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진로 논쟁]
보수여당이 혁신 선도해야 야당 혁신도 촉발
과학적인 정책정당으로… 당재정 100억원 정책개발에 써야
규제는 관료 권력의 원천… 새누리당이 규제혁파 주도해야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
[이인제 의원 칼럼] 추석 연휴가 끝났다. 세월호 충격에 빠져 비틀대는 우리 정치가 정상 궤도에 진입하면서 정치 불신을 끝낼 수 있을 것인가. 낙관하기에는 정치에 대한 믿음이 너무 부족하고, 비관하기에는 우리의 미래가 너무 소중하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본질을 통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국가경영의 한 축은 대통령이고, 다른 한 축은 국회이다. 국회는 여야 정당 간의 타협을 통해 운영된다. 주지하는 것처럼 대통령의 권력은 민주화되었다. 더 이상 권위주의적 대통령은 없다. 그러나 국회나 정당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갈라파고스의 동물처럼 진화가 멈춰버린 것이다. 정치는 민주화되고, 시대는 농업사회와 산업사회를 거쳐 지식사회로 숨가쁘게 발전하고 있지만, 정당과 국회의 조직이나 행태는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이 후진적인 정치가 바로 정치 불신의 뿌리이다.

이 뿌리를 잘라내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처방이다. 정치인을 비난하고 정당을 비판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크게 고민할 일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 정당을 혁신하고 의회주의를 강화하는 전략을 세우고 강렬한 속도로 이를 실천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이다.

혁신은 보수세력이 선도, 가까운 역사가 증명

혁신은 대체로 보수세력이 선도한다. 가까운 역사의 경험이 이를 증명한다. 1970년대 곪아터진 '영국병'을 대대적으로 수술한 세력은 보수당이었다. 그 뒤를 이어 토니 블레어가 노동당의 낡은 좌파 노선을 혁신하고 집권의 길을 열었다. 마찬가지로 1970년대 미국의 산업공동화 위기를 혁신을 통해 돌파한 세력도 공화당이었다. 미국 공화당이 중국과 화해하고 동서냉전을 해체했다. 독일 통일도 보수 세력인 기민당이 주도했다. 냉전 해체와 통일보다 더 큰 혁신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극복하는 일대 혁신도 보수 세력인 새누리당이 선도해야 한다. 여당의 혁신은 필연적으로 야당의 혁신을 촉발한다. 정치 혁신을 통해 총체적으로 강화된 국가 리더십이 우리가 직면한 사회·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며 통일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새누리당은 무엇을 어떻게 혁신해야 할 것인가. 하나는 당의 혁신이고, 다른 하나는 국정의 혁신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 개조가 최우선 명제로 떠올랐다. 당과 국정의 혁신이 곧 국가 개조일 것이다.

동원 선거 막기 위해 전당원 우편투표 방식 도입해야

당의 후진성을 허물고 선진정당으로 재창조하는 것이 당 혁신의 목표이다. 우선 당내 민주주의를 관철해야 한다. 어떤 권위주의 잔재도 쓸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 당원 제도, 공직 후보와 당직 선출 제도를 확 바꿔야 한다. 동원되는 당원이 아니라 주인으로 참여하는 당원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딱딱한 정당 구조로는 한계가 있다. 다원화된 계층과 직능 분야에서 살아가는 국민들의 다양한 가치와 이익을 실시간으로 대변할 수 있는 전자정당 구조로 혁신해야 한다. 그래야만 전체 국민을 고르게 대변할 수 있는 당원 구조를 갖출 수 있다. 그래야 당원과 주민이 참여하는 상향식 공천도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 영국 보수당이 당 대표 선출 과정에서 채택하고 있는 전당원 우편투표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동원을 통한 세 과시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당을 과학적인 정책정당으로 환골탈태시켜야 한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예산 편성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재정을 운용하는 것이 우리 정당의 한심한 현실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국민을 위한 정책 개발에는 거의 한 푼도 쓰지 않는다. 우리 정치를 지배하는 몸싸움, 명분 싸움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정책 개발을 못하니 정책 경쟁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이 지긋지긋한 싸움 정치를 끝내려면 여당도 야당도 정책 역량을 혁명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정부가 정책개발 주도하면 여야는 "네 탓" 싸울 수밖에

현재 새누리당의 연 평균 재정 규모는 국고보조금과 당비를 합쳐 380억원 정도이다. 이 가운데 100억 원을 정책개발비로 쓴다면 여의도연구원에 100명 정도의 연구원을 확충할 수 있다. 정당연구소는 손쉽게 대학, 민간, 공공기관 연구 역량과 협력할 수 있으므로 당면한 정책들을 만드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야당도 따라올 수밖에 없다. 정책 개발을 관료 집단인 정부가 주도하다 보니 여당은 책임을 정부에 떠넘기고 야당은 정부를 상대로 투쟁을 일삼는다. 여당과 야당이 머리를 맞대고 경쟁하며 타협해야 할 국회는 공전되기 마련이다.

대통령은 한편으로 정부의 수반이고 다른 한편으론 여당의 최고지도자이다.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당의 정강정책을 충실히 국정에 반영하고, 당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적극 뒷받침하며 그 결과에 대하여 대통령과 함께 국민에게 책임을 진다’ 새누리당 당헌 제8조에 규정된 당과 대통령의 관계다. 그러나 과거 집권여당과 대통령의 관계는 달랐다. 일심동체로 국정운영을 하지도 않았고, 운명공동체로 책임을 함께하지도 않았다. 따로 놀다가 대통령 인기가 떨어지면 당에서 내쫓기 일쑤였다. 새누리당은 당헌 규정 그대로 대통령과 일체가 되어 국정운영에 나서고 운명을 같이해야 한다.

경제 살리기 위해 새누리당이 규제 혁파 주도해야

대통령은 지금 경제 살리기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데, 이는 곧 새누리당의 절대명제이다. 경제 살리기를 위한 전략 가운데 하나가 규제 혁파다. 역대 정부가 규제 혁파를 외쳤지만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실패의 이유는 간단하다. 규제 혁파를 정부가 주도했기 때문이다. 규제는 정부 조직의 근거이자 관료 권력의 원천이다. 대통령의 표현대로 규제가 암 덩어리라면 그 암은 정부 조직 안에 존재한다. 암환자가 스스로 암을 제거할 수 없는 것처럼 정부가 규제 혁파를 주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규제 혁파는 당이 주도해야 한다. 경제가 살아야 일자리를 만들어 실업의 공포를 몰아낼 수 있고, 경제가 살아야 불경기의 그늘을 지우고 서민들이 허리를 펼 수 있을 것이다. 경제가 살아야 세금을 거둬 복지도 키울 수 있다. 낡은 규제는 쾌도난마처럼 허물고, 애매모호한 규제는 교통신호등처럼 단순명료하게 고치면 된다. 규제 시장을 이렇게 혁파하면 긍정의 힘이 경제를 이끌게 된다. 질식하던 기업가정신도 살아나고, 창조와 개척정신이 충만하게 된다. 당은 운명을 걸고 대통령을 도와 규제 혁파를 주도해야 한다.

새누리당이 이러한 혁신을 설계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전략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당 안팎의 역량을 결집하고 선진정당을 벤치마킹하면, 오히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과학정당을 건설할 수 있다. 일본 기술을 구걸해 만든 포항제철 용광로가 세계 최고의 효율을 자랑하는 것처럼, 정치혁신에 대한 원대한 비전과 목표를 세우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 늦었지만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

■ 이인제 의원(66, 충남 논산·계룡·금산)

경복고, 서울대 법대- 판사- 노동부 장관- 경기도지사- 15·17대 대선에 후보로 출마- 선진통일당 대표, 18대 대선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 다보스포럼 특사- 13·14·16·17·18·19대 국회의원(현재 6선), 새누리당 최고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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