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기획- 통일시대 준비하자⑦]
최근 북한의 활발한 외교행보 배경 주목
북한, 정권교체기에 심각한 불안 겪지 않아
급변상황 대비와 함께 중장기적 남북 협력·경쟁도 고려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편집자 주= 인터넷한국일보가 발간하는 데일리한국은 창간을 기념해 국가의 핵심 어젠다인 '통일 준비'를 주제로 기획 기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최근 구성된 통일준비위원회 전문위원으로서 외교안보분과 간사로 활동하고 있는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의 글을 게재합니다.

[전재성 교수 칼럼] 최근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외교적 행보가 눈에 띄게 활발해지고 있다. 일본 납치자 문제에 성의를 보이면서 북일 관계가 서서히 개선되는 조짐이 보이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향후 평양을 방문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러시아와 다각적 경제협력을 모색하는가 하면, 최근 강석주 노동당 국제담당비서는 유럽 여러 나라를 방문했다. 과거 두 차례밖에 없었던 북한 외무상의 UN 정기 총회 방문 소식도 들린다. 동시에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 북한식 인권 외교도 추진하고 있다. 인권보고서를 발간하고 인권 문제 토론을 위해 국제사회와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언급한 것은 시사적이다.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고 장성택 처형을 목격하면서 한국과 국제사회가 북한의 안정성에 대해 반신반의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이 단기적으로 내정 불안을 겪고 근본부터 흔들릴 것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북한은 군사력을 강화하고 이를 외부에 시위하는 동시에 소위 '김정은식 외교'를 추진하고 있다. 얼마 전 북한의 노동신문은 북한이 동북아의 지정학적 요충지가 될 것이며, 이에 기반한 외교 전략을 추진한다는 논설을 실었다. 현재 동북아가 미국의 약화, 중국의 부상, 강대국 간 지정학적 경쟁으로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핵국가가 되었으므로, 향후 북한은 막대한 물리력을 바탕으로 동북아의 정세를 좌우하는 전략적 요충지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북한, 정권교체기에 심각한 불안, 퇴보 겪지 않아

한국은 이제 북한이 향후 어떠한 모습으로 변할지, 단기·중기·장기적으로 어떠한 전략을 추진할지 냉정하게 생각해야 하는 기로에 서있다. 김정은 정권 등장 직후 북한 내 급변사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한국은 급작스럽게 닥칠지 모르는 '흡수통일'에 대비해야 한다는 논의가 무성했던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흡수통일의 호기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분위기도 부상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북한 내 정권 교체기에 북한은 심각한 불안과 퇴보를 겪지는 않았다. 경제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꾸준한 행보를 한 것으로 관측되고, 핵개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도 북한 정권의 생존을 흔들 만큼 타격을 가하지 못했다. 한국 역시 정권 교체기의 북한을 변화시킬 정책 수단이 부족함을 절실하게 느낀 것이 사실이다.

올 초에 한국을 강타했던 '통일대박론'은 점차 약화되던 통일의 열망에 힘을 불어넣고, 통일 이후 통합 과정에 소요될 많은 비용을 현명하게 줄이는 노력을 가속화시켰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통일은 적극적인 대북 전략과 통일 전략 없이는 이뤄지지 않는다. 북한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물론,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정세에 대한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일본은 이미 납치자 문제를 두고 북한과 양자 교섭에 나섰고, 북한은 이를 북일 관계 개선의 실마리로 잡으려고 애쓰고 있다.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그야말로 전면적인 외교 난제에 휩싸여 있다.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실패를 용인할 수 없는 오바마 정부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북한 문제에 눈을 돌리기 어렵다. 당장 이라크, 시리아, 우크라이나, 이란 등 산적한 문제가 미국을 괴롭히고 있다. 중간 선거 이후에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외교적 치적을 위해 가장 해결 가능성이 높은 외교 이슈에 도전할 텐데, 그것이 북핵 문제가 될 확률은 지극히 낮다. 전략적 인내가 대북 정책 기조이지만, 그 인내가 얼마나 전략적일 수 있을지 회의가 일고 있다.

중국, 북한 버리고 한국에 올인하지 않아

중국은 한국의 대북 전략을 꾸준히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7월 한국 국민들은 중국의 최고 지도자인 시진핑 국가주석의 한국 방문을 환대했고, 중국 역시 한국에 대해 최대한의 성의를 보였다. 중국의 대한 정책은 향후 중국의 강대국화라는 거대한 비전 속에서 수립되고 진행되고 있다. 경제대국의 지위를 가지고 이제 군사강대국의 지위를 추구하는 일본과의 경쟁에서 한국은 중요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미국과의 협력과 경쟁이 교차되는 현실이 어떻게 변화될지 모르는 가운데 한국과의 관계 강화는 중국의 강대국화 정책, 그리고 주변국 전략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북한과 소원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크게 보면 두 개의 한국을 적절히 관리하는 정책이지, 북한을 버리고 한국에 올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북한은 대남 도발을 하고 핵군사력을 강화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시장화를 추구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재재가 강화되어 생겨난 계획경제의 무력화 현상이기도 하지만, 적극적으로 시장화를 수용하면서 정치적 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정책이기도 하다. 핵을 가진 북한이 외부의 경제 지원을 얻어 경제발전의 계기를 확고히 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중장기 생존을 도모하는데 실패할 것으로 속단할 수 없다. 향후 북한이 지속적으로 한국과 경쟁을 벌이게 된다면 한국은 어떠한 전략을 가지고 있는가? 더구나 빠른 속도로 핵군사력을 강화하면서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를 활용하는데 기민함을 보인다면?

대북전략 우회하면서 통일 꿈꾸는 것은 요행

2010년대의 후반부를 준비하면서 한국이 생각해야 할 내용을 정리해보자. 첫째, 북한이 고민하고 있을 중장기 전략의 실체를 파악해야 한다. 최근 북한의 행보를 보면 다양한 이슈에서 중장기 국가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내부의 정치안정과 경제개선뿐 아니라 급변하는 국제관계를 활용하려는 노력들이다. 북한의 급변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 항상 진실인 만큼 중장기에 펼쳐질 남북 간의 경쟁과 협력의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문제는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의 전략 스타일이 아직 눈에 익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뜸을 들이는 것은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불신도 있지만 패턴이 읽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보와 분석을 총동원하여 변화하는 북한을 정확히 읽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통일의 염원이 깊어질수록 정교한 대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대북 전략을 우회하면서 통일을 꿈꾸는 것은 요행에 기대는 것과 다름없다. 진보 정권 10년, 보수 정권 7년의 경험을 총동원하여 비핵화와 남북 교류 협력, 동질성 강화와 통일 기반 확충에 이르는 다양한 방법론을 모색해야 한다. 철저한 안보 태세를 유지하되 공세적이라고 오해받을 소지를 줄이고, 상호 간에 신뢰구축을 위해 소통하면서, 핵 없는 북한이 한민족 전체에 유익하다는 사실을 설득해야 한다. 동시에 북한의 개혁·개방의 결단이 중장기적인 북한의 발전, 더 나아가 통일에 유익하다는 사실도 전해야 한다. 한국의 대북 전략은 정권별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지만, 시기 변화가 5년 단위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변화하는 환경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셋째, 대북 전략과 외교 전략의 조화를 모색해야 한다. 향후 한국의 운명은 남북관계뿐 아니라 미중관계 및 중일관계와 같은 강대국 세력정치의 향방에 따라 결정된다. 북한 문제를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북한 일변도 정책으로 외교정책에 무리를 주어서는 안된다. 북한 문제를 풀면서 한국의 국력을 강화하고, 강대국 세력정치에서 입지를 확보하는 북한 문제 활용론으로 발상의 전환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전재성 교수 프로필

서울대 외교학과, 노스웨스턴대 정치학박사- 2012핵안보정상회의 자문위원-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현), 통일준비위원회 전문위원(외교안보분과 간사,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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