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골든타임' 놓치지 말라"
"남북 당국간 대화 통한 5·24 조치 해제 논의 등 제안해야"

전옥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모든 일에는 '골든타임'(golden time)이 있다. '황금시간대'란 말이다. 의학 용어로는 어떤 치료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 조치를 취해야 할 시간을 뜻한다.

이번 8·15 광복절 전후는 남북관계의 골든타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광복절을 남북관계 진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이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통일 대박' '드레스덴 구상' 등의 화두를 던졌지만 이명박정부 이후의 남북 대치 상황은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우리가 과감한 대북 이니셔티브(주도권)을 잡고 나가야 할 시점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3월 28일 오전(현지시간)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공대를 방문, 교수·학생 등을 대상으로 통일 프로세스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7·30 재보선 마무리로 박 대통령은 8·15 이후에 집권 2기에 돌입하게 된다. 박 대통령은 도둑처럼 찾아올지도 모르는 통일을 준비하는 한편 남북 경제협력의 새 틀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남북관계를 진전시켜야 한다. 또한 북한의 김정은 체제가 끊임없이 자행하고 있는 도발을 즉각 중지시키고 안보를 튼튼히 하기 위해서도 획기적인 남북관계 전환 노력이 시급히 요구된다.

첫째, 이번 8·15를 남북관계 전환점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김정은이가 진정성 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8·15 경축사를 통해 전향적인 대북 메시지를 발표해야 한다. 우리 메시지의 핵심 축은 물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포괄적인 남북 당국 간 회담의 복원 노력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리 측의 메시지는 우선 남북관계에서 정상적인 국가 간의 관계에 적용되는 국제관행을 고집하려는 기존의 입장에 전략적 융통성을 부여할 수 있음을 북한이 느끼도록 해야한다. 김정은 체제는 정상적인 국제관계의 틀속에서 남북 당국회담을 운영할 수 있는 성숙한 체제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전향적 성격의 남북 당국간 대화를 통해 '동시에 모든 현안에 대한 일괄적 토의를 진전시키는 남북협상 구조'를 만들어 내야 한다. 경제 협력, 문화체육 교류, 이산가족 상봉뿐 아니라 정치·군사 분야 등 모든 현안을 논의할 수 있는 남북 당국간 대화를 추진하자는 것이다. 당국간 대화에서 큰 틀의 진전이 있게 된다면 필요할 경우 분과별 실무회의를 가질 수도 있다. 다만 현안의 출발점은 이산가족과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임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기존의 '순차적 협상'방식을 지양하고 '동시적 협상' 방식을 통해 금강산 문제에 대한 협상 의지의 진정성을 북한이 인식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 아시안게임 선수단·응원단 파견 문제에 대해서도 전향적 입장을 밝히는 것도 좋은 유인책이 될 수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이 남북관계의 새로운 돌파구를 여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북측의 요구에 대해 지나치게 국제적인 룰과 관례만 따질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과거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탄력성 있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남남갈등을 예방하고 그들의 통일전선전략에 말려들지 않도록 방어심리전에 주력하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번에 북한이 우리 메시지에 화답하는 것이 곧 김정은이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경제특구 계획 등을 실효적으로 추진할 유일한 호기임을 인식시켜야 한다. 즉, 북한판 경제 살리기에 유익하다는 점을 설명해야 한다. 더 나아가 국제적 고립에서 탈피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북한 김정은체제의 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도 알려야 한다.

다음으로는 지금까지 강조된 '통일대박론' 대신 ' 통일론'이라는 용어를 씀으로써 '박근혜식 흡수통일론'이라는 북한의 불만과 우려를 제거해 줘야 한다. 과거 DJ정부가 "햇볕정책이 흡수통일을 염두에 둔 것"이란 북한의 비판을 고려해 '햇볕정책'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사례도 있다. 지금 흡수통일을 추진할 의사도 없고, 그럴 상황도 아닌데 공연히 남북갈등 요인을 우리 스스로 만들 필요는 없다. 통일대박론을 전제로 한 것처럼 오해받는 드레스덴 선언에 대해 북한이 극렬 반발하는 사정도 감안하는 것이 남북관계의 건설적 운영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5.24 대북 해제 조치 문제도 남북 당국간 회담을 통해 논의해 나가자고 밝히는 방안이 있다. 5·24 대북 조치는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 이후 발표한 것으로 남북교역 중단, 대북 신규 투자 불허, 대북 지원 사업 보류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이 문제를 풀려면 사과와 재발 방지 등 북한의 성의 있는 조치가 전제돼야 한다. 외교 채널이나 언론매체를 통한 일방적 촉구로는 아무런 실효성이 없었음이 확인되었다. 이제는 남북 쌍방이 얼굴을 마주 보고 다양한 문안을 검토하면서 직접 논의해야 한다. 북한이 도발을 일삼는 요즘과 같은 상황에서 우리의 선의적 대북 지원이나 교류를 통해 제재 조치를 사실상 완화하거나 사문화시키려는 것은 위험하다.

정치권에선 우리가 먼저 5·24 제재 조치를 완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우리 정부는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려는 듯 민간단체를 통한 남북협력기금 30억원 가량의 대북 지원이나 제2개성공단 등을 추진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슬금슬금 대북 제제 조치를 유야무야시켜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겠다는 것은 우리의 대북 지렛대를 스스로 포기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남북관계에서 아주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된다. 또 4차 핵실험마저 포기하지 않는 북한에 대한 유엔 제제 문제를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도 고민해야 한다. 통일부는 "5·24 조치 해제는 없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혀 왔지만, 이미 제재 조치는 상당히 느슨해진 게 사실이다. 납북협상 테이블에서 당당하게 북한의 상응 조치를 보다 적극적으로 유도해 나가야 한다.

남북관계의 근간 원칙이 우리의 강한 안보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대화를 통한 남북 협력 및 화해 증진과는 별개로 북한의 도발에 대해선 추호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단호함을 계속 보여주어야 한다. 김정은은 박근혜 정부 출범 초부터 도발을 통해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위장 평화 공세로 변장하면서 실제로는 도발 일변도 정책을 보이고 있다. 자칫하면 김정은은 3년 7개월 임기가 남은 현정부와의 대화를 포기하고 다음 정권과의 협상을 노리겠다고 생각하면서 도발 전술의 함정에 빠질 우려도 있다.

어렵더라도 이번 8.15를 계기로 남북관계 협상 재개의 모멘텀이 마련된다면 요동치는 동북아 문제에서 우리가 선제적으로 치고 나갈 여지가 많이 생길 수 있다. 김정은 체제가 이번에 남북 대화를 피해 가지 않도록 '8.15 황금시간대'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 전옥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1956년 충남 출생(58세) ▲대전고, 서울대 외교학과 ▲주 유엔대표부 공사 ▲국가안전보장회의 정보관리실장 ▲국가정보원 제1차장 ▲주 홍콩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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