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간 갈등 고조 시기에는 화합, 타협의 리더십 절실
고향집에서 맞아주는 엄마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리더십
모성리더십은 여성 전유물 아니다… 프란체스코 교황도 모성리더십

이연주 한국청년유권자연맹 대표운영위원장
추석 명절이 다가왔다. 이맘때면 그동안 잊고 살았던 고향과 가족을 생각하면서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설렌 마음으로 귀향길에 오른다. 힘들고 지친 일상의 고단함을 안고 찾은 고향집에서 맞아주는 엄마의 품과 손길은 세상에서 가장 큰 위로와 기쁨이 되기 때문이다. 혹은 엄마가 살아 계시지 않는다 해도 추억 속의 엄마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누이나 엄마의 손맛을 닮은 형수, 올케를 통해 그리움을 대신 채우기도 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저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 주고 거친 손마디지만 어깨를 쓸어주는 그 체온만으로도 마음의 평온을 얻기에 충분하다.

요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갈등과 좌절, 분노로 상처가 깊다. 세월호 참사, 윤일병 폭행사망 사건 등 전대미문의 사건·사고와 경기 침체, 실업 등으로 총체적인 불안 시기를 맞고 있다. 이처럼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마저 무너져 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고도 절실한 것은 무엇일까? 얼마전 프란체스코 교황의 방문은 상처 깊은 우리 마음에 큰 치유가 되었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었다. 진정성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느끼게 해 준 교황의 온화한 표정과 눈빛에 대한민국은 위로받았고, 사려 깊고 세심한 손길에 감동받았다. 바로 우리가 갈망하고 있는 지도자의 모습, 마치 엄마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는 그런 부드럽고 따뜻한 리더십을 만난 것이다.

화해와 화합의 리더십, 관용과 관대함을 지닌 리더십, 조정과 타협에 능한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이다. 이런 리더십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모성 리더십’ 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엄마 마음 리더십"이다. 감성과 직관을 중시하는 모성의 특질을 반영한 ‘모성 리더십’은 위기가 닥칠 때 침착하고 시의적절한 대안을 만들어내고 대화와 소통을 통해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갈등을 중재하며 국민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그런 리더십이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모성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결혼을 했든 안했든, 자녀를 출산했든 안했든 여성은 모두 내재된 모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성 리더십’은 여성 지도자라고 해서 반드시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모성 리더십’은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성이면서도 모성 리더십이 부족한 사람도 있고, 남성이지만 모성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도 있다. 우리가 만났던 프란체스코 교황이나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모성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여름,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치열한 축구 결승전보다 더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다. 그것은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관전을 위해 경기장에 들어서자 열화와 같은 환호성을 보내는 독일 응원단의 모습이었다. 메르켈 총리의 ‘엄마 리더십’이 새삼 부럽게 느껴졌다. 독일뿐만 아니라 만성화된 경제 위기 속에서도 정치적 안정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내고 있는 나라들을 보면 바로 ‘엄마 리더십’이 중심이 되고 있다. 지지율이 90% 가까이 올랐던 핀란드의 타르야 할로넨 전 대통령, 극심한 빈부 격차와 저출산을 극적으로 해소해 나가고 있는 칠레의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이 대표적 인물들이다.

우리나라도 외형적으로는 정치의 중심에 여성의 힘이 자리하고 있는 듯 보인다. 여성 대통령과 제1야당의 여성 당대표를 두고 있고 지난 7.30 재보선에서도 최대 관심 지역인 서울과 광주 두 곳에서 두 명의 여성 의원이 당선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일 공개한 6·4 지방선거의 투표율 분석 자료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의 투표율은 각각 57.2%로 동일하지만 여성 선거인수(50.6%, 217만 189명)가 남성(49.4%, 212만 2,699명)에 비해 많으니 실질적으로는 여성의 표심이 남성보다 조금 더 반영된 셈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여성의 30대 전반 이하 투표율이 지난 지방선거에 비해 적게는 3.1%포인트, 많게는 9.5%포인트 상승했다는 점이다. 이는 같은 연령대 남성의 상승 폭(0.4~ 7.4%포인트)보다도 높아 청년 여성들의 투표 참여율이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안타깝게 희생된 안산 단원고 학생들과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둔 40대, 50대 ‘앵그리맘’들은 정부와 여당에 큰 반감을 가졌고 이러한 표심은 17개 시·도 중 무려 13곳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을 당선시키는 ‘이변’을 낳았다.

선거 이후에도 ‘앵그리맘’의 분노는 멈추지 않고 있다. 오히려 윤일병 폭행사망 사건이 발생하면서 한국 사회의 안전불감증, 정부와 정치권의 무능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어 거리로 나서겠다는 앵그리맘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광화문 집회와 촛불 집회를 이끄는 ‘주력 부대’로서 적극적인 정치 참여 양상을 보이고 있다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지방선거에서 청년여성의 투표 참여율 증가와 앵그리맘이 그동안 소극적이었던 여성의 정치적 각성을 의미하는 것일까? 제도권이 아닌 시민사회 영역, 생활정치 영역에서 분명히 여성들의 정치 참여 양상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 이유로는 ‘개발’이나 ‘성장’과 같은 거대담론이 주를 이루었던 과거에 비해 ‘행복’과 ‘안전’, ‘사회적 약자 배려’, ‘소통’, ‘복지와 분배’ 등과 같은 가치들이 개개인의 행복과 삶의 질을 위해 중요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가치들은 여성들에게 보다 공감되는 이슈로 다가오고 있으므로 점점 여성들의 참여 의지가 커질 수밖에 없다.

여성 대통령, 여성 당대표, 여성 국회의원 수가 늘어나고 ,여성 유권자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어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남성적이고 권위적인 리더십만 존재하는 것 같다. 꽉 막힌 세월호 정국이나 민생 문제를 풀어갈 ‘모성 리더십’이 아직 보이지 않으니 갑갑한 심정이다. 추석 명절을 보내고 돌아올 때 자식들의 손에는 엄마가 싸주신 따뜻한 사랑의 선물들이 한아름 들려 있을 것이고, 그들의 마음은 행복과 평온함으로 충만해져 있을 것이다. 이번 추석을 보내고 나면 우리 지도자들도 '엄마의 마음같은 리더십'을 발휘하여 하루속히 경색된 정국과 국가 문제를 풀어나가 국민들에게 일상의 행복을 선물해 주었으면 한다.

앞으로는 날이 갈수록 ‘모성 리더십’을 요구하는 유권자의 목소리는 커질 것이다. 그것은 바로 시대정신이면서 국민들이 그토록 열망하는 새정치이기 때문이다. 올해의 최대 유행어가 ‘의리’이지만 무조건 ‘의리’만 외치면 유권자가 표를 주는 시대는 지났다. 진영 간 대립과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는 시대에는 화합, 관용, 타협의 리더십이 더욱 필요하다. 유권자들은 엄마 품처럼 편안하게 기댈 수 있는 지도자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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