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기획-통일시대 준비하자 ⑧]
탈북민의 성공적 정착이 통일과정에서 필수
탈북민 지원, '자선'이 아닌 '자활'이어야
물고기 나눠주기 보다 '잡는 법' 가르쳐야

[정옥임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칼럼] 북한이탈주민! 이들이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 및 동남아, 몽골 등 제3국을 거쳐 대한민국에 정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선(死線)을 넘었는가. 필설로 형언할 수 없는 상처와 인권 유린을 감내해야 했을지 상상만 해도 먹먹하다. 구구절절 사연을 품은 2만 7,000명의 탈북민들이야 말로 '통일대박'의 중심에 서 있다.

이들은 북한 장마당의 종잣돈 제공자요, 북한 인민들의 동토(凍土)밖 소식통이다. 심지어는 남북 간에 카톡 사진도 오간다. 단적으로 북한이탈주민들이 대한민국 땅에서 어떻게 정착하고 있는지 2,400만 북한 주민들이 주시하고 있는데, 그 자체만으로 이들이 북한 변화에 기여하는 몫은 적지 않다.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탈북민들이 통일 과정에서 일련의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북한이탈주민들의 성공적 정착 즉 ‘착한(着韓) 성공’이 통일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하려면 이들이 스스로 강렬한 동기와 의지를 갖고 대한민국에 안착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착 지원 정책의 출발점이다.

사실 탈북민 중 70% 이상이 ‘여성이고, 20∼40대의 청·장년층이며, 함경북도 출신에, 고등중학교 정도의 학력, 그리고 무직 또는 단순 생산직 근로자들’이다. 정서적·심리적 상흔은 차치하고라도, 이들에게 현실의 삶은 너무 고단한 짐이다. 1960년대 식의 저개발, 절대빈곤의 병영사회로부터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들며 탈북한 이들에게, 21세기 첨단 무한경쟁 사회는 참으로 낯설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이념, 법치 문화에도 익숙하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기능이나 전문성 없이 눈높이를 만족시킬 일자리를 찾기란 불가능하다. 또 그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탈북민에게 단발성 시혜보다 '물고기 잡는 법' 가르쳐야

이들을 단순히 북한으로부터 온 ‘과거’에 머물게 할 것인가, 아니면 통일 대박에 기여할 먼저 온 ‘미래’로 성장시킬 것인가? 그 해답은 정부와 탈북민 양자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 있다. 무엇보다 탈북민들을 무상복지의 대상 내지 동정 상대로 몰아가는 현실부터 지양해야 한다. 김정은 스스로가 희화적으로 보여주었듯이 물고기 나눠주기 식의 단발성 시혜성 지원은 자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탈무드에서 가르치듯, 스스로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만 능력에 따라 고래도 잡는 성공한 탈북민이 등장할 수 있다. 6·25 전쟁 당시 월남(越南) 실향민들이 보여준 강인한 생존과 성공 DNA를 탈북민 스스로 발현할 수 있도록 잠재력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다수 탈북민을 위해 현실에서 적용될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전략이 나와야 한다. 예컨대 정착금 지원, 주택 배분, 취업장려금 및 고용지원금 지원, 대학 특례, 장학금 수여 등 일련의 지원 정책은 제3국의 난민 정책 또는 탈남인 (북을 탈출하여 대한민국에 정착했다가 다시 제3국으로 이주하는 탈북민) 정책과 비교할 때 매우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것으로서 인정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혜택과 지원의 수준 자체가 삶의 질이나 정책 만족도를 결정하는 변수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재단의 탈북민 예산은 약 250억원 정도다. 그런데 정부 19개 부처 및 다양한 공공기관, 민간기관 등이 탈북민 지원을 위해 연간 사용하는 재원을 모두 합치면 수천억에 달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북민들의 삶이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면, 나아가 착한(着韓) 성공의 사례가 빈약하다면 근본적인 정책 재검토와 방향 전환이 불가피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을 위한 기본적 생활권 보장에 더해, 자활 지원에 목표를 둔 탈(脫)이데올로기 정책, 몰(沒)정치적 전략이 강화되어야 한다.

통일 후 북한에 진출할 기업에 탈북청년 채용시켜야

남북하나재단이 추진하는 자립·자활 지원 사례 중 하나가 일사일통(一社一統)이다. 탈북민들의 안착과 기업의 사회적 공헌 및 북한 재건을 연동시키는 정책이다. 통일 과정의 핵심은 북한 재건이고 이는 한마디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기간 산업과 인프라의 부재는 말할 것도 없고 현대화와 전혀 동떨어진 북의 경제 사회 구조로 볼 때 우리가 과거 경험했던 일련의 집중적 ‘재건’이 불가피하다. 여기에는 전문화된 기능 인력 양성에 더해 자존심 강한 북한 주민들과 문화적으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친숙(親熟)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一社一統’은 바로 이러한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다목적 포석이다. 통일 후 북한에 진출할 가능성이 큰 기업이나 공공기관에 탈북 청년을 한 명씩 채용시켜 미래 역군을 양성하는 프로젝트다. 탈북민 입장에서는 생활 안정과 함께 통일의 허리로서 기능과 전문성을 연마할 기회를 가진다. 반면 기업과 공공기관의 입장에서는 사회적 책임 완수에 더해, 북한 지역에 진출할 고급 인력 즉 친숙의 리더십을 미리 배양하는 효과가 있다.

초기 채용은 소수자 우대(affirmative action)의 측면이 불가피하나, 교육과 훈련을 통해 기능 연마의 과정에서 실력과 성실성이 인정되면 정규직으로 안착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계약이 종료되며, 다른 탈북 청년에게 훈련 및 채용 기회가 부여된다. 성과주의와 인센티브를 적용하여 도덕적 해이를 사전에 방지하는 기제가 될 수 있다. 기능과 전문성을 고양하면 기업의 인력투자 효과를 배가할 수 있다. 주체사상으로 개성의 말살을 강요받았던 탈북 청년들에게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경쟁력, 창의성을 가르칠 계기도 된다.

"탈북민에게 자선"이 아니라 "통일꿈나무에게 자활"이 돼야

탈북민의 존재로 우리가 통일과 통합을 사전에 준비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행운이다. 다만 '공짜 점심은 없다.' 삶의 터전을 향한 탈북민 자신들의 노력에 더해, 이를 지원하는 실질적 정책 대안이 선순환 구도를 이루지 않는다면 통일대박은 공염불, 사상누각이 될 수도 있다. 탈북은 현실이고, 통일은 미래다. 진정으로 이들이 통일 징검다리가 되기를 원한다면 자활을 독려하고 응원해야 한다. 북한이탈주민 지원 정책은 “불쌍한 탈북민에게 자선을!” 베푸는 시혜성 지원이 아니라, “통일 꿈나무에게 자활을!” 고취하는 미래형 지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옥임 이사장 프로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고려대 정치외교학박사- 18대 국회의원(비례대표, 한나라당)-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위원- 한나라당 원내대변인- 남북하나재단(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이사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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