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기획-국격을 높이자 ⑬]
여야 양측 모두에서 '정당' 보이지 않아
선거가 없는 내년 상반기가 정치 개혁 적기
정당 및 선거 개혁 이후에 개헌 논의해야

김용복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용복 교수 칼럼] 현대의 대의 민주주의에서 정당이 정치의 중심이라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은 없다. 정당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국민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정책화하며, 이를 대변하는 정치인들을 충원하는 역할을 한다. 정당이 제대로 기능해야 정치가 살고 민주주의가 공고해진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정당 불신 나아가 정당 무용론까지 나오는 최근 상황은 어렵게 성취해온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흔히 한국의 경제는 일류이지만, 정치는 삼류라고 강한 정치 불신을 표출하곤 한다. 정치 후진국 이미지는 아마도 정치인들이 자초한 측면이 크지만, 언론이나 유권자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편가르기에 매몰된 언론이나, 지역주의에 포획된 유권자들이 만들어낸 정치 현실에 안주하게끔 정치인들이 길들여졌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야 양측에서 '정당' 보이지 않아… 사유화된 정당정치

최근 정치 상황은 더욱 심각해 보인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정당은 보이지 않는다. 여당은 청와대란 권력 뒤에 숨어버렸다. 자신의 위상과 역할을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청와대를 뒷받침하는 기구로 전락해버린 느낌이다. 야당은 계파 갈등과 시민단체·이익단체의 포위 속에서 우왕좌왕하면서 정체성을 상실하고 있다. 진보정당도 마찬가지이다. 소수여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지만, 소수정당에 적합한 전략도 대안도 보이지 않는다. 대권을 앞둔 정치인 개인들의 경쟁만이 의회정치, 정당정치를 지배하고 있다. 그렇게 또 새로운 대권이 탄생한다면 결국 사유화된 정당정치로 인하여 현재의 정치불신이 되풀이될 것이다. 국민이 정치에서 사라지는 현상이 반복될 것이다.

왜 이러한 문제들이 벌어졌는가? 왜 정당은 불신의 대상이 되었고, 정치의 중심에서 사라졌는가? 한국 정당들은 지역패권과 이념으로 포장된 편가르기로 쉽게 유권자들의 표를 얻는 전략을 추구해 왔다. 또 이것은 정책과 이념보다는 특정 인맥을 중심으로 한 계파 정치가 정당정치의 중심이 되게 만들었다. 이러한 정당정치를 만드는 데에는 승자독식의 선거제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리고 정당의 공천이 중요한 정치현실에서 정치인들은 공천권을 가진 힘있는 인물에게 충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정당의 비민주화로 인하여 정당은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였고, 의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당론이란 이름으로 가로막아 왔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서 새누리당은 보수혁신특별위원회를, 새정치민주연합은 정치혁신실천위원회를 구성하여 여러 개혁안들을 논의하고 있다. 오픈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 제도화, 네트워크정당론, 정당 기율보다는 의원 개인 자율성을 높이는 방안 등 다양한 정당 개혁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한 와중에 개헌론이 또다른 방식으로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항상 그랬듯이 선거를 앞두고 정당 개혁, 선거제도 개혁, 헌법 개정 논의가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풍경에 이제는 기대감보다는 여론 호도를 위한 전략으로 비쳐져 씁쓸한 느낌마저 든다.

2004년 정당법과 선거법을 크게 고친 지 10여년이 흘렀다. 10여년 동안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러 측면에서 문제가 제기돼 왔고, 개선 방안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들도 있었다. 문제는 실천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공권력과 정치에 대한 신뢰는 더욱 무너져 있는 상황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내년까지는 선거가 없다. 실질적인 정치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른바 골든타임이다.

개헌 논의는 정당· 선거제도 개혁 이후로 늦춰야

여야 합의로 만들어지는 권위 있는 외부전문기구가 다양한 여론을 수렴해 최종안을 결정하고, 여야 정당이 그 결정을 군말 없이 법제화한다는 방법에 동의한다면 의외로 근본적이고 좋은 정치 개혁이 실현될 수 있다. 그것이 어렵다면 현재 여야 정당들이 합의할 수 있는 개혁안이 나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양당의 혁신위에서 마련된 안을 여야 합의안으로 만들 수 있는 여야 지도부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개헌에 대한 논의도 정당 개혁과 선거제도 개혁 이후로 늦추는 것이 좋다. 개헌론이 제기되면 정당 개혁, 선거법 개정이 뒤로 밀릴 수 있다는 의구심이 든다.

정치 신뢰를 회복하고, 정당이 정치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정당의 민주화, 유권자 속의 정당, 선거제도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먼저 현행 공천 제도는 계파들의 공천 독과점, 밀실 공천 등으로 의원들의 줄세우기에 악용돼 왔다. 어떤 형식이든 공천권을 당원과 유권자에게 돌려주는 상향식 공천 제도가 법제화되어야 한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오픈프라이머리 제도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비례대표 명부 작성도 상향식으로 제도화되어야 한다. 여러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현행 공천 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현재의 정당정치는 한걸음도 전진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아가 유권자 속에 뿌리내리는 정당을 만들기 위한 개혁이 필요하다. 한국 정당들은 계파 정치에 포획되어 계파 간 이익 담함의 공간이 되어 버렸다. 당원과 유권자가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형식의 소통 공간으로 정당이 거듭나야 할 것이다. 과거 ‘지구당’과 같은 지역뿌리 조직이 부활되어야 하며, 그 운영도 국회의원이나 지구당위원장의 전횡에 벗어나서 당원들의 자율적 조직이 되도록 개선이 필요하다. 그래서 부활되는 지구당은 지역사회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 내 민의를 수렴하기 위한 선도적인 자생 조직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선거가 없는 내년이 정치 개혁 골든타임

정당정치가 올바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승자독식 선거 제도의 개혁이 병행되어야 한다. 선거제도 개혁 없이 지역패권적 정당체제를 극복하기는 매우 어렵다. 독일식 선거제도로의 개선이든 비례대표 비중의 확대든, 다양한 사회 균열을 반영시킬 수 있는 선거 제도로의 개선이 필요하다. 선거 제도 개혁은 의원들의 기득권 구조로 인하여 성취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외부위원회에 맡기든, 차차기 시행 합의로 급한 불을 끄든, 정치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고 시급한 과제이다.

국정감사가 끝나고 예산안 처리가 완료되면 정치 개혁을 논의할 좋은 기회를 맞게 된다. 선거가 없는 내년 상반기 중에 중요하고 시급한 정치 개혁을 처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논의는 많이 되어 있으니, 여야가 합의하면 된다. 여야 간 합의가 어렵다면 시민사회, 학계, 언론계 등의 중재를 받아 처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거대 정당들은 정치 불신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자성해야 한다. 또 해결해야 할 책임을 방기해서는 안된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여야 정치인뿐 아니라 시민사회, 언론, 학계의 관심과 협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김용복 교수 프로필

서울대 정치학과- 서울대 정치학박사-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현)- 한국지방정치학회장- 한국정치연구회장- 한국정당학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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