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관료 출신으로 지지율 고공행진은 고건과 닮은꼴
현행 정치체제서는 대선 출마 현실적으로 어려워
개헌땐 유엔총장 후 대통령된 '발트하임' 구상 가능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김광덕 뉴스본부장 칼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과연 2017년 대선에 출사표를 던질 것인가?" "반 총장이 출마한다면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20일 아침에 지인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최근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한길리서치가 지난 17일부터 18일까지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구간에 ±3.1% 포인트)에서 반 총장이 기존의 선두권 3인방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39.7%의 지지율로 1위에 올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13.5%에 그쳐 2위였다. 1, 2위 간 격차는 무려 26.2%포인트였다. 이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9.3%)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4.9%) 순이었다.

쿠르트 발트하임은 1972년부터 81년까지 10년 동안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뒤 1986년 고국인 오스트리아에서 대통령에 출마해 당선됐다. 출처=유엔 공식홈페이지
반 총장의 압도적 1위에 대해 '안철수 현상'에 빗대어 '반기문 현상'이라고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국내의 여야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반 총장에 대한 높은 기대로 표출된 것이란 설명이다.

보름 전 지인들과 점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도 반 총장의 대선 출마 가능성이 화제에 오른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는 선거 전망에 대한 책을 썼던 언론계 선배와 여러 차례의 선거 때 참모로 일했던 정치권 인사도 있었다. 토론 끝에 내린 잠정 결론을 미리 말하면 두 마디로 요약된다. 첫째는 현재와 같은 정치 구도와 1987년 헌법 체제에서는 반 총장이 현실적으로 출마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개헌 가능성은 적지만 만일 개헌이 이뤄진다면 반 총장의 대선 출마 길이 열릴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정치체제에서 반 총장이 출마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반 총장 자신의 주체적 권력의지가 약한데다 객관적 여건이 출마의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반 총장이 대권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을 들은 적이 없다. 반 총장은 아직까지 공개 석상에서는 대권 도전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사적인 자리에서도 대권욕을 은근히 내비친 적도 거의 없는 것 같다.

고건 전 총리와 닮은꼴… 관료 출신, 지지율 고공행진, 합리적 성품

반 총장은 고건 전 총리와 닮은꼴이라고 할 수 있다. 고위 관료 출신인데다 지지율 고공행진을 하는 점에서 두 사람은 매우 유사하다. 어느 정파에 기울어져 있지 않고, 합리적이고 부드러운 성품을 가졌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반 총장은 해외 언론으로부터 ‘미끄러운 뱀장어’(slippery eel)란 소리를 들을 정도이다. 본래 언론의 까다로운 질문을 잘 피해간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지만 모가 나지 않은 성품을 보여주기도 한다.

고 전 총리는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으로 63일 간 대통령권한대행을 안정적으로 수행한 뒤 지지율이 더욱 상승해 2006년 상반기까지 계속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지켰었다. 고 전 총리는 지지율 선두를 기록할 당시 사적인 자리에서는 차기 국정운영에 대한 포부를 은근히 표출했었다. 그런 고 전 총리도 대선의 해인 2007년 초에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따라서 현재 대권 의지를 드러내지 않고 있는 반 총장이 대선에 나서는 것은 매우 어렵다.

권력의지, 환경 고려하면 현행 정치체제에서 출마 어려워

객관적 상황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반 총장 본인의 의사가 분명하지 않다면 영입에 나서는 지도자나 세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당청 분리로 인해 대통령의 제왕적 파워가 많이 줄었으므로 물러나는 대통령이 '미래 권력'인 대통령후보를 내세우기 쉽지 않다. 또 여당과 야당 내부에도 기존 대선주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반 총장을 꽃가마에 태워 영입하려고 굳이 나서는 세력이 형성되기 어렵다. 과거 야당 일부 의원들이 정운찬 전 총리나 안철수 의원 등을 대선후보로 영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불발됐다.

또 대선에 나서려면 핵심 참모를 비롯한 조직과 정치자금, 정책 대안 등이 있어야 하는데, 반 총장은 이점에서도 매우 취약하다. 반 총장은 2016년 12월에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는데, 1년 사이에 대선 캠프를 차리고 준비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반 총장은 고건 전 총리의 길을 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어느 시점까지 지지율 1위를 기록하다가 다른 주자에 선두를 내주고 퇴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제2의 고건’이 될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생물이다. 단정은 금물이다. 게다가 정치적 역동성이 강하게 표출되는 대선에서는 더욱 그렇다. 상당수 정치 전문가들은 “개헌이 이뤄진다면 반기문 카드는 여야 모두에게 매력적인 카드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이들도 개헌은 쉽지 않다고 한 자락을 깔아놓는다. 여야 의원들 다수가 개헌을 지지하는 19대 국회에서는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개헌 논쟁이 이뤄지겠지만 실제 개헌까지 도달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아직도 우세하다.

개헌된다면 여야 양측에서 '반기문' 구애에 나설 가능성

그러나 개헌이 이뤄져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분점하는 이원집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나 4년 중임 정·부통령제가 도입된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이원집정부제 개헌으로 대통령이 외교안보 등의 외치, 총리가 내치를 담당한다면 반 총장과 여야의 유력 대선주자가 각각 대통령 후보-총리 후보로 역할을 분담할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 후보와 총리 후보가 서로의 취약점을 보완하면서 합종연횡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또 미국식의 4년 중임 정·부통령제 개헌이 이뤄지더라도 반 총장과 여야의 유력 대선주자가 러닝메이트로 짝을 지어 출마하는 방법도 있다. 결국 개헌이 된다면 여야 양측에서 반 총장에게 '러브콜'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최근 반 총장의 출마 가능성과 관련돼 주목되는 것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등 여야 인사들이 내각제에 가까운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개헌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점에 주목하면서 "반 총장 카드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 거쳐 대통령된 발트하임 사례에 주목

특히 오스트리아에서는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쿠르트 발트하임이 국가원수 역할을 하는 대통령에 당선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발트하임은 1972년부터 81년까지 10년 동안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뒤 1986년 고국인 오스트리아에서 대통령에 출마해 당선됐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반기문 총장의 대선 출마는 쉽지 않다”면서도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 제2의 발트하임을 구상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개헌이 된 뒤 반 총장이 출마 의사를 가질 경우에는 여야 어느 쪽과도 손잡을 가능성이 있다. 반 총장은 본래 합리적 보수 성향이라는 점에서는 새누리당에 가깝지만, 노무현정부에서 외교장관을 지내고 유엔 사무총장에 처음 당선됐기 때문에 친노세력과도 인연을 갖고 있다.

반 총장은 과연 고건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발트하임의 길을 택할 것인가? 내년 초 이후 국회에서 개헌 공론화 작업이 진전되는 과정을 지켜보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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