 국제적 환율전쟁에 휘말리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수출의 상위 100개 품목 중 일본과 겹치는 품목이 55개나 되며, 그 품목들이 우리나라 수출의 54%를 차지하는 상황이므로 엔저 정책은 우리나라에 불리하다. 그런데 일본 기업들이 수출품 가격을 내리면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사실상 마땅한 방어책이 없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엔저에 취약한 수출기업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환변동 보험료를 지원하는 등 환위험을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답은 기업 경쟁력의 강화와 내수 시장 확대이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15위권에 이르지만 대외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한국경제의 대외의존도는 GNI(국민총소득) 대비 100%가 넘는데 이는 주요 선진국 중 한국과 국가 규모가 비슷한 영국 및 프랑스 등에 비해서도 약 40% 포인트가 높다. 한국이 소규모 개방경제이기에 대외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너무 높은 수치이다. 한국이 대외의존도를 낮추고 내수시장을 키워야 한다는 것에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할 것이나 이는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중공업 위주의 제조업이 국가 경제를 견인하였고 이에 반해 서비스업의 성장세는 약했다.

엔저 현상 근본적 대응책은 기업 경쟁력 강화와 내수시장 확대

그러나 현재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은 경쟁국에 비해 우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여기에 내수를 키우려면 인구가 확보되어야 하는데 인구 성장세는 점차 둔화되고 있고 2030년을 기점으로는 인구 감소를 예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제조업에 비해 서비스업이 고용창출 효과 등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것으로 분석되므로 한국경제의 대외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 서비스업의 비중이 더 커지도록 조정되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다만 오랜 기간을 두고 꾸준한 정책이 필요하므로 정부는 이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준비해야 한다.

기업도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서 수출 품목과 지역 다변화를 이뤄야 하며, R&D(연구·개발)투자를 확대해서 제품 경쟁력을 제고하는 것이 환율변동으로 인한 취약성을 줄일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이다. 이는 일본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지금의 엔저 현상으로 인한 수출 증대는 일시적인 효과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는 제품 경쟁력을 높이고 기업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통화가치 하락이라는 유리한 조건이 주어졌을 때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현재 아베노믹스가 성공한 정책인지 실패한 정책인지에 대한 논의가 많지만 아직 속단할 수는 없다. 엔화 약세로 얻은 수출기업의 이익증대가 임금 인상, 소비 증가로 연결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일본도 확대 통화정책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으므로 엔저정책이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미국은 양적완화 정책을 끝냈지만 일본과 유럽은 당분간 통화증가정책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정책당국은 아베노믹스의 효과에 대해서 속단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외환시장을 모니터링하여 필요한 경우 적절한 시장 개입도 과감히 시도해야 할 것이다.

■조하현 교수 프로필

연세대 경제학과, 연세대 대학원 경제학과(석사)-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박사- 연세대 상경대학 경제학부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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