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잔도(棧道)는 없다. 사즉생(死卽生)이다."

난파선을 구하는 방법은 우선 국회로 돌아가는 것

10년 세도세력 재부상에는 비겁한 온건중도세력도 책임

대안야당 노선으로 건강한 보수와 생산적 경쟁해야

김영환 의원
[김영환 의원 칼럼] 야당은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한다. 당의 비상대책위원장 임명을 둘러싸고 당이 표류하고 있다. 사공이 많은 배가 산으로 간다. 점입가경이다. 왜 이토록 표류하는 난파선에 이리도 상왕이 많은가? 아무 중심을 잡지 못하는 중진은 왜 이리 많은가. 계파는 하도 많아 다 셀 수가 없다. 이제 분명한 것은 난파선에 오를 선장은 없다는 점이다. 집권은 이제 가물가물하다. 당이 분해될 위기다.

사공이 너무 많아...만년 야당, 야당 분해 위기

왜 이리 되었는가! 모두가 선당후사(先黨後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욕심이 사망을 부른다. 원내대표가 세월호에 대한 두 번의 여야 합의를 유가족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성급하게 발표한 것도 애시당초 무리인 비대위와 원내대표의 겸직을 유지한 것도 다 과욕이었다. 무엇인가를 조급하게 이루려고 하는 조급증이 당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위의 모든 행위에 앞서 정파적 이해가 있다. 총선 공천을 앞두고 경험한 공천학살 트리우마를 기억하는 의원들이 요리저리 정파의 파도타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 사이 당 지지율은 하락하고 당은 표류하고 나라의 운명은 가물가물해졌다. 우리 앞에 나라도 당도 국회도 시계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국민들의 생활이 극도로 어려워지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대통령과 여당이 국정을 내팽개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야당이 국회를 박차고 거리로 나섰다.

우선 야당이 국회로, 민생으로 돌아가야

국민의 눈으로 보면 누가 야당 대표가 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당장 이 무책임하고 무능한 태도를 버리고 국민의 눈으로 보면 보인다. 제발, 우선 먼저 할 일은 야당이 국회로 민생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우리가 국회를 떠나 거리에서 방황하는 사이에 국정원 댓글사건이 면죄부를 받았다. 국정원법 위반이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니 도대체 납득하기 어렵다. 모순된 판결이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를 거리로 내몰고 노숙으로 수많은 밤을 지새운 사건이 아니던가! 그 사이에 '서민 증세'가 시작되고 국정 혼선과 난맥이 줄을 잇고 있다. 힘 없는 국민들이 누구에게 희망을 걸고 살아간단 말인가? 국정은 방기되고 국회는 직무를 유기했다.

지금 당장 이 난파의 배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국회를 정상화시키는 일이다. 제발 장외투쟁만이 살 길이라고 믿는 의원들이 국회에서 일을 하고 싶은 의원들의 권리를 막아서는 안된다. 당장 국회 상임위를 열고 대정부질문과 국정감사를 시작해야 한다. 이것만이 이 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추석이 지났다. 며칠만 있으면 아시안게임이 열린다. 정치 부재(不在)다. 정치 실종(失踪)이다. 단언하자면 국민이 정치를 버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미 민심을 떠나 국회의원의 자격을 잃었다. 무능하고 오만하기는 대통령과 국회가 한통속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는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해왔다. 이 나라 정치인들은 '민심 난독증'에 빠진 지 이미 오래 되었다.

더 한심하고 기가 막힌 것은 만년 야당의 신세로 전락할 위기에서도 '안빈(安貧) 야당'(?)을 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길거리에 나가 투쟁의 깃발 아래 숨어 위기를 망각하는 이 구태의연한 장외정치에 박수를 보낼 국민이 또 있을까?

대중노선에서 이탈한 10년 세도세력 재부상

위기의 본질은 '대중노선에서 이탈한 정치'를 해 온 지난 10년 세도세력들이 과오에 대한 반성 없이 다시 부상하는 데에 있다. 야당의 비극이다. 국민의 눈으로 보면 이들을 대치할 세력도 뚜렷하지 않다. 어떤 이들은 패배주의에 젖어 ‘탈당이니 분당’이니 하는 말을 쉽게 꺼내 들고 있다. 이 또한 성급하고 비겁하다.

이 잘못된 노선과의 결별이 가능한가! 나는 가능하다고 본다. 이 잘못된 노선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이미 내려졌다. 이 노선으로는 결코 승리하지 못한다. 이 '경로의존성 정치'에 국민은 물론 당원들이 신물이 나 있다.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조직화된 소수의 무자비한 비판과 정체불명의 댓글에 견뎌야 한다. '모발심'(모바일心)의 강을 건너야 한다. 국민들은 지난 몇 년 동안 건강한 야당 든든한 야당이 없이는 정치가 제대로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집권하는 야당을 기다리는 국민과 함께 가야 한다. 우리에게 잔도(棧道)는 없다. 사즉생(死卽生)이다.

야당은 상투적인 반성과 당의 쇄신을 입으로만 반복하고 있다. 염치를 버리고 정파적 이해에 따라 기득권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길게 보아 지난 10년은 동일한 패배의 방정식을 풀지 못했다. 그러나 해법은 있다. 국민은 무수히 그 해법을 제시했고 우리는 그때마다 귀를 닫았고 국민이 한숨짓고 절망했다.

이 패배의 사슬을 어떻게 끊을 것인가? 우선 지난 선거를 뒤돌아 보고에 책임이 있는 자들이 먼저 반성해야 한다. 이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결론이 뻔한 해법으로 다시 적당히 수험장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예선 탈락의 수모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야망이 집요할수록 패배의 결과는 잔인하다.

지난해 우리는 국정원 대선 개입과 NLL대화록 사건으로 치열하게 싸웠다. 천막과 노숙투쟁, 장외투쟁으로 힘겨운 싸움을 했으나 돌아온 것은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과 반 토막의 지지율뿐이었다. 지금 또다시 세월호특별법으로 장외투쟁에 나섰으나 다수 국민의 반대에 부딪혀 투쟁동력을 상실한 채 후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국민 의사와 배치되는 투쟁 노선을 고집한 결과다. 마치 물살을 거스르며 전투를 하고 있는 형상이다.

비겁한 온건중도세력의 침묵에도 책임

그런데 이들의 부상을 묵인 방조하는 것은 계파정치에 침묵하는 나를 포함한 비겁한 당내 온건 중도세력에게도 있다. ‘내 탓이요, 우리 탓이다.’ 우리들의 침묵이 이런 잘못된 노선이 당에 퍼지고 반복되는 과오를 범하게 만들었다. 언제나 외야에 앉아 있을 뿐 우리가 마운드에 올라 패색이 가득 찬 게임을 뒤집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늘 당 리더의 부재는 우리 스스로가 누군가의 팔로워가 되지 않은 데에 있다. 훌륭한 팔로워가 없이 훌륭한 지도자란 없다. 우리는 올바른 노선에 좋은 팔로워가 되어야 한다.

지난날에 대한 성찰 위에서 새로운 방향 설정, 대안야당의 노선 정립이 필요하다. 이중적 의미에서 대안야당이다. 첫째, 국민들로부터 현정권에 대한 대안으로 인정받아 정권을 되찾아올 수 있는 수권정당으로서의 대안야당이다. 둘째,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노선과 정체성을 반듯이한 대안야당이다.

시대가 변했다. 변해도 크게 변했다. 우리는 지금 시대가 변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잇다. 이 변화의 속도에 여당에 뒤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연전연패(連戰連敗)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제대로 한 일이 없는 여당과 대통령에게 승리를 갖다 바치고 있다. 변화된 시대에 맞는 새로운 노선과 전략이 필요하다.

20년도 더 된 민주 대 반민주 시대의 투쟁 노선과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때의 독재정권은 야당에게 타도 대상이었으나, 민주화 이후 시대에는 감시와 견제, 경쟁의 대상이다. 과거에는 진영논리와 투쟁주의가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상생의 파트너십을 인정하면서 투쟁보다는 대화와 타협 방식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난날 민주화라는 거대한 정치 담론이 필요했다면, 양극화 해소가 시대적 과제인 지금은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중심으로 지지 획득 경쟁을 벌이는 정책 대결이 중요하다.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청년실업과 노인빈곤이 현실화되어 세계 자살율 1위의 나라에서 먹고사는 문제는 절규를 넘어 생존 조건이 되었다. 산다는 것이 이렇게 모진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집단은 정치권밖에 없다 그 점에서 야당은 여당보다 한수 위다. 우리의 정치행위는 먹고사는 문제 위에 번듯이 서 있어야 한다.

민주화, 정보화가 진전된 지금 정치권은 국민의 반 발짝 앞에서 국민과 함께 가는 대중노선을 철저하게 견지해야 한다. 실시간 쌍방향의사소통 방식이 이뤄지고 4,000만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을 가르치려는 자세는 지극히 위험하고 불순하기 조차하다.

대안야당 되기 위해 '중도진보주의' 노선으로 가야

국민 삶의 향상이라는 목표를 향해,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되 중도·합리적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국민 신뢰를 얻어나가는 정치노선이 필요하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중도진보주의 노선이다. 이 노선에 입각하여 정치투쟁을 자제하고 민생으로 전환해야 한다. 정치적 갈등과 정쟁거리는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고 최소화해야 한다. 안보 문제에선 남북 대치 상황과 국민 정서를 고려하여 중도보수적 노선을 견지할 수도 있다. 이 점에서 야당은 이중 지향성을 가져야 한다.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전제가 있다. 모든 정치 행위는 국민의 뜻에 따르는 것을 대원칙으로 해야 한다. 국민의 상식과 눈높이에 맞춰서, 국민만 바라보고 나가야 한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야당은 진보개혁적인 시민단체와는 다른 독자적 자기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시민단체의 긍정적 역할을 인정하고 우호적 관계를 가져야 하지만 정당은 모든 행위에 대해 결과로 국민에게 책임지는 책임정당이어야 한다. 정당은 정당이고 시민단체는 시민단체다. 시민운동과 정당정치는 구분되어야 하며, 과거 관성에 젖은 ‘운동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른 진보정당들에 끌려가서도 안 된다. 타 정당들과의 정책공조나 연대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야권연대라는 미명하에 선거 때마다 진보정당들과의 연대나 단일화에 매달리는 것은 더 이상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우리의 독자성을 명확히 하되 필요한 경우 부분적인 연대공조를 하는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국민 눈높이에 맞춰서 건강한 보수와 생산적 경쟁 펼쳐야

끌려다니는 정당에는 희망이 없다. 국민은 끌려 다니는 지도자에게 정권을 맡기지 않는다. 진영의 논리와 정파적 이해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에 두 번 속을 국민은 없다. 국민이 우리를 불안해 한다면, 애국애족하는 마음을 의심한다면 우리당의 집권은 요원하다.

이상이 우리가 지향하는 새로운 방향, 새로운 노선, 대안야당의 길이다. 대안야당 노선이란 중도진보주의에 입각한 대안정부 준비 노선이다. 국민은 우리의 진보에 희망을 걸고 중도에서 안도한다. 건강한 보수세력과 생산적 경쟁을 펼쳐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우리의 힘으로 국민을 믿고 올바른 노선이 결국 승리한다는 믿음으로 나아갈 때 이뤄질 수 있다. 영화 '명량'에 나온 대사 하나를 인용한다. “두려움을 떨치고 앞으로 나아가자!” 용기는 잔도가 없는 사람들이 절망의 벼랑에서 길어 올린 희망의 두레박이다.

■김영환 의원(59) 프로필

청주고, 연세대 치과대학- 시인, 광주민주화유공자, 민주당 대변인·정책위의장·최고위원- 과학기술부 장관- 국회 지식경제위원장- 민주당 인재영입위원장- 제15·16·18·19대 국회의원(현재 4선 의원, 경기 안산 상록을, 새정치민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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