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인사이드] 새정치연합이 사는 길 - 정체성을 강화해야

이호윤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사무총장
※편집자 주=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장은 '진보는 우로 가면 승리한다'는 주제로 데일리한국에 쓴 칼럼을 통해 새정치민주연합이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방안으로 '중도 선점론'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486세대인 이호윤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사무총장은 최 소장의 주장을 반박하는 글을 본보에 보내 왔다.

7.30 재보선에서 예상 외로 야권이 참패했다. 이로써 새정치민주연합은 2012년 4월 총선 이래 그해 12월 대선과 올해 6월 지방선거 등 4개의 선거에서 연전연패했다(세월호 변수에서 치러진 지방선거는 사실상 야당의 패배로 볼 수 있다.)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4개의 선거 모두 애당초 야권 승리가 예상된 선거였다는 점이다.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선에서 야권은 진보적인 의제를 내세워 승리함으로써 2012년 총선과 대선 등 중요한 선거에서 승기를 잡은 듯했다. 그러나 결과는 연속 패배였다. 특히 2014년 지방선거와 재보선에서는 세월호 변수로 또 한번 승기를 잡았지만 결국 고배를 마셨다.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던 네 차례의 중요한 선거에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것이다. 도대체 야당은 무엇을 잘못했길래 유권자로부터 철저히 응징을 당한 것일까?

야당으로선 매우 심각한 국면이다. 더욱 큰 문제는 아직까지 새정치연합이 왜 졌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란 점이다. 더욱이 당내에서 '진보 강화'와 '중도 선점' 등을 놓고 논쟁이 점화하면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비상대책위원장의 세월호특별법 합의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당 안팎에서 새정치연합 해체론도 분출하고 있다. 정녕 새정치연합은 구제불능인가? 야권이 이대로 계속 간다면 한국 정치는 일본처럼 여당 1당 우위의 정당체제로 가지 말라는 법도 없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진정성을 입증해야 한다

새정치연합으로선 당연히 절체정명의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켜야 한다. 우선 2001년 후반 당시 새천년민주당이 어떻게 심각한 위기를 극복하고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는지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당시 민주당 등 여권은 연이어 터진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 문제로 심각한 레임덕을 앓고 있었다.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재보선에서 연거푸 패배해 2002년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대패가 예견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궁하면 통하는 것일까. 이 위기는 곧바로 기회로 바뀌었다. 당내 정풍운동이 불어닥쳤고 뼈아픈 반성 노력은 초유의 대선후보 국민참여경선제라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노무현 바람과 결합하면서 불가능하리라고 여겨졌던 정권재창출을 이뤄냈다.

당시 교훈의 핵심은 철저한 기득권 혁파다. 당시 매서운 정풍운동의 여파로 권력 핵심이 사퇴했으며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국민참여경선제를 도입해서 당내 기득권을 내려놓은 것이다. 지금 새정치연합은 어떠한가? 철저하게 자기 기득권을 내려놓으려고 하고 있는가? 기득권 내려놓기가 형식적이어도 안되고 더더욱 일회성 이벤트이어서는 안된다.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나아가 이 진정성을 입증해야 한다.

새정치연합은 뼈를 깍는 자성을 입으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치열한 노력을 솔직히 보여야 한다, 그래야 돌아선 민심이 최소한 관심이라도 보인다. 정치 노선, 정책 노선도 매우 중요하다. 필요하면 우클릭도 해야 하고 좌클릭도 해야 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을 튼튼히 하는 것이고 이것 없이는 아무리 탁월한 전략과 정책도 사상누각이다. 기본적으로 수학 공부를 할 생각이 없는 학생에게 함수를 가르친들 미적분을 가르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7.30 패배 직후 새정치연합에선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가 사퇴하고 손학규 상임고문이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 정도로는 매우 부족하다, 지지자들이 후련함을 느낄 정도로 책임있는 사퇴와 정계 은퇴가 이어져야 한다.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당을 해체시킬 정도로 철저한 기득권 내려놓기를 통해 낡은 체제와 문화를 혁파해야 한다. 한마디로 혁명에 가까운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고질적인 계파 정치의 폐해도 일소될 수 있다. 조만간 예정된 새정치연합 비대위 구성과 역할 규정은 주목할 만한 1차 시험대가 될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정체성을 강화해야 산다

지금까지 한국 정치사에서 야당이 어려울 때마다 당의 진로를 놓고 중요한 노선 투쟁이 있었다. 예전에 군사독재 시절에는 야당성 논쟁이 있었다. 이른바 선명성과 중도성 논쟁이다. 민주화가 어느정도 진전된 이후에는 좌클릭,우클릭 등 정책 노선 논쟁이 주를 이루고 있다.

군사독재정권 때의 야당성 논쟁은 소위 사쿠라 논쟁(사이비 논쟁)으로 비화되면서 독재정권과 선명하게 투쟁하는 측이 승리했다. 당시 국민들의 민주화 열기를 반영한 당연한 결과다. 유신독재 말기인 1979년 5월에는 정권 측과 타협적이었던 중도통합론의 이철승체제에 맞선 김영삼의 선명 노선이 승리했다. 1985년 2월 전두환 5공체제 한복판에서 치러진 12대 총선에서는 선명 노선의 신민당이 정권에 협조적이었던 민한당 등을 누르고 돌풍을 일으켰다. 민주화 이후에는 2002년 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상대적으로 선명했던 노무현 후보가 이인제 후보를 누르고 대선 후보가 되었다.

현재 새정치연합 내부에선 당의 미래를 놓고 정책적으로 진보 강화론(좌클릭)과 중도 선점론(우클릭)이 대립하고 있다. 매우 중요한 전략 논쟁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정답은 없다. 좌클릭이든 우클릭이든 전략적 시기 선택의 문제이지, 한쪽이 옳고 한쪽이 그르다던가 한쪽으로 해야 승리한다는 답은 없다. 그 시기 선택은 객관적 상황과 주체적 역량에 의해 결정된다. 2002년 노무현 후보의 경우 진보성 강화로 당내 경선에서 이인제 후보를 누를 수 있었고, 본선에선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를 통한 중도 선점으로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이길 수 있었다.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60년을 집권해 오면서 내부적으로 심각한 좌우의 도전을 시의적절한 전략적 선택을 통해 극복해 왔다. 심각한 내외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정확한 좌향좌 또는 우향우 등을 통해 위기를 넘어섬으로써 스웨덴식 사민주의 복지국가의 확고한 기틀을 잡을 수 있었다.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을 튼튼히 하고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즉 자기 정체성을 강화해야 한다. 이 기본 바탕 위에서 외연 확장이 이뤄져야 승리할 수 있다. 예전에 DJ는 YS와의 야권 지도자 경쟁에서 상대적 진보성으로 자기 정체성을 강조함으로써 야권 지지층에 튼튼히 뿌리내릴 수 있었다. DJ는 이러한 기본 바탕과 자신감 위에서 궁극적으로 DJP연합이라는 외연 확장을 통해 집권할 수 있었다. 반면 ‘좌측 깜박이 켜고 우회전’ 등 기본 지지층을 결집하지 않은 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무리하게 추진한 노무현 정부 말기에서는 지지층 와해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고 이는 대선 참패로 이어졌다.

또 계속해서 투표율이 떨어지고 이 투표율 저하가 구조적으로 고착화하고 있는 현재 한국 정치 상황에서는 누가 더 고정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내는가가 승리의 관건이 된다. 확고한 지지층을 많이 확보할수록 부동층도 많이 흡수한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진보적 의제였던 경제민주화와 복지론을 선점했던 것도 이러한 기본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다.

현재 새정치연합의 자기 정체성 강화는 야당성 회복과 진보성 확대를 의미한다. 어려운 비상 상황이기 때문이다. 중도 선점과 외연 확대는 그 다음이다. 집토끼(기존 지치층)를 먼저 결집한 뒤 산토끼(중도층과 부동층) 잡기에 나서야 한다. DJ와 노무현도 어려울 때 이러한 경로를 밟아 집권에 성공했다. 이제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결단의 주사위를 던져야 한다.

■이호윤 사무총장 프로필

서울대 정치학과- 서울대 총학생회장- 사단법인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사무총장(현)- 서울대 민주동문회 회장(현)- 서울지역 대학민주동문회 상임대표(현)

[반론 기고] 진보는 우로 가면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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